스포일러 있음
부러진 허리(vermeer@cine21.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파이어스톰(lifeisntcool@naver.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김혜리 “핵심은 로맨스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한 여자의 이야기에요.”
이동진 “<색, 계>는 육체적 결합만큼이나 여주인공이 느끼는 ‘배우로서의 희열’이 중요하죠.”
파이어스톰(이하 스톰): 먼저 양해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이야기 나누기로 한 영화가 <색, 계> <데드걸> <로스트 라이언즈>였는데, 갑자기 장염 때문에 <로스트 라이언즈>의 시사를 놓치고 말았어요. T-T
부러진 허리(이하 요절): 저런. 그럼 ‘파이어스톰’은 선배의 그 뭐냐, 현재 ‘내면 상태’를 표현하는 대화명인가요? *.*
스톰: 그렇기도 하고, 제일 좋아하는 리안 감독 영화가 <아이스 스톰>인데 <색, 계>의 ‘특정 장면’들을 보니 이건 완전히 <파이어스톰>이다 싶기도 해서요. ^^; 그러는 ‘부러진 허리’는 뭡니까?
요절: <색, 계> 베드신들을 보면서 커플 요가 자세들이 생각나서요. 말 그대로 ‘허리가 부러지도록’이라는 표현이 불쑥 떠올랐죠. -_-# 게다가 마침 <로스트 라이언즈>는 이라크 파병된 꽃다운 청년들의 요절을 그리고 있었고요. <데드걸>이야 뭐 제목이 답이죠.
스톰: 사상 제일로 센 대화명이다 싶었는데, 뒤의 두 설명이 물타기네. ^^
요절: <브로크백 마운틴>을 위시해 리안 감독의 영화는 언뜻 팔색조 같아도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번 <색, 계>도 그 점은 마찬가지더군요. <브로크백 마운틴>과 따로 떼어 비교하자면 그 영화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선명한 반면 섹스하기가 어려웠고, <색, 계>는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스톰: 리안 감독 영화의 인물들은 울타리를 부수고 나간 뒤에야 자신이 누군지 여실히 알게 되는 사람들이죠. 어떤 내면의 금기나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서 특정한 상황에 접했을 때에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고 놀라는 인물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요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색, 계>는 흔히 ‘적과의 동침’으로 요약되는 비극적인 멜로드라마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영화를 사랑 이야기라고 규정하기 망설여져요. 주인공 왕치아즈(탕웨이)와 이(양조위)의 관계는 열정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로맨스라고 부르긴 어렵지 않을까요?
스톰: 뭐, 그것도 분명히 사랑의 일부죠.
요절: 바깥 세계에서는 이중 삼중의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두 사람이, 유일하게 정직해지는 초월적인 경험을 섹스를 통해 함께한 거라고 생각해요. 둘은 상대에게조차 그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죠. 어쩌면 섹스라는 행위의 본성을 캔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스톰: ‘홍길동 멜로’라고 하면 되겠네. 로맨스를 로맨스라 칭하지 못하는 슬픔을 다룬.^^
요절: 하지만 그보다 핵심은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품성을 타고난 한 40년대 여자의 경험일 거예요. 일제강점기 중국의 여성이 혈혈단신으로 그 땅에 남겨져 홀로 성장하고 변화하고 부서져간 과정의 재현이죠. 그래서 15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굳이 필요했다고 봐요.
스톰: 워낙 파격적인 파격적인 베드신 때문에 간과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왕치아즈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건은 리와의 육체적인 결합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죠. 그건 배우로서 무대에서 맛보는 희열입니다. 그 두 가지 압도적인 경험이 왕치아즈의 삶을 결정지은 거죠. 뒤집어 말하면 왕치아즈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고요. 울타리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스스로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요절: 추상화시켜보면 <색, 계>는 배우라는 직업의 운명에 관한 일반론도 될 수 있겠죠. 재능있는 배우인 왕치아즈는 막부인으로 위장해서 이를 암살하려고 하는데, 그 ‘퍼포먼스’의 과정이 자아에 스며들고 자아를 갉아먹기도 하잖아요. 대학 선동극 무대에서 얻은 뜨거운 반응은 왕치아즈의 정치적 신념을 굳히는 데 결정적이고요.
