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남, 북, 일의 바람직한 미래상 <강을 건너는 사람들>
2007-11-28
글 : 문석
오욕으로 얼룩진 50년사에서 희망의 물줄기를 찾는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도쿄와 가와사키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마강에서 시작해 남한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임진강에서 끝나는 다큐멘터리다. 가와사키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이 일하던 군수공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가 다루는 두개의 ‘강’은 예전 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던 남·북한, 그리고 일본 사이에 흐르는 강과 남한-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합수(合水)하는 두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목 그대로 이곳을 건너려는 네 사람을 포착해낸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 회장이었던 고(故) 김경석 옹이다. 그는 40년대 초반 강제 징용돼 노역을 했던 가와사키시를 찾는다. 당시 이곳에 자리한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파업에 주도했던 그는 조선으로 강제 송환되지만, 1992년 이 군수공장의 후신인 일본강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받아냈던 인물. 그는 이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로 합사된 한국인의 유해를 반환받기 위한 싸움에 돌입한다. 가와사키에는 재일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헌신해온 세키다 히로오 목사가 있다. 그는 바자회를 열어 재일 한국인들에게 일용품을 지원하고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소송을 위해 자금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 양심적 존재다. 그는 일본이 “자랑스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의 과오를 뉘우치고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김경석 옹을 도와주고 있다. 가와사키의 또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송부자씨는 한때 차별 속에서 ‘완벽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그는 “왕인 박사가 일본에 문화를 전한 시대부터 현대까지 좋은 이웃관계를 맺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려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삶을 담은 <재일삼대기>라는 1인극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 인물인 다카키 구미코는 특별활동으로 한국을 연구하다가 조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깨닫기 시작한 고등학생이다. 가와사키시의 지원으로 자매도시인 부천을 찾았던 그는 부천고 학생들의 답방을 맞이한다.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던 2000년 6월부터 남북 연결철도가 시험운행을 가진 2007년 5월17일까지 무려 7년 동안을 포괄하는 이 영화는 잘못된 역사의 단락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거나 책임소재를 가려내자고 흥분하기보다는 이들 네 사람의 삶과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역사성’에 초점을 맞춘다. 가와사키의 철길을 바라보며 “출구가 없던 우리의 청년기처럼 앞이 막힌 철길처럼 느껴졌다”고 말하는 김경석 옹이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내는 세키다 목사, 잘못된 일본 역사교육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송부자씨,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 집회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울음을 터뜨렸다는 다카키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와 현실은 한지에 먹이 배어나듯 자연스레 드러난다. 김덕철 감독이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거의 쓰지 않고 이들 넷과 주변 사람들을 묵묵히 비추기만 한 것도 관객이 직접 귀를 기울여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함으로써 함께 강을 건너는 데 동참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진정한 ‘미래 지향성’을 가진 영화다. 이 영화는 과거를 땅에 묻어두고 미래를 논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남한, 북한, 일본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현현시킨다. 다카키의 에피소드에서 이들 일본 고교생들은 부천의 고등학생들을 초청해 포럼을 준비하면서 인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도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세곳의 아이들은 다른 뿌리를 갖고 있음에도 금세 해맑은 웃음을 쏟아낸다. 아이들은 두개의 강을 그렇게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두강의 모순을 한꺼번에 체현한 재일동포 김덕철 감독은 인간에 대한 깊고 은근한 시선이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비추는 밝은 등불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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