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명장>,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2008-02-27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이동진 “진가신은 확실히 여성적인 감수성을 지닌 감독인 것 같더라고요. <명장> 같은 전쟁대하극을 만들면서도 정말로 관심있는 것은 인물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혜리 “<명장>에서는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세 배우가 트리오를 이뤘는데요. 저는 차라리 이연걸에게 무게를 몰아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확실히 <명장>은 이연걸의 몸보다 얼굴, 액션보다 표정에 시선을 쏟게 하는 드문 영화예요.”

눈꺼풀: 리안의 <와호장룡>에 자극받아 장이모가 만든 <영웅>의 성공 이후, 액션시대극 블록버스터는 이제 장이모(<영웅> <연인>), 첸카이거(<무극>), 서극(<칠검>), 장지량(<묵공>), 당계례(<신화>), 펑샤오강(<아연>) 등 중국과 홍콩의 대표적인 감독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달려들어야 하는 장르가 된 것 같죠? 이제 오우삼의 <적벽>까지 나오게 됐잖아요. 하지만 <와호장룡>을 예외로 한다면, <묵공>과 <영웅>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 대부분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깜박할: 그중에서 스타일 면에서 <명장>과 가장 친연성이 강한 작품은 <묵공> 같습니다. 무엇보다 물기 없는 붓으로 대범하게 그린 북종화를 연상시키는 누런 먼지 가득한 화면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죠. 물론 <명장>쪽이 훨씬 감상적이긴 해요.

눈꺼풀: 진가신은 확실히 여성적인 감수성을 지닌 감독인 것 같더라고요. 전쟁대하극을 만들면서도 정말로 관심있는 것은 인물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투장면은 매우 규모가 크면서도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중국 블록버스터들과 차이가 있는데, 정작 중반 이후의 전투장면들은 묘사가 함축적이거나 아예 생략되어 있죠. 진가신 감독으로선 중반 이후엔 드라마쪽으로 워낙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요. ^^

깜박할: “이만하면 됐지?”하고 전투장면을 수습하는 인상이었죠.^0^ <묵공>보다는 못하지만 전술의 흐름을 잘 보여준 편이었고, 전장에 쓰러진 채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전우를 외면해야 하는 참호 속 병사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장면은 지극히 진가신 감독다웠습니다.

눈꺼풀: 핵심을 짚으라면 <명장>은 기본적으로 ‘싸나이’들의 형제애와 대의명분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말하는 작품일 겁니다. 영화 속의 형제애는 처음부터 잘못 단추가 꿰어졌죠. 형제애를 맺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한명씩 죽이는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사실 <데스 센텐스> 같은 영화에서 조무래기 갱들이 주유소를 습격해 신참으로 하여금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의식을 치르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편임을 인정해주는 장면과 다를 바가 없죠.

깜박할: 그러게, 의형제는 왜 맺는지 몰라요. 뜻이 일치하면 일치하는 데까지 신뢰하고 공조하면 되지. -.- 아니, 의형제를 맺는 것까지도 좋아요. 그런데 피의 맹세를 하려면 자기들 피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무고한 타인의 피로 맹세를 한데요? -..- 아마 치욕과 죄로 맺어진 유대가 가장 강력하다는 믿음이겠지만요.

눈꺼풀: ^_^ 앞에 말씀드린 액션시대극 블록버스터의 계보에서 보면 <명장>은 액션 스타일로나 주제의식으로나 <영웅>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에요. <영웅>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선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명장>에서 방청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죠. 묘하게도 두 영화에서 그런 주장을 하거나 그 주장에 설득되는 사람은 모두 이연걸이 연기해요. ^^ 그런데 <명장>은 결국 그런 방청운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깜박할: 하지만 솔직히 전 이 영화에서 정확히 어떤 세계관들이 부딪히고 있는지 전선을 선명하게 읽을 수 없었어요. 물론 영화 자체가 흑백논리를 지양한 이유도 있겠지만, 세 주인공의 캐릭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애초의 결의가 어떤 의미인지 방점이 안 찍혀 나중에 셋이 분열하는 대목의 갈등도 약하게 와닿더군요.

눈꺼풀: 비장미에 치중해 무거운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다뤄내는 방식이 좀 둔한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명장>을 보다보면 <삼국지>와 <수호지>가 모두 떠오르죠? 원제인 ‘투명장’이란 말 자체가 <수호지>의 임충으로부터 나온 말이고, 이 영화에서 처음 군에 합류한 도적떼 출신 병사들이 108명이라는 것도 <수호지>를 그대로 연상케 하죠. 세 형제가 형제애를 맺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은 <삼국지>를 영화화하는 작품의 도원결의 장면으로 그대로 가져다 써도 무방할 거고요.