스톰: 맞아요. 왕치아즈는 연기를 하다가 결국 그 캐릭터 속에 녹아버린 사람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앞에서 제가 거론한 두 경험이 바로 그런 점에서도 서로 맥이 닿는 거고요.
요절: 그런저런 이유로 <색, 계>가 사랑 때문에 결국 패배한 여성 투사의 드라마로 요약된다면 불편할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왕치아즈의 감정도 보통의 연정과는 달라 보여요. 가족도 없고 다른 인연도 없는 외톨이인 그녀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이 세계에서 가장 깊이 얽혀 있는 타인이 죽여야 할 그 남자였던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녀는 그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고독해서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에고, 제가 너무 부풀리고 있나요? +_+
스톰: 반면 <색, 계>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묘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죠. 그게 이 영화와 상당히 유사한 모티브를 다뤘던 폴 버호벤 영화 <블랙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일 거예요. 그 모든 역사적 상황은 특히 왕치아즈라는 인물의 심리를 풀어놓기 위한 멍석일 뿐이니까요. <색, 계> 하면 다들 베드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어떠셨나요?
요절: 이 영화에서 양조위는 일본의 꼭두각시로서 독립투사들을 고문 처형하는 악한으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 악행은 영화 속에 한번도 나오지 않아요. 왕치아즈와의 섹스신에 드러나는 그의 가학성이, 인물의 성격을 그나마 희미하게 전달한다고 봤어요.
스톰: 저는 그 베드신을 포함해서, 이 영화의 인물들을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절: (11일 동안 갇혀서 베드신만 찍었다던데요.)
스톰: (음, 둘 다 프로구나. -.-) <색, 계>의 흥미로운 묘사 중 하나는 왕치아즈의 동지들인 그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애국청년들이 철저한 아마추어들이었다는 점이었어요. 돈은 돈대로 쓰고, 암살은 실패하죠. -_-
요절: 거꾸로 아마추어니까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거 아니었을까요? ^^ 암살 계획이 진도가 안 나가자 해변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야, 어쩌냐 방학도 끝나가는데…” 운운할 때 웃었어요. 무슨 <탐구생활>도 아니고. 앗, 극중 인물들께 죄송.
스톰: (<기쿠지로의 여름>의 성인판이라고나 할까? ^^) 왕치아즈가 살도록 해준 방에 오래된 여자 향수 냄새가 배어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이라는 인물의 전사와 성향을 추측게 해주기도 하죠. 모름지기 아마추어와 프로가 만나면 결국 프로가 아마추어 삶의 자장을 온통 휘게 만들어버리니까.
요절: 흠, 그럼 왕치아즈는 프로예요, 아마추어예요?
스톰: 프로의 기질을 타고난 재능있는 아마추어죠. ^^ 왜 대사에도 있잖아요. “금방 느는데?” ^^ 둘은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믿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왕치아즈가 “많이 외로웠군요”라고 말할 때, 이가 “그 덕에 살아 있어”라고 하잖아요? 이를테면 프로는 외로움을 감수하는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헉헉. 역시나 오늘은 몸이 좀 힘드네요. +_+
요절: (싸늘) 선배도 프로잖아요. 감수하세요.
