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전 이 영화의 라스트신이 참 좋더라고요. 제목의 난사는 언제 나오나 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총을 다섯발 쏘고나서 마무리로 선배 경찰에게 “죄송합니다”라고 깍듯이 사과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말 속에 이 영화의 어떤 핵심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했죠. 이인성씨 소설에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란 소설이 있잖아요? 주인공의 상태가 딱 그거라는 거죠. 왜냐하면 그런 폭발적인 감정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이,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에 놓여 있으니까요. 다음 영화로 넘어갈까요? 이스라엘영화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은 내용이나 형식 모두에서 소품인 영화죠? 러닝타임도 85분밖에 안 되고 극중 일어나는 사건도 거의 없고.
낮은: “이집트 경찰악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기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도입부 자체가 영화의 성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작아서 좋은 이야기. 작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요.
마이: 작아서 좋은 이야기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낮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악단이 이스라엘 초청 공연을 갔다가 언어 장벽 때문에 행선지인 페타 티크바 대신 베트 하티크바에 떨어집니다. 갈 데 없이 미아가 된 그들이 카페를 경영하는 한 외롭지만 씩씩한 이스라엘 여인의 도움으로 그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형제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죠? 그러고 보니 방금 이야기한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도 아키 카우리스마키에 비교되곤 하죠.
마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소재와 유머와 리듬과 페이소스 모두에서요.
낮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전쟁을 벌였던 나라들이지만 <밴드 비지트…>는 정색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전쟁 당사국의 시민들이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났을 때 싸워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는 진실을 잔잔히 설득하는 영화죠.
마이: 제가 종종 인용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나라에 대해서 편견을 갖는다”는 필립 헤머튼의 말이죠.
낮은: 국가 대 국가는 개인 대 개인이라면 차마 염치없어 못할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는 역사적 진리도 있고요.-.- <밴드 비지트…>에서 길 잃은 이집트 경찰악단을 돕는 카페를 운영하는 고독하면서도 도발적인 여자 디나는 뜻밖에도 악단원 중에서도 고집스런 늙은 지휘자 튜픽에게 눈뜸을 들이잖아요.
마이: 그걸 못 본 척해야 하는 단장 아저씨는 흡사 <밤과 낮>의 성남 같은 처지죠. ^^
낮은: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이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가 꼭 그 결핍을 채워주는 상대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성숙하게 잘 파악한 시나리오였어요.
마이: 맞아요. 저는 이 영화가 딱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말하는 게 참 좋았어요. 이 영화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끊임없이 반추하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나 종교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죠. 소통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그 소통에 올인하는 척하지 않는 종결부가 참 좋았죠.
낮은: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디나가 어렸을 적 TV에서 이집트 영화를 즐겨 봤고 그럴 때면 동네 거리가 한산했다는 추억을 말할 때였어요. 서로 죽이고 죽임당하는 나라끼리 서로의 영화를 보고 울고 웃었다는 거죠.
마이: 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은 이 영화에서 영어로 소통하는데 딱 두 장면에서 “그건 영어로 말할 수 없다”고 하죠. 그 두 가지는 섹스의 느낌과 청중 앞에서 연주할 때의 느낌이었어요.
낮은: 더 재밌는 건 섹스의 느낌을 아랍어로 들은 이스라엘 청년이 정말 감 잡아서 아가씨한테 대시한다는 거!
마이: 제가 <밴드 비지트…>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음악이 나오거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었어요. ^^ 손님들 앞에서 가족끼리 다투는 썰렁한 식사 중 한 사람이 조지 거슈인의 <서머타임>을 부르니 다들 조용히 따라 부르는 순간을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끊긴 언어의 교량을 음악이 잇는 감동이 있었어요.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밸런타인>을 부르는 장면도요. 쳇 베이커는 비운의 삶을 살았고 <서머타임>도 가사가 슬픈 노래인데 그런 노래들이 소통의 순간을 만들다니 묘한 느낌이었죠.
김혜리: 왕가위 감독도 배우도 자신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감정을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동진: 왕가위는 탁월한 감성과 스타일의 힘으로 컵의 부피를 키워서, 결국 그 감상이 찰랑대기만 할 뿐, 넘치지 않게 하는 뛰어난 감독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게 컵 밖으로 왕창 흘러넘치고 있어요.
낮은: 그럼 제대로 된 길이 등장하지 않는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밴드 비지트…>와 공통점이 있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오늘의 끝곡, 아니 끝영화로 이야기해볼까요? 뉴욕에 가면 주드 로가 실연한 손님한테 공짜로 파이를 주는 카페가 있을 것 같은 위험한 환상을 퍼뜨리는 영화예요. -..-
마이: 전 왕가위의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왕가위 영화 중 처음으로 실망한 작품이어요. -_- 재료의 함량에 비해 조미료가 너무 과다한 영화가 됐다고 할까요.
낮은: 감독도 배우도 자신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감정을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이: 전 이 영화의 연기들도 별로였어요. 특히 레이첼 와이즈와 내털리 포트먼이 그랬죠. 아픔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픔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달까요. -..-
낮은: 레이첼 바이스가 장만옥처럼 걸어오는 모습을 찍은 슬로모션은 좀 민망했어요.
마이: 심지어 레이첼 바이스의 극중 이름 수린은, <화양연화>와 <아비정전>의 장만옥 배역 이름인 수리첸과도 비슷하잖아요? 주드 로가 그중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가 팔고 싶어하는 환상에 철저히 복무해주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낮은: 뭐 주드 로와 노라 존스의 예쁜 속눈썹과 이마 클로즈업은 잔뜩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뜨악했던 건 무엇보다 인물들이 지나치게 예쁘고 지나치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보여서였어요.
마이: 왕가위 영화는 사실 상당히 감상적인 요소가 있잖아요? 그런데, 왕가위는 탁월한 감성과 스타일의 힘으로 컵의 부피를 키워서, 결국 그 감상이 찰랑대기만 할 뿐, 넘치지 않게 하는 뛰어난 감독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게 컵 밖으로 왕창 흘러넘치고 있다는 거예요. 그건 기본적으로 감상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컵의 부피를 키우지 못해서이기도 하다는 거죠.
낮은: 영국의 <가디언>이 칸영화제 당시 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리뷰를 읽었는데 참 지독한 악평이 있더군요. 영화 제목은 블루베리인데 실상은 라즈베리(가장 나쁜 영화에 매년 주는 상)를 부르는 영화라나요.-_-# 영화를 보고 나서도 블루베리 파이가 아니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레몬파이가 당겼습니다. 블루베리 파이는, 영화만으로도 너무 달았어요.
마이: 그리고 또 하나 과하게 달콤했던 건, 영화의 마지막 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