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쩌자고 만났을까. 한때 사랑했던 두 남녀의 후회는 강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를 선택했던 나는 내가 아니었고, 내가 선택했던 그는 그가 아니었다. 한지승 감독의 신작인 <싸움>은 이들의 후회를 가열찬 육박전으로 묘사하는 영화다. 제목이 뜻하는 싸움은 진짜 싸움이다. 가늘지만 질긴 인연의 끈만 남은 두 남녀 사이에서는 주먹이 오가고 피가 튀긴다. 하지만 본질상 이들의 주먹다짐은 여느 연인들의 스킨십과 다를 바 없다. 아침시간대의 주부대상 토크쇼에서 말하듯 “사랑하니까 싸우는 것”이라는 체념이 아니다. 그들은 싸우면서 더 후회하고, 더 사랑한다.
그런데 이런 격렬한 싸움의 주인공이 설경구와 김태희다. 캐스팅 소식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 너무나 다른 고지를 바라보던 배우들이었다.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는 그렇다고 쳐도 매번 극한의 에너지를 분출하던 설경구와 미모로 자체발광하던 김태희의 싸움은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설경구 역시 자신들의 만남이 “선입견으로 보면 정말 부조화”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들이 친해질 수나 있었을지, 그래서 평생 묵은 체증처럼 남은 사랑을 묘사할 수 있었을지가 의문이었다. <싸움> 속의 상민과 진아가 벌이는 싸움보다 설경구와 김태희의 대결이 더 궁금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쩌자고 만났을까. 지난 5개월의 싸움을 끝내고 코너에 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들을 다시 맞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