스톰: *.* 무.섭.다. 오늘 내가 하는 말 감수나 해주오. (시름시름)
요절: 달리 말하면 관객도 양조위를 ‘프로’ 정도로 받아들이는 듯해요. 악당, 매국노, 위선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스톰: 아주 잠시 아마추어의 열정에 젖었던 프로페셔널이죠. 여자가 ‘거사’를 암시하자 전광석화처럼 달아나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사실 그 장면을 그런 톤으로 연기한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요절: 전 양조위보다 왕치아즈로 나온 신인배우 탕웨이의 연기에 깜짝 놀랐어요. 어딘가 한국 배우 하지원씨를 닮은 구석이 있더군요. 화장기없는 학생 모습과 막부인으로 변장한 모습은 전혀 다른 인물로 보였어요. 그녀가 표현한 감정의 범위는 평균치의 두세배라고 생각해요. 혼자 할리우드영화를 보며 훌쩍이는 감수성부터 저항군 간부에게 이와의 정사를 세부까지 보고하는 태연함에 이르기까지!
스톰: 왕치아즈는 말 그대로 색과 계 모두를 갖고 있어야 하는 인물이죠. 탕웨이는 영화에서 머리를 올리거나 내릴 때 정말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이더라고요.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을 했어요. 국제적인 스타가 될 것 같습니다.
요절: 솔직히 저는 왕치아즈를 동경하면서 봤어요. 느끼는 대로 믿는 대로 누구도 탓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삶이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색, 계>는 리안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듯 인물이 직접 털어놓는 방식으로 심리를 전달하지는 않는데,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뭔가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의 성격도 왕치아즈의 결단도 그 반영으로 짐작하면서 봐야 하니까요.
스톰: 저는 색과 계가 영화에서 계속 맞물리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어서 두 사람의 베드신의 경우 역시 처음엔, 남자의 입장에선 색인데 여자 입장에선 계에 해당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여자는 점점 더 색을 향해 나아가고, 남자는 결정적 순간에 계로 빠져나오는 거죠. 두 사람의 육체적 관계는 여자 입장에선 저항군 동료들에게 전부 공개되는 일종의 공적인 행위잖아요. 그런데 남자 입장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가장 사적인 행위이죠. 그런 식으로 인물들간의 관계가 역설적으로 얽혀드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요절: 이 영화에 대해 호평만 있는 건 아니죠. 러닝타임이 불필요하게 길다, 리안의 전작에 피해 초점이 흐리다는 불만도 많습니다.
스톰: 강렬하고 우아하긴 한데, 저도 그렇게까지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리안이라는 장인의 필모그래피를 일별하다 보면 더 그렇죠.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엔 감독의 ‘자뻑’도 좀 있는 것 같고요.^^
요절: 리안 감독의 영화를 보면 ‘완벽하다’, ‘걸작이다’ 하는 생각이 즉각 든 적은 없어요. 예를 들어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는 보면서도 모든 면에서 “옳다”는 판단이 즉각 들지만, 그런 경우와 달리 리안의 영화는 늘 어딘가 비어 있고 무너져 있거든요. <와호장룡>도 그랬고 <라이드 위드 더 데블> 같은 영화도 그랬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 그 ‘얼버무림’에 번번이 혹하고 말아요. ^_^
스톰: 확실히 리안 영화는 야심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죠. 주먹을 불끈 쥐고 만드는 듯한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더 놀라운 면도 있고요.
요절: 문제의 ‘얼버무림’이 게으른 미봉책이 아니라 감독의 몽고반점 같은 불가피한 결함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 자체가 스타일이 되는 것 같고요. 도저히 교정이 불가능한 결점은 고유한 매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스톰: 요사이 충무로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리안 감독이 최고”라고 말하는 분들을 자주 접할 수 있어요. 대중을 매순간 고려하면서도 자신만의 영화를 만든다는 거죠. 충무로의 많은 영화인들이 리안 감독을 역할모델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충무로의 많은 제작사들이 워킹 타이틀을 그렇게 여기듯이요.
요절: 잠깐. <색, 계>는 미국에서 NC-17등급을 받았는데도요? ^^
스톰: 그래도 이 영화, 흥행에서도 성공할 것 같잖아요. 물론 블록버스터급 흥행은 아니겠지만요.
