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동물보다는 사람이 그리운 곳
2008-05-03
글 : 씨네21 취재팀
<화려한 휴가>의 촬영지, 전주동물원에 가다

기대했던 화사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울창하게 드리워진 나무들만이 호젓하게 오는 이를 맞는 여기는 전주동물원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이곳은 선하고 소박한 광주 시민들이 웃고 즐길 수 있었던 마지막 장소였다.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익살과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이 있었다. 직접 찾은 그곳은 봄날의 동물원이 모두 그렇듯 나른한 분위기였다. 동물들은 울타리 안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동물원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전주동물원은 지방 동물원으로는 유일하게 반달가슴곰과 재규어 등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공간의 규모도 크다. 완벽하게 다 돌아보려면 한 시간이 걸릴 정도. 사육장의 간격이 넓은 데다 사이마다 꽃과 나무가 울창해 동물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큰 공원을 걷는 느낌이다. 어느덧 성당에서 야유회를 나온 민우(김상경) 일행이 게임을 즐기던 잔디밭에 도착했다. 푸르름은 그대로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좁게만 보이던 잔디밭이 그날따라 넓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공간을 채우는 사람의 존재란 이만큼 크고 소중하다.

전주동물원에는 전주 드림랜드가 포함되어 있다. 놀이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마자 신나는 댄스 음악이 울려 퍼졌다. 소풍을 온 듯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놀이기구를 향해 경쾌하게 걸어갔다. 민우의 동생 진우(이준기)도 그랬었다. 진우가 즐거워하던 놀이동산은 이제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로 채워졌다. 그들의 얼굴은 야유회 전날 밤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진우의 표정과 닮아 있다. 학생들은 총탄에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진우보다 훨씬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곧이어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민우가 신애(이요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가로수길. 자전거까지 끌고 왔지만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던 그 길 위에 단란한 세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민우가 살아 있었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부재에 가슴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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