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팰트로 맞아?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눈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빗어올린 부스스한 갈색머리(금발이 아니다), 유행에 한참 뒤처진 촌스런 아줌마 패션을 한 여자가, 이제까지 알아온 기네스 팰트로일 리 없다고. 게다가 남편을 잃고 남겨진 두 아이와 어렵사리 살아가는, 씩씩한 싱글 마더를 연기한다니. 관객에게 각인된 기네스 팰트로의 이미지는 적어도 그런 건 아니었다. 화려한 고전의상, 일류 디자이너의 최신 스타일, 자애롭고 사랑스러운 미소, 똑 부러지는 영국식 악센트, 사랑에 웃고 우는 멜로의 여신.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익숙하고 안전한 방법이 어떤 건지, 기네스 팰트로가 몰랐을 리 없다. <바운스>는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위험한 ‘도박’ 같은 영화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이미지의 결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토록 원하는 걸 결국 얻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아름다움이나 고귀함 같은 것들로 포장됐던 것 같다.” 옛 애인 벤 애플렉과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말고도 <바운스>가 기네스 팰트로에게 각별한 이유는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를 체현해낼 기회였다는 것. 비행기 사고로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은 것도 황망한데, 새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남편에게 문제의 그 비행기 티켓을 양도한 ‘원인 제공자’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엄습하면서, 혼란에 휩싸이는 모습. 흔들리고 무너지고 흐트러지는 기네스 팰트로는 낯선 만큼 반가웠다. 돌이켜보면 <엠마>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고전적인 이미지, <슬라이딩 도어즈>의 모던한 도시 여성 이미지, <쎄븐> <퍼펙트 머더>의 희생양 이미지, 자연인 기네스 팰트로의 WASP적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었다. 의외의 시도들은 간간이 있어왔다. <매그놀리아>로 스타덤에 오른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에서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웨이트리스이자 창녀였고, <위대한 유산>에서는 그 자신이 “Bitch Gwyneth Paltraw”라고 소개하는 팜므파탈적인 캐릭터를 소화했다. 지적이고 우아하고 또 고상한 아름다움이 귀해진 시대. 기네스 팰트로의 출현에 보수적인 할리우드가 반색하고 열광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레이스 켈리의 기품과 오드리 헵번의 사랑스러움을 겸비한 이 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기네스 팰트로에게 쏟아진 첫 스포트라이트는,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쎄븐>에서 함께 공연하며 사랑을 싹틔운 연인 브래드 피트 때문이었고, 토니상을 수상한 연극 배우 어머니와 TV 프로듀서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배우로 홀로 서기 전에 누구의 딸로 애인으로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피플> 표지를 장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는 그녀는 결국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 꿈마저 현실로 일궈냈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이클 더글러스 같은 할리우드 실세들과 친분을 쌓고, 자연스럽게 데뷔할 수 있었다는 것, 배우로서의 시작은 쇼비즈니스계에 몸담고 있는 부모를 둔 든든한 배경 덕이었지만, 그런 후광 자체가 생명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타이타닉> 같은 블록버스터를 고사하고, <슬라이딩 도어즈> 같은 저예산 인디영화로 달려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나 개성있는 인디영화를 선호하는 취향과 고집은 그녀의 당찬 자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험하고 어려운 코스를 즐길 줄 아는 배우. 뭐 하나 모자람 없는 최신식 온실에서 피어난 이 난초 같은 여인이, 이제 초겨울 찬바람까지 맞설 각오와 그럴 강단으로 들녘에 나섰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