요절: 그나저나 중국에서는 섹스신 포함해서 30분을 자르고 개봉을 한다는 보도를 봤는데, 그럼 제목을 바꿔서 개봉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몰라요. <색 없는 계>라든지 <걍, 계>라든지.
스톰: 뭐, <색, 계>를 빨리 읽으면 욕처럼 들리기도 하니까.^^
이동진 “네번째 장의 다소 희망적인 결말과 여성 연대의 암시는 좀 관습적인 느낌이에요. 반면 두번째 장은 희망과 피로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였죠.”
김혜리 “두번째 장은 심리를 가장 섬세하게 다루죠. 하지만 전 남자에게 막연히 기댈 수 밖에 없는 1, 2장의 결말이 못 견디게 우울했어요.”
요절: <데드걸>은 지난주 <블랙 달리아>에 이어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회면의 사고 기사를 보고 떠올리는 생각들에서 착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 사람한테도 부모가 있겠지? 자식이 있었을까? 시체 발견한 사람은 종일 기분이 어땠을까? 뭐 그런 상상하잖아요.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영화지만 미스터리가 주 관심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문학적 접근법을 취한 영화입니다.
스톰: <데드걸>을 보면서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생각했어요. 그 영화, 꽤 좋아했었죠. 두 영화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인데, <데드걸>이 좀더 강하고 야심이 있다는 인상입니다.
요절: 비슷한 구성의 영화로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도 있었죠. 세대를 넘어 같은 집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수난을 그린 영화였어요. 한구의 시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면을 들춰낸다는 점에서는 <트윈픽스>와 닮았고요.
스톰: 드라마투르기로 보면 그런 면도 있네요. 이 영화는 5개의 챕터로 나뉜 일종의 옴니버스영화잖아요.
요절: 그렇죠. 시체를 발견한 여자, 시체를 행방불명된 언니의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하는 검시관, 범인의 아내, 희생자의 어머니와 애인, 그리고 희생자 본인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나오죠.
스톰: 그중 저는 처음 2개의 챕터가 좋더군요.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 실종된 언니를 찾는 데 십수년을 쓴 가족 이야기가 가장 좋았어요.
요절: 앗! 저는 반대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좋았답니다.-_-#
스톰: 저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관성적으로 극화되어 있다고 봤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후반부가 감독의 체험에서 나온 내용이고 1, 2화는 극화된 허구라는 점이dp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어도 제게는) 1, 2화가 더 생생하고 4, 5화가 진부하게 느껴졌어요. 4화의 다소 희망적인 결말과 여성 연대의 암시는 좀 관습적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영화의 사실감은 현실의 사실감과 확실히 다르다는 거죠. 고다르처럼 이야기하면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라는 얘기!
요절: 저 역시 5화는 사족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어떤 면에선 선배와 의견이 같아요. <데드걸>은 살인의 직접 관련자(범인의 아내, 피살자와 그 측근)가 주인공인 일화와 간접적 관련자의 일화를 한데 묶은 구성이잖아요. 구성 자체가 불균질하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1, 2화를 선호하는 관객과 3, 4화를 선호하는 관객이 갈리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1, 2화처럼 죽은 여자의 시체로부터 영향을 받는 생판 타인의 이야기만 모았다면 훨씬 깔끔했을 거예요. 아니면 직접 관련자들의 이야기만 모으거나.
스톰: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절망스런 상황들만 그리고 있는데 밝은 부분이 들어 있는 유일한 챕터가 2화예요. 오랫동안 실종된 언니를 찾아 헤매느라 삶 자체가 피폐해졌던 주인공이 시체안치소에 들어온 시체가 자신의 언니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 다음 장면들이 영화적으로 무척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그때부터 여자는 눈에 띄게 밝아지면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왔던 남자에게 찾아가기까지 하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함께하잖아요. 그건 삶에서 ‘언니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접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이한 기쁨이었죠. 언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는 바람과 그 언니를 찾아서 십수년간 헤매는데 지쳐 그만 손을 놓고 싶은 피로는 양립 가능한 것이니까요. 희망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는 챕터라고 봤어요.
