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심은경] 신비로운 소녀의 야망
2007-12-19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헨젤과 그레텔>의 심은경

‘아역’배우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누구 누구의 어린 시절’이라 불린다. 중학교 1학년인 심은경(14)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4년부터 1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나 ‘리틀’ 명세빈(<결혼하고 싶은 여자>), ‘리틀’ 최강희(<단팥빵>), ‘리틀’ 하지원(<황진이>), ‘리틀’ 이지아(<태왕사신기>)로만 기억됐다. 그런 점에서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심은경에게 특별한 데뷔작이다. 이번엔 누군가의 몇년을 잠깐 대신하는 게 아니다. 극중 영희는 은수(천정명)를 불길한 집으로 끌어들이고, 어떻게든 악몽의 덤불을 벗어나려는 은수의 발목을 붙잡는 인물.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아이라고 <헨젤과 그레텔>을 소개하는 아역‘배우’ 심은경을 만났다.

-치마 입는 거 어렸을 때부터 싫어한다고, 유치원 때는 인형놀이보다 칼싸움하는 거 좋아했다고 엄마가 그러던데요.
=흐흐… 그냥 치마 입는 거보다 바지 입는 게 좋아요. 편하고. 평소에도 추리닝 입고 다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는 남자애들하고 지구용사 벡터맨 놀이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초등학생 때도 체육을 좋아했다면서요. 쉬는 시간에도 꼼짝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체육시간만 되면 날아다녔다고.
=지금은 공부도 하고 그래요. 중학교 가니까 공부도 잘하고 싶어요. 잘하는 애들도 많고. 쟤는 공부 못한다고 할까봐 더 하려고 해요. 독서실도 가고.

-공부는 잘되나요.
=아니요. 졸려요. 집에서 하면 졸려서 독서실에 가는데 거기도 너무 조용해서 졸려요.

-옆집 아줌마를 만나도 엄마 뒤에 숨을 정도로 내성적이었다면서요.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했어요. 연기학원도 그래서 한번 가보자 그랬어요. 근데 처음 가면 카메라 테스트 하거든요. 별것 아닌데도 긴장해서 매번 제 차례를 뒤로 미뤘어요. 그러다가 어떤 선생님이 저보고 네가 제일 잘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뒤로는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경쟁심도 생겼나요.
=처음에 오디션 봤을 때만 해도 되든 말든 그랬는데. 속으로는 다른 아역배우들보다 내가 좀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도 있었나봐요. 제가 될 듯하다가도 다른 애가 되면 속상해서 울기도 했으니까요. 처음 찍은 드라마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인데요. 처음 카메라 앞에 서니까 어떻게 할지 모르잖아요. 근데 긴장해서 잘 못하니까 촬영감독이 어디서 저런 연기 못하는 애를 데리고 왔냐고 하시는 거예요. 울고 싶어도 울진 못하겠고. 촬영 끝나고 나서 엄마한테 그랬죠. 연기는 내가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화가 나는 거예요. 그때는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되면 안 된 이유가 있고, 안 되면 다른 거 하면 되는데.

-오기가 생기니까 다음 드라마 찍을 때는 좀 나아지던가요.
=아니요. <장길산>도 똑같았어요. 감독님에게 못한다고 혼날까봐 무서웠어요. 신도 얼마 안 되는데 긴장하고. 밥도 잘 못 먹고. 점심때 쫄쫄 굶고 나서 다 끝나고 엄청 먹었어요. 그러다가 <꽃님이>랑 <황진이> 하면서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모니터를 많이 했을 텐데요. 연기가 느는 게 보이던가요.
=못 봐주겠던데요. 제 연기는. 지금도 엄마가 보라고 하면 도망가요.

-영화는 <헨젤과 그레텔>이 처음이잖아요. 임필성 감독 처음 봤을 때 인상이 어땠어요.
=오디션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했는데 많이 통통하구나 그랬어요. 기사 보니까 피터 잭슨 닮았다고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말 닮았던데요. 수염도 많고.

-잘생긴 감독이었으면 더 좋았다는 말인가요.
=지금은 아닌데 9살 때까지는 감독님 같은 외모가 제 이상형이었어요. 감독님은 왜 지금은 아니냐고 하시지만. 귀엽기도 하신데 촬영 때 예민해지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해요. 몇번 쫄았어요.

