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제목의 감옥에 갇히다
2008-01-10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유럽에 대한 어른들의 상상력에 갇혀버린 인공적인 환상 <헨젤과 그레텔>

장르 감독이 그림 형제 동화의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품는 것은 밤에 해가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이 이른바 ‘문명화’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림 형제의 동화는 대부분 태어나서 가장 처음 접하는 호러다. 토막살인, 카니발리즘, 어린이 학대, 사지 절단, 근친상간, 존속 살인, 성폭행…. 테마도 무궁무진하다. 여러분이 아무리 끔찍한 현대 호러영화의 스토리를 골라도 그림 형제의 동화는 언제나 그보다 한 걸음씩 앞서간다. 그렇다면 카피 제목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 영화계에서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제목의 호러영화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도 않다(사실은 이상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할 주제가 아니다).

단지 여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오리지널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중세 후기의 독일이고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현대 한국이다. 이 두 세계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지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숲’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평지’의 개념은 유럽에서는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깊은 숲 속에서’라고 운을 뗀다면 우리는 ‘깊은 산속에’라고 말한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어느 쪽을 택할까? 타협의 여지는 없다. 그냥 숲이다.

이게 잘못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서구적 의미의 숲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에 나오는 인공적인 환상 세계다(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이 영화는 <헨젤과 그레텔>만큼이나 제롬 빅스비의 <It’s a Good Life>와 유사하다. 이 단편은 <트왈라이트 존>의 한 에피소드로 각색되었고 나중에 영화판에서 조 단테가 리메이크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액션이 가짜 유럽적인 배경에서 펼쳐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으며 오히려 이것은 두 세계의 충돌을 그리면서 새로운 내용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한번 따져보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헨젤과 그레텔>이 그리는 무대는 의사 유럽풍이지만 정말로 그림 형제의 동화의 시대까지 반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고려하면 20세기 초중반 정도가 맞다. 그림 형제 동화의 테마에 맞추기 위해 빨간 망토와 같은 소도구들이 더하는데, 이 역시 불평할 필요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장화, 홍련> 이후 유행한 ‘청담동 호러’의 감수성에 통제받는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따진다면 큰 문제가 없는 비주얼 요소들이 일단 <장화, 홍련>에 포섭된 순간 한없이 진부해져버린다. 여기서부터는 논리도 깨진다. 이 세계를 만든 아이들이 구체 관절 인형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상상은 했을까?

쫀쫀하다고? 그게 그렇지가 않다. <헨젤과 그레텔>을 유지하는 힘은 아이들의 상상력이고 결코 그것은 기성품화한 스타일에 종속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상력은 규칙없이 정신없이 터져 나오거나 아니면 철저한 논리를 바탕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행복한 아이들의 집은 그냥 유원지 놀이동산이며 인테리어만 깔아놓은 모델 하우스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위축되고 어색해 보인다.

구체 관절 인형을 받아, 어느 쪽으로든 가보자. 과연 자기 세계에서 거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아이들이 보통 아이들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장난감만으로 만족했을까? 백배 양보한다 해도 평생 자기 장난감 하나 가지지 않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장난감들이 과연 그런 모습일까? 비주얼 소스라고는 흑백 동화책밖에 없는 아이들이 과연 그렇게 온전한 모습의 의사 유럽 스타일을 재구축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를 성서처럼 모신다고 해도, 과연 13살 남자아이가 그림 형제 동화의 환상만으로 만족했을까?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만화책도, 텔레비전도 보지 못했나? 당연히 그림 형제 동화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늘 먹는 음식들은 어떤가? 그건 그들의 상상력에 충실한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어른들의 습관적인 관념을 그냥 따른 것일까?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유감스럽게도 <헨젤과 그레텔>은 그 수많은 가능성들 중 가장 안전하고 뻔한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그냥 상식적인 선택이고 제목을 따른다면 옳은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왜 제목이 가능성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야 하는가? 이럴 경우 염치나 예의를 접고 마구 달리는 편이 더 옳지 않았을까? 어차피 그들이 고른 스타일은 그림 형제 동화를 충실하게 복제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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