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1995)은 곤도 요시후미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출 애니메이션이다. <미래소년 코난>(1978), <빨강머리 앤>(1979) 등의 원화 및 작화감독으로 활동했던 곤도 감독은 37살에 지브리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붉은 돼지>(1992),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등의 작화감독을 하다가 데뷔작을 만들었다. 지브리 입사 전 기흉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곤도 감독은 과다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1998년 동맥파열로 사망했다. 그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를 위해 시를 썼는데, 구절이 이렇다. ‘산 너머 푸른 바다로, 맑은 하늘로, 부드럽게, 빛과 바람과 나무와 물과 땅과 어우러져, 편히 쉬십시오.’ 곤도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은 미야자키가 써내려간 바로 그 아름다운 세상을 소설가 지망생인 중3 소녀의 시선으로 옮긴 애니메이션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시즈쿠(혼나 유코)가 바이올린 만드는 장인이 되고픈 소년 아마사와 세이지(다카하시 가즈오)와 만나면서 눈뜨게 되는 사춘기의 사랑 그리고 꿈에 관한 이야기. 12년 전 일본 작은 동네의 골목길,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들의 웃음소리, 집집마다 빨래가 널린 풍경. <귀를 기울이면>은 너무나 단순하고 돌아보면 우습고, 그래서 별것도 아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다정하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영어 제목처럼, 누구의 시절에나 존재했던 ‘마음속의 속삭임’(Whisper of the Heart)이다. 일본 영상물이 국내 정식 수입되기 전에 불법 비디오로 접했던 기억과 더불어, 이 낡은 2D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경험은 더없이 좋은 휴식이 된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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