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아버스의 전기영화 <퍼>의 부제는 ‘다이앤 아버스의 상상적 초상’이다. 성실한 조사를 토대로 한 전기 <다이앤 아버스>가 원작이지만 패션광고 사진작가 남편의 보조였던 아버스가 ‘금기의 세계’에 눈을 돌린 결정적 순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지 영화적 상상으로 가득하다. 여성예술가의 자아찾기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가이드 삼아 영화보다 풍부한 텍스트, 아버스를 소개한다.
1. 백문이 불여일견, 다이앤 아버스는 누구인가
다이앤 아버스의 이름은 낯설어도 이 사진은 낯익다. 살짝 머금은 미소와 살짝 찌푸린 표정의 <일란성 쌍둥이, 로젤>은 훗날 스탠리 큐브릭이 <샤이닝> 속 한 장면으로 변주한 바 있다. 최근 2억5천만원의 경매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늙은 부모를 굽어보는 거구가, 자꾸만 몸이 커지는 앨리스처럼 초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모님과 집에 있는 유대인 거인>처럼 낯선 기묘함이 그의 작품이 지닌 특성이자 매력이다.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기형인들은 트라우마와 함께 태어난다. 생의 시험을 이미 통과한 그들은 귀족”이라고 믿었던 아버스는 간헐적인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1971년,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손목을 그어 4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묘한 것들의 마법사”(Wizard of Odds) 아버스의 작품은 대상을 관음증적으로 접근한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각종 기형인들로 이뤄진 서커스며 집창촌을 찾아다녔던 아버스 역시 대상의 동일시와 거리두기 사이에서 동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천적으로 자신과 다른 것에 압도됐다는 아버스가 자신의 모델에게 기울인 애정 역시 많은 이들이 증언하는 사실이다.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스의 작품을 열렬하게 옹호했던 토드 헤인즈 감독 등은 대표적인 아버스의 추종자.
2. 가장 큰 궁금증, 라이오넬은 실존 인물?
온몸을 뒤덮은 털 때문에 외출할 때면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라이오넬. ‘모피’(Fur)라는 영화 제목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그의 존재는, 물론 허구다. 원작 <다이앤 아버스>로 미루어, 다이앤에게 기이한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자신만의 시각을 갖도록 독려하는 라이오넬은 두명의 멘토를 결합한 캐릭터로 추정된다. 비정상적인 피사체를 임상실험을 하듯 초연하게 카메라 앞에 불러세웠던 사진가 리젯 모델과 <하퍼스 바자> 편집장이자 대학교수이며 추상미술가였던 마빈 이스라엘이 그들이다. 1958년 자신의 수업을 들은 아버스에게 “강력하게 찍고 싶은 것을 찍지 않으면 절대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고 가르쳤던 모델은 그녀가 자신만의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둘은 사랑에 버금가는 우정을 나누었다. 당대의 숱한 작가들의 안내자이자 조언자였던 이스라엘은 아버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극했다. 다이앤이 라이오넬과 만난 것으로 설정된 1959년, 한 파티에서 만난 둘은 서로에게 강렬하게 매료됐다고 한다. 라이오넬에게 의지하고 이성적으로 끌리는 영화 속 설정은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무기력한 남편 앨런 아버스의 모습 역시 현실과 상당히 다르다. 아내로 하여금 자기만의 사진을 찍도록 조언한 뒤, 자신 역시 배우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던 앨런이 먼저 외도를 저질러 다이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앨런은 꾸준하게 배우의 길을 걸었고, <M*A*S*H>를 비롯한 숱한 TV시리즈에 얼굴을 비췄다. 라이오넬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친분이 있다고.
3. 숨은 사실 찾기
아버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할 만한 극적인 시기를 영화로 옮겼기 때문에 전기 속 숱한 사실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희미하게 흩뿌려져 있다. 다이앤이 라이오넬의 집을 찾아갈 때 소중하게 가슴에 걸고 있는 플래시를 장착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실제로 아버스가 애용한 기종이다. 1962년에 이르러 아버스는 “평평한 원근감”을 지녀 대상의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한다는 이유로 라이카에서 롤라이플렉스로 기종을 변경했다. 플래시 역시 그녀가 좀더 짧은 순간에 대상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도 늘 애용했다. 부유한 모피상이었던 부모가 열었던 실내 패션쇼장에서 남편과 자신이 찍은 잡지 사진을 소개하며 앨런이 사진을 찍는 동안 자신은 “모델의 머리를 해주고, 소품을 신중하게 배치한다”고 설명하던 다이앤이 눈물짓는 에피소드 역시 1957년 한 디너파티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전기에 의하면 영화에서보다 훨씬 격한 울음이었다. 실제로 다이앤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남편의 사진활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당시로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색감이며 독특한 소품의 배치에 많은 신경을 기울인 덕분에 앨런 아버스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카메라 뒤에서 소곤거리며 프레임을 공유하는 영화 속 부부의 모습은 실제에서 착안한 디테일이다. 아버스의 두딸은 실제와 다른 이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데, 아버스 역시 딸들에게 자신의 기형인 친구들을 소개하곤 했다. 영화의 앞뒤를 장식하는 나체캠프촌은 영화에서 가장 현실의 왜곡이 적은 부분. 아버스는 1962년 말부터 5년간 각종 나체캠프를 찾아다녔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목격한 나체캠프의 첫 번째 구성원은 잔디 깎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