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장영남] 배우의 덕목을 아는 여자
2008-01-03
글 : 주성철
사진 : 이혜정
<헨젤과 그레텔>의 장영남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배우. 알 만한 사람들은 2006년 장영남이 김지숙, 서주희 등 쟁쟁한 연극계 선배들에 이어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무대에 올린 배우라는 사실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억눌린 여성의 성(性)을 다양한 시점에서 표현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그녀는 5살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별도의 분장없이 소리와 제스처만으로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언뜻 왜소해 보이는 체구와 큰 눈망울, 마치 잔잔한 순정만화에서 빠져나온 듯 소녀 같은 이미지의 그녀를 보노라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폭발력이 과연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극단 목화에서 잔뼈가 굵은 장영남은 이미 대학로에서만큼은 빅 스타다. 최근에는 <경숙이, 경숙 아버지> <친정엄마> <멜로드라마>를 차례로 무대에 올렸고, 현재는 “연말연시를 모두 반납하고” <연극열전2>에서 장진 연출의 <서툰 사람들>에 한채영과 더블 캐스팅돼 ‘유화이’를 연기하는 중이다. 이미 1월 초순 공연까지 전회 매진된 상태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무대 위의 그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장영남은 또 다른 연극계 선배 김경익과 함께 부부이자 숲속 아이들의 부모로 나온다. 정확하게는 부모인 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길을 잃고 ‘즐거운 아이들의 집’에 다다른 은수(천정명)를 어딘가 불안한 모습으로 환영한다. 인위적인 미소, 과장된 제스처로 은수를 맞이한 그들은 사실 아이들을 은수에게 떠넘기고 달아날 궁리만 하는 커플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초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밉보인 그녀는 그만 다락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사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장영남은 그리 큰 비중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마치 사다코처럼 귀신 분장을 한 장영남을 보는 것도 그의 팬들에게는 묘한 즐거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귀신 분장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고역이었어요. 그 분장 그대로 스탭들과 밥 먹고 얘기하는 게 어찌 그리 웃긴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멀리 제주의 아름다운 숲에도 가고 부산의 아이들 집 세트에도 가면서 즐겁게 참여한 영화예요.”

그동안 영화배우 장영남은 쉽게 ‘장진 사단’이라는 표현으로 불려왔다. 지금도 “시집 안 가냐?”고 면박을 주는 장진 감독은 연극과 영화를 넘나드는 오랜 예술적 동지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장진 감독의 단편 <극단적 하루>(2000)가 일종의 영화 데뷔였고 이후에도 장진 감독의 영화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했다. <아는 여자>(2004)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고녀’로 출연했고, <박수칠 때 떠나라>(2005)에서는 똑 소리 나는 검사 유진주 역할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으며, <거룩한 계보>(2006)에서도 동치성(정재영)의 억척스런 옛 여인 여일로 출연했다. 오석근 감독의 <연애>(2005) 정도를 제외하면 <헨젤과 그레텔>이 바로 장진 감독이 연출하지 않은 영화로 두 번째 출연이다. 더불어 <헨젤과 그레텔>은 자신의 명성과 별개로 정식으로 오디션을 본 영화이기도 하다. 어차피 지원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인 영화였지만 “어딘가 인위적이면서도 은밀해 보이는 역할이라 매력적”이라는 게 그녀의 얘기다. 더불어 “숲속의 집과 영화 속 미술이 보여주는 클래식한 이미지, 좋아하는 감독들 중 하나인 팀 버튼식의 기묘한 동화적 느낌도 풍겨 좋았어요”라고도 덧붙인다.

사실 영화배우로서 장영남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 “아직은 카메라가 낯설어요”라고도 말하지만 “연극할 때 빼고는 한가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새해가 되면 조금 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물론 그의 팬들 역시 스크린에서도 빛날 그녀의 모습을 즐거이 상상할 것이다. 아마도 <헨젤과 그레텔>의 오디션에 응했던 것도 그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조바심을 내는 건 아니다. 극단 목화에 발을 디딘 이래 ‘겸손함을 익히고 겉만 번지르르한 화려함을 멀리하는’ 배우의 덕목은 지금껏 그녀를 지탱하는 중요한 지침이 돼왔다. 그 가르침 아래 손병호, 정은표, 성지루, 유해진, 박희순, 임원희 등 목화 출신 배우들이 하나 둘 영화계 이곳저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 돼왔다. 목화라고 하건 장진 사단이라고 하건 ‘홍일점’이라 해도 딱히 틀리지 않은 장영남이 지닌 자신감과 무게감도 거기서 비롯한다. 하지만 특별히 그녀를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연말연시의 기분에 채 젖기도 전에 이미 <서툰 사람들>에 흠뻑 빠진 상태이기 때문. “새해에는 연극도 더 많이, 영화도 더 많이, 물론 다 좋은 작품들만 만나고 싶어요.” 장영남의 힘찬 새해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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