깜박할: 네. 근데 저는 만날 모여 앉아 음모나 꾀하는 세명의 늙은 대신과, 야심과 사랑 때문에 망가져가는 방청운을 보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맥베스>가…. +_+ <명장>에서는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세 배우가 트리오를 이뤘는데요. 저는 차라리 이연걸에게 무게를 몰아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확실히 <명장>은 이연걸의 몸보다 얼굴, 액션보다 표정에 시선을 쏟게 하는 드문 영화예요. 창을 갖고 드잡이하는 장면에서는 약간의 무공을 서비스로 선보이지만요. 이연걸의 다른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보람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연걸과 멜로는 역시나 옳지 않은 조합이에요! (설레설레)

눈꺼풀: ^0^ 방청운은 <명장>에서 가장 신념에 찬 인물이죠. “모든 사람을 압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이 싸우는 청운과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측면에서 이에 맞서는 이호의 대립은 사실 좋은 목적이 나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끌어들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명분이라도, 그 명분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그 명분을 가로막는 적들의 수단과 차이가 없는 것이라면, 애초의 좋은 명분조차 나쁜 가치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진가신이 <명장>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견해와 비슷한 쪽일 테죠.

깜박할: 그러나 그 모든 메시지는 먼지구름처럼 인물들을 흐릿하게 감싸고 있을 뿐이고 정작 드라마의 고비를 끌어내는 직접적 동력은 이호의 아내와 방청운의 죄스런 연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각을 제일 상세히 드러내는 캐릭터는 오히려 이호와 청운의 중간에 낀 강오양(금성무)이고요. 구조와 내용이 겉도는 형국이랄까요. -_- 아니면, 중국 관객에겐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 때문에 생긴 몰이해일 수도 있겠죠.

눈꺼풀: 오늘의 마지막 영화는 독일에서 온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입니다.

깜박할: 홀로 농장을 보살피며 사는 엠마가 기르는 돼지를 고통이나 공포없이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아니 할 말이지만 그녀의 가축들은 <추격자>의 희생자들보다 훨씬 능숙하고 인도적인 손길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_-#

눈꺼풀: <행복한 엠마…>는 무엇보다 결말이 충격적인 느낌이죠? 돼지의 평화로운 죽음과 한 남자가 암진단을 받는 장면을 교차편집한 도입부를 보면 결말이 어떤 쪽으로 갈지 예측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예측을 하고서 대하는 라스트신에서도 충격은 그리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이 시각적으로 워낙 강력한 측면이 있잖아요. 정서적인 거부감을 예상한 탓인지, 그 장면은 매우 따뜻하게 부드러운 톤으로 연출되었죠. 그게 하나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 영화의 방식이기도 하고요.

깜박할: 한마디로 <행복한 엠마…>는 ‘잘 죽는 방법’에 관한 영화였어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이 영화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방도를 모르는 남자가 행복한 임종을 베풀어줄 손을 가진 구원의 여인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알 수 있죠. 참, 지난주에 본 한 다큐멘터리영화에 의하면 암 사망자 1/3의 사인(死因)은 공포심이 낳은 스트레스라고 하더군요. *.*

눈꺼풀: 죽음에 대한 엠마의 태도와 대조적으로, 이 영화에서 문명이 죽음에 대해 보이는 모습은 예의 바른 듯 무척 냉혹하죠. 처음 마크에게 췌장암 진단을 하는 의사는 죽음을 선고받고 당혹해하는 환자에게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잖아요. 그리고 어떤 일이 닥쳐도 인간은 의연해야 해요. 친구도 만나고 일도 하고 평소처럼 지내시다가 다음주에 만나요”라고 말하죠. 사실 그건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배려도 없는 건강한 자의 오만한 발언이잖아요? 그런 비인간적인 측면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려고 이 영화는 그 장면에서 의사를 뒷모습으로만 찍기도 했죠.

깜박할: <행복한 엠마…>에서 제가 흥미로웠던 점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인간과 동물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무언의 주장, 둘째는 범법과 살인 행위를 기존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관점으로 다루는 이 영화의 접근법이었습니다.

눈꺼풀: 삶과 죽음과 행복에 대한 이 우화는 장면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들 때문에 드라마의 파괴력이 커진 경우인 것 같아요. 성적인 묘사 역시 과하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솔직하게 그려내고, 남자주인공 막스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들도 지속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걸 보면, 이 영화는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고스란히 옮겨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깜박할: 하지만 태생적으로 상투성이 강한 구도이긴 합니다. 제대로 삶을 즐겨 본 적이 없는 정리정돈 강박증이 있는 남자가, 욕망에 정직하고 자연과 합일한 ‘대지의 여신’을 만나 복된 나날을 보낸다는 설정이니까요. 인서트 컷으로 들어간 농장 풍경도 지평선을 프레임의 이마까지 올려잡아 최대한 땅을 넓게 보여주더군요. 이야기하다 보니 저는 엠마를 중심으로 선배는 막스를 중심으로 영화를 본 것 같네요. ^^;

눈꺼풀: 엠마는 그 자체로 자연이 인격화된 인물이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 그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엠마가 말할 때 마크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죠. 하지만 그 장면에서 엠마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엠마는 곧 자연에 해당하는 인물이니까요. 막스가 엠마와 함께 최후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들은 그 자체로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깜박할: 막스가 원래 가려던 곳은 멕시코였지만 그는 엠마의 농장에서 만족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어딘가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꼭 거기를 원한다는 게 아니라 그곳이 상징하는 심리적 상태를 동경하는 거구나라고 새삼 깨달았어요. 앞으로는 먼 곳으로 가고 싶어질 때면, 제 마음속 지도부터 들여다보아야겠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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