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김태희] 갈 길이 멀고 지치기엔 이르다
2007-11-30
글 : 강병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싸움>의 윤진아는 지금껏 보여준 이미지에서 가장 멀리 있는 캐릭터다. 선택을 주저하지는 않았나.
=글쎄, 진아도 내 안에서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랑 180도 다른 인물, 예를 들어 무작정 설레발치는 캐릭터라면 분명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아도 어설픈 사람일 뿐이다. 만약 여우같이 남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여자였다면 그렇게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웃음)

-하지만 본인도 기존의 자신의 이미지를 알 텐데, 윤진아를 연기할 때는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이지 않았을까.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은 열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이미지가 이러니까 이번 기회에 바꿔봐야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나는 그냥 나니까. 단지 내가 가진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서 편한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설경구와 김태희의 조합은 기묘하다. 이전에는 강동원, 정우성, 대니얼 헤니, 현빈 등과 주로 엮이지 않았나. 언뜻 넘겨짚기에는 서로 쉽게 친해지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오히려 가장 많이 친해진 파트너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 그동안에는 꽃미남들이랑 많이 했구나. (웃음) 하지만 세대 차이 때문에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정)우성 오빠가 자상한 오빠 같은 느낌이라면, 설경구 선배님은 베스트 프렌드 같은 느낌이었다.

-김태희는 많은 말들을 만들어내는 스타다. 특히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외모에 가려져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그동안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당연한 것 같다. 앞으로는 인형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다. 보는 분들은 어떤 평가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싸움>이 그런 인간적인 면들을 드러내줄 것 같다.

-최근 <황금어장>에서 가수 성시경이 한 말 때문에 “나는 김태희랑 결혼 안 한다”는 말이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어느 네티즌은 “불가능한 현실을 거부하는 걸로 바꾸어 심적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상태의 표출”이라고 말하더라. 그런 만큼 김태희란 스타에게 판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부분은 걱정스럽다. 김태희란 이름이 그런 식으로 정형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실 그동안에는 그런 이미지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샤인 휴대폰 CF도 그런 반응이 나올 줄 몰랐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이 정말 큰 것 같더라.

-하지만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 덕에 조금만 움직여도 화제가 돼버린다. 방금 말한 샤인 CF도 그렇고, 노래를 부르는 에스오일 CF나 요즘 나오는 BC카드 CF도 그렇다.
=나는 그런 CF를 찍는 게 더 좋다. 화장품 CF처럼 분위기 잡고 절제된 표정으로 예쁜 척하는 CF는 찍을 때 상당히 힘들다. 샤인 CF도 나는 무척 자유롭고 즐겁게 찍었다.

-어떤 남자가 샤인 CF를 패러디했던 동영상을 본 적 있나.
=하하하하. 많이 봤다. 진짜 웃기더라. 동작을 정말 예리하게 포착해서 표현하는데, 너무 비슷해서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웃음)

-그런 CF가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김태희가 동영상보다는 한장의 이미지로 각인되는 면이 많은 스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중천>의 연기를 놓고 말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관객은 김태희가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하는 모습을 어색하게 느낀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화의 천진난만한 캐릭터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다 삭제돼버렸더라. 그때만 해도 영화를 위해서 내 캐릭터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없어져야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많이 아쉽다. 하지만 <중천>이 안겨준 고민들이 나에게 많은 걸 깨닫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싸움>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당시 정성일 평론가는 “CF 상품의 유토피아적 비전인 김태희는 목소리가 침입할 때 갑자기 이미지가 어떻게 부서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말하자면 TV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TV 밖의 세계까지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은데.
=그건 나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CF에서는 샤방샤방한 때깔에 목소리는 안 나오고 여신 같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나. 당연히 내 목소리가 갑자기 들어오면 어색해질 것 같더라. 그래도 나로서는 소화가 조금씩 성숙하고,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건데, 그게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2001년에 데뷔한 뒤 이제 연예인 생활 7년차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기간 동안 톱스타로 올라섰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나.
=나에게는 7년이란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진다.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도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갈 길이 멀고, 지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다만 나는 이렇게 부족한데, 주위의 기대치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있다. 사실 내가 사랑받는 것에 많이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웃음) 하지만 갑자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근히 밟아가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만족할 수 있고, 사람들도 인정하는 작품을 만나고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그저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수밖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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