요절: 2화가 가장 섬세한 심리를 다루고 있긴 하죠. 하도 오래 딸을 찾다보니 마인드 컨트롤까지 성공해서 명랑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와 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제대로 살고 싶은 젊은 딸이 밥 먹다 나누는 대화가 가장 좋았어요.
스톰: 그런 긍정적 상태 역시 짙은 피로의 다른 표현이죠. 너무 피곤하면 기분이 엉뚱하게 튀어오르기도 하잖아요? 모녀의 대비가 너무나 생생했어요.
요절: 어머니에게 딸의 실종은, 지워버릴 수 없어서 어떻게든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인 반면, 어서 인생의 본 궤도에 들어서고 싶은 동생한테는 발목에 떼버리고 싶은 짐이라는 자연스런 차이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전 남자에게 막연히 기댈 수밖에 없는 1, 2화의 결말이 모두 못 견디게 우울했어요.
스톰: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은 ‘데드걸즈’라고 해도 됐을 거예요. 시체안치소에 누워 있든 그렇지 않든.
요절: 실상 죽은 듯 사는 여자들이란 말씀이군요? ^^ 선배가 선호한 1, 2화에 비해 확실히 3, 4화는 부부의 갈등,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요소가 다른 영화에서 흔히 보던 것이라 식상하긴 해요. 하지만 그 소재를 그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결론까지 어떻게든 끌어가는 태도가 미더웠어요.
스톰: 저는 3화의 여주인공이 가장 ‘데드걸’에 가까운 삶을 사는 여자라고 봤어요.
요절: 못마땅하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남편이 살인마라는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는 불행한 아내 말이죠?
스톰: 혈흔이 남은 옷을 벗어 다른 증거물과 함께 태우다가 자신의 남은 속옷까지 남김없이 벗어 태우는 장면은 정말 좋더군요.
요절: 입수한 증거를 경찰에 고발해서 남편과의 지긋지긋한 인생을 청산하고 다시 시작하느냐, 아니면 그래도 익숙한 불행을 안고 살아가느냐 사이의 선택 상황에 처한 셈인데요. 최악과 차악 사이의 기막힌 갈등이죠. -..-
스톰: 특정한 상황에 오래 젖어 있게 되면, 그 상황이 불행한 상황이라도 인간은 거기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설사 어디선가 사다리와 동아줄이 내려와도 그 기회 자체를 거부하는 거죠. 삶을 이끄는 것은 습관일 경우가 많으니까요.
요절: <데드걸>은 마샤 게이 허든, 토니 콜레트, 파이퍼 로리, 메리 베스 허트 등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친목계처럼 보이는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덕분에 클로즈업이 좀 과하더군요.
스톰: 1화는 주로 고정시킨 카메라를 썼고 3화는 핸드헬드를 썼는데 그런 선택은 괜찮았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장면짜기가 좋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요절: 저는 좀 답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_-
스톰: 뭐,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죽어라, 죽어라’ 하는 영화죠.^^ 이런 영화는 보면서 그저 완전히 죽어드리는 게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객석에 붙은 껌 떼듯 널브러진 몸을 떼서 터벅터벅 걸어나가면 되는 영화니까요.
요절: 그리고 집에 와서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버전 <어젯밤 어디서 잤니?>(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를 들으면 완벽하겠습니다그려.
스톰: 그 다음에는 라디오헤드의 <완벽하게 사라지는 법>(How to disappear completely)을 들으며 걍 어딘가로~~.
김혜리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으로서 예술적 경력보다 미국인을 각성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만든 영화 같아요.”
