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거장 35인이 연출한 <그들 각자의 영화관> 속 영화관 투어 [2]
2008-05-20
글 : 정재혁

차이밍량의 영화관
<꿈> It’s a Dream

어린 시절. 극장에 대한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항상 그곳에 잠시 멈추게 마련이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가는 마음으로 발길을 향하던 곳. 차이밍량의 영화관엔 시간을 잃은 기억이 묘하게 얽혀 있다. 아빠는 젊은 시절의 모습인데 엄마는 이미 할머니다. 영화를 좋아했던 외할머니를 따라 극장을 자주 찾았던 꼬마 차이밍량은 꿈속의 영화관을 두리번거리듯 영화관 곳곳에 옛 추억을 꺼내놓는다. 외활머니가 사주던 꼬챙이에 꽂힌 배는 어느 젊은 여자의 손에 들려 있다. 액자에 갇힌 외활머니와 꼬마 차이밍량, 젊은 아빠와 늙은 엄마가 한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 시간이 얽힌 이 기묘한 판타지는 아마도 꿈 아니면 영화관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빌 어거스트의 영화관
<마지막 데이트> The Last Dating Show

영화보더 더 뻥 같은 데이트. 빌 어거스트의 영화관에는 연애는 생전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덴마크 남자와 귀여운 외모의 이란 여자가 있다.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주고받는 둘. 어떻게 이야기가 잘 통해 남자는 여자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본다. 덴마크영화였던지라 대사를 영어로 통역해주는 남자. 하지만 통역이 엉터리다. 스크린에선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자는 사랑이 어쩌고저쩌고라며 작업을 건다. 그러다 남자의 통역이 시끄럽다는 세 남자가 시비를 걸고 둘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영화관을 나온다. 뻥으로 가득한 데이트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관
<3분> Trois Minutes

노란 우비를 입은 남자가 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또 한명의 우비남이 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잔 모로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거기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 남자는 앙겔로풀로스의 1986년작 <비키퍼> 속 마르첼라다. 사랑과 삶에 대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의 대사를 빌려 읊조리던 잔 모로는 컷이란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다. 사랑의 기억이 극중극을 타고 극장 속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앙겔로풀로스가 찍은, 조금은 아쉬운 3분극.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관
<내 로미오는 어디에?> Where is Romeo?

로미오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란의 한 극장에서 여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스크린엔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영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여성들이 모인 이란의 한 극장을 찾았다. 나이도, 생김새도 다른 여성들이 로미오를 찾는 줄리엣의 음성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여성들만 모인 극장을 찾아 카메라를 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픈 전율을 남긴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
<전희 영화관> The Electric Princess House

극장 안과 밖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른다. 적어도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에선 말이다. 출병을 앞둔 남자가 아이를 밴 아내, 두딸과 함께 극장에 온다. 영화를 보며 먹을 옥수수를 사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가족. 하지만 빨간 장막을 지나 들어간 그곳엔 폐허가 된 극장 내부가 펼쳐진다. 초라한 스크린엔 범핑카를 타며 즐거워하는 여자의 모습이 흑백으로 비친다. 극장 안과 밖을 가르는 세월의 차이. 따뜻한 향수를 기대하고 찾아간 그곳엔 냉정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단 하나 트릭을 부리지만 똑같은 영화”라는 악평도 없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관에 꼭 한번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장첸이 출연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관
<주조공장> La Fonderie

핀란드의 서늘한 느낌이 감도는 초록벽 앞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 있다. 극장에서 표를 파는 여자와 입구 앞에서 표를 체크하는 남자. 어느 시골의 매점 같은 이 극장은 딱 봐도 카우리스마키의 공간이다. 그만의 독창적인 색이 있고 무표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오후 6시 일이 끝난 노동자들은 공장을 빠져나와 극장으로 향한다. 극장에선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영화가 상영 중이다. 지극히 건조하게 그려진 카우리스마키의 영화관은 노동자가 노동의 의미를 확신하는 자리다.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 지극히 무심한 표정의 극장. 그곳엔 영화와 관객이 있을 뿐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뭘 찍을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집 바로 옆에 주조공장이 있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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