-작품은 엄마가 고르나요. 본인이 고집도 피우나요.
=하기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밝혀요. 대본을 자세히 읽는 건 아닌데. 그냥 느낌이 있어요.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들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특이한 줄거리의 영화여서 한다고 했어요.

-감독님이 왜 영희 역으로 뽑았다고 생각해요.
=오디션 때 주어진 대사를 스릴러풍으로 했는데 맘에 들어하셨어요. 제가 엉뚱한데 감독님 성격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오디션 전에 엄마랑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나봐요.
=대충하면 성의가 아닌 것 같아서 연습을 좀 했어요. 극중 영희는 여성적인데. 제 성격하곤 안 맞잖으니까 어렵기도 하고. 스릴러풍은 엄마 주장이었는데 전 처음에는 그건 아니라고 우겨서 많이 싸웠어요. 결국 엄마 말대로 해서 된 건데. (웃음)

-엄마가 선생님이기도 하고, 매니저이기도 하고 할 텐데. 싫을 때도 있지 않나요.
=촬영장에서 엄마가 연기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데. 저는 그전에 감독님한테 받은 지시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짜증내고 그래요. 한동안 말 안 하다가 화해하고 또 싸우고.

-이번 영화 찍기 전에 임필성 감독의 주문이 어떤 거였어요.
=<아무도 모른다>를 추천해주셨는데. 영화 속 아이들처럼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인터넷으로 보니까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거예요. 처음엔 엄마한테 그랬어요. 애가 무슨 남우주연상을 받아? 그랬더니 엄마가 잘했나 보지, 그러는 거예요. 가만 영화를 보는데 아무 생각없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 애들을 뽑아서 찍은 거라고 해서 놀랐어요. 지금은 아기라 유야를 제일 좋아해요. 한 세번쯤 봤는데 연기를 안 하는 것 같은 연기가 있구나 하는 것도 알았어요. 그리고 촬영 들어가서는 감독님이 대본 보지 말라고 해서 안 봤고, 그냥 순간순간 집중했어요. 엄마는 계속 대본 보라고 했는데. (웃음) 근데 계속 그 톤으로 찍는 게 아니라 때론 뭔가를 해야 하는 장면도 있어서 그때는 좀 어려웠어요.

-관객으로서 영희를 보면 어떤 인물이에요? 영화 속 아이들은 흔히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은 아니잖아요.
=소녀인데 어떨 때는 아이 같고, 또 은수 오빠 앞에서는 여성적이기도 하고. 사춘기 소녀라고 하기엔 오묘한 느낌의 인물이에요.

-은수 역을 맡은 천정명 오빠와는 잘 지냈나요. 극중에서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은수와 영희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잖아요.
=밀접한 관계죠. (웃음) 영화에서 저를 안는 장면이 있는데 현장편집 보니까 너무 닭살이어서 민망한 적도 있어요. 내가 언제 저렇게 했지 싶더라니까요. 사실 밤샘 촬영 때 힘들 때마다 정명이 오빠가 메가폰 들고 ‘힘냅시다’, ‘힘냅시다’, ‘얼른 찍읍시다’ 그랬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은)원재랑은 동갑인데다 게임을 굉장히 좋아해서 대기할 때는 (진)지회랑 셋이서 게임하면서 놀기도 했고.

-영화 찍기 싫었던 적은 없나요.
=한번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촬영 끝내고 서울 간다고 해서 기뻤는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루 더 있으라고 해서 울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있는 게 더 편해요. 아직 저 14살밖에 안 됐잖아요. (웃음) 촬영하면 집밥도 많이 못 먹고. 매일 삼겹살 집에서 고기만 먹으니까 질려요.

-첫 번째 영화 찍고 나서 얻은 게 있다면.
=애들 말투 보면 드라마 말투라는 게 있거든요. 영화 찍고 나니까 알겠어요. 제 연기에도 그런 말투가 있고. 다음번엔 나아지겠죠.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지금 꿈은 감독인데. (웃음)

-배우가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하잖아요. 언제부턴가 감독이라는 직업에 끌렸어요. 제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멋있잖아요. <아무도 모른다> 같은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긴 했는데, 오빠가 내용이 뭐 이러냐고 해서 다시 고쳐 쓸 거예요. 지금은 시험 기간이라서 좀 그렇고. 그거 다 쓰면 추리물도 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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