이동진 “이른바 진심이 중요한 영화라는 거군요. 근데 전 신념과 진심의 산물이이란 점이 너무 두드러지는 영화엔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요절: 이 영화에 나온 훌륭한 중년 여배우들을 제대로 감상할 만한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메릴 스트립, 톰 크루즈,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로스트 라이언즈>도 캐스팅이 쟁쟁한 영화죠. 최근 들어 유난히, 이름 높은 배우들의 앙상블영화가 많군요. 하지만 작품 수에 비해 각각의 총합보다 결과가 더 큰, 생산적 앙상블은 드무네요. 뭐, <로스트 라이언즈>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아예 세개의 동떨어진 공간에서 따로 진행되는 구성이라 세명 이상 주연급 연기가 섞이는 장면은 애초부터 없습니다.
스톰: <디 아워스> 같은 인물 배치인가요?
요절: 그만큼 긴밀하고 치밀하지는 않아요. ^^ 베트남전의 악몽을 재연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과 더불어 미국인을 향해 “미국의 앞날과 국제사회에 대해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자”고 외치는 영화예요. 제목은 사자처럼 용기있고 유망한 젊은이들을 비겁한 양떼 같은 정치인이 지휘하는 형상을 비유한 표현이고요. 극장을 나오는 뒷맛은 <불편한 진실>과 유사합니다.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으로서 예술적 경력보다 미국인을 각성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만든 영화 같습니다.
스톰: 그런데 레드퍼드의 연출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 <베가번스의 전설>을 보면서, 진짜 허걱했다는.
요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죠. 그런데 <로스트 라이언즈>는 약간 열외로 봐야 할 것도 같아요. 목표 자체가 현실에서 떨어진 발등의 불을 영화로라도 끄자는 프로젝트로 보이거든요. ^^
스톰: 이른바 진심이 중요한 영화라는 거군요.
요절: 일전에 개봉한 <킹덤>이 빠뜨린 논리와 사색을 종합한 보완재랄까요? 재미있게도 <킹덤>의 감독이 잠깐 카메오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얼굴을 몰라서 못 찾았지만. ^^
스톰: 아, 그래요? ^_^ 근데, 저는 아무리 신념과 진심의 산물이라고 해도 그것이 너무 두드러지는 영화에는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요절: 음… 저는 일정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
스톰: 진심이나 신념을 완벽하게 상대화할 수는 없다고 보지만, 그걸 너무 강조하면 영화가 프로파간다가 될 위험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진심과 신념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진심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도 늘 명확한 것만은 아니고요.
요절: 저 역시 프로파간다의 위험은 경계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어느 신념이 옳은지 판단해야만 하는 사안도 때로는 있다고 생각해요. <불편한 진실>의 환경문제나 미국의 중동정책은 비교적 그 판단이 명백하고 시급한 경우라고 믿고요.
스톰: 맞습니다만, 주장하는 내용이 옳은 프로파간다도 어쨌든 프로파간다이긴 하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해요.^^
요절: <로스트 라이언즈>의 이야기는 세 갈래예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지지부진한 전세를 뒤엎을 베트남전 식 게릴라 전술을 구상한 공화당 상원의원 톰 크루즈가 40년차 정치 기자 메릴 스트립에게 특종을 제의하며 불러들여 벌이는 대화가 하나고요. 바로 그 작전의 선봉으로 동원돼 싸우는 대학 동창 두 젊은 병사의 이야기가 하나, 그리고 그들을 대학에서 가르쳤고 참전을 말렸던 교수 로버트 레드퍼드가 총명하지만 정치에 냉소적인 학생과 나누는 면담이 또 하나죠. 이 영화가 프로파간다적 인상을 비껴가는 비결은, 대화의 구체성이에요. 정세에 무관심한 입장과 관심을 촉구하는 입장,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전쟁에 이기겠다는 공화당의 입장과 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실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논지와 수사들을 취재한 듯한 대사로 옮겨놓았거든요. 예를 들어 “정치학이 무슨 과학이냐, 결국 선거 기만술 아니냐. 그냥 세금 내고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겠다”는, 나름대로 정당한 입장이 나와요. 한편, 당신은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것은 거짓을 프로모션하려는 세력에 이용당함으로써 결국 정치적 효과를 낸다는 지적이 있고요. 이런 식의 대화들이 탁구 치듯 빠르게 이어집니다. 인물의 캐릭터보다 인물의 견해가 더 중요한 사례죠.
