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최동훈] 사기꾼, 도박꾼, 이번에는 천방지축 도사다
2008-05-22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최동훈의 신작, <전우치>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와 감독은 닮아 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을 보면 그 말은 딱 들어맞는다. ‘혼이 담긴 구라’를 늘어놓으며 듣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영락없이 최동훈 감독의 분신들이다. ‘최구라’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큼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통해 그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우리는 웃고 울고 전율하고 긴장을 하곤 했으니까. 그가 조선시대 소설인 <전우치전>에서 모티브를 따온 <전우치>를 신작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무릇 이야기의 본령은 ‘옛날이야기’ 아니던가. 알려진 대로 <전우치>는 누명을 쓰고 그림족자에 갇힌 조선시대 도사 전우치가 500년 뒤인 현대에 봉인에서 풀려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에 맞서 싸우는 활약상을 그리는 영화다. 새로운 도전인 듯 보이지만, 기실 알고보면 그가 보여줬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인 <전우치>의 실체가 궁금했다.

-‘디렉터스 컷’ 웹진에 나온 대담을 보니까 <타짜> 끝나고 시나리오 10편을 받았는데 9개는 새로운 게 없었고 하나는 괜찮았지만 뭔가 잘 안 맞아서 못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택한 게 <전우치>다. 어떻게 떠올렸나.
=원래는 다른 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시나리오가 잘 안 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섯살짜리 조카가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 막 조르기에 이야기를 그냥 지어내서 해줬다. 아주 산만한 아이인데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내 얘기를 듣는 걸 보고 더이상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찍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무슨 이야기였기에.
=나는 <삼국유사> 같은 한국 고전을 아주 어릴 때 봤다. 너무 재밌었다. 완전 ‘야부리’니까.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나왔는데, 3학년 땐가 교수님이 <삼국유사>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를 해주는데 초등학생 때의 즐거움이나 대학생 때의 즐거움이 별반 다르지 않더라. 그때 조카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국 고전 속에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슈렉>을 좀 섞은 것이었다. (웃음) 그리고 얼마 뒤 아내(<박쥐>의 안수현 프로듀서)와 술을 마시다 <전우치전>이 정말 재밌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냐하면 전우치는 홍길동과 달리 대의명분이 없는 인간이고, 콤플렉스도 없고