스톰: 그런 부분은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네요.
요절: 뭐, 나중에 말싸움할 때 활용하고 싶어서라도 바삐 필기했다는…. ^^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는 메릴 스트립과 톰 크루즈의 듀엣 연기입니다. 톰 크루즈는 공화당의 대선 주자를 노리는 엘리트로 나오는데요. 전 이 배우를 볼 때마다 엄청 팽팽히 긴장하고 있는 인간이구나 싶거든요. 늘 군중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고나 할까.
스톰: 저도 그런 생각 들어요. ‘할리우드의 배용준’ 같은 느낌이랄까요.^^
요절: 근데 그 그려붙인 듯한 미소나, 가식만이 아닌 진심으로 연극적인 모습이 공화당 탑건 역할에 어울려요. +_+ 한편 베테랑 기자 역의 메릴 마님은, 톰 크루즈가 계속 방을 쏘다니며 쇼맨십을 발휘하는 동안 부스스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잽을 받아내는데, 이게 압권입니다.
스톰: 전 톰 크루즈의 요 몇년이 꼭 <쉰들러 리스트> 나오기 직전의 스필버그의 심리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요절: 아, 오스카 연기상을 못 받았나요? <7월4일>로?
스톰: 후보에만 세 차례 올랐죠. 기본적으로 참 성실한 배우예요. 그런데 명예욕도 많은 배우라는 거죠.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와의 차이가 바로 그런 데 있다는 게 제 느낌이에요. 너무 이를 악 무신다는…. ^^
요절: 이 영화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군인으로 나오는 두 젊은이의 전투 대목입니다. 두 인물이 너무 모범적인 성격인데다가 세트 티가 좀 심하게 나요.
스톰: 저런, 좋은 대사의 시나리오에 돈을 너무 많이 쏟아부었나보다. ^^
요절: 미국인이 아닌 저로서는 베트남전 세대-이라크전 세대의 대화라는 점에서 솔깃한 영화였어요. 미국의 내적 갈등이 보수 대 진보의 문제이기보다 정치적 관심 대 무지의 문제라는 점도 엿볼 수 있었고요. 극중 대사 중 이웃나라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이 다수라는 개탄이 있더군요.
스톰: 미국인 중에는 외국에 나가볼 필요조차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미국이 그냥 세계 그 자체인 거죠.
요절: 확실히 요즘은 국가 이미지 실추로 미국인으로서 살기에 고달픈 시기일 것 같긴 합니다. 여행이라도 간다면 더 그럴 테고요. -_-
스톰: 특정 지역은 진짜 무서워서 못 갈 것 같기도 해요.
요절: 끝으로 감명 깊었던 대사 하나. “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시기에 얼마나 많은 걸 결정했는지 훗날 알게 될 거다”라는 레드퍼드 교수님의 말씀.^.~
스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도 선택의 일종이니까요. 예술품에 ‘무제’라고 써도, 그게 결국은 그 작품의 제목이 되잖아요. 그런데 투표에서 기권이라는 행위도 사실 투표를 선택하지 않는 적극적 정치 표현일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특정한 상황을 허용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그런 선택에 대해 자의식이 있다면 말이죠.
요절: 전 꼭 그렇게 생각진 않아요. 적어도 지금 미국인들이 ‘기권’하지 말길 바라요.
스톰: 참,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반납하고 일하시더니, 뒤늦게 포상휴가 가신다면서요?
요절: 네! 사격을 잘해서 말입니다! -_-# 농담이고요. 반납한 적 없어요. 반납 안 했으니까 쓰죠. ^^ 11월은 일년 중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만큼 소중히 쓰려고 합니다. 한주 거르고 봬요. 그때까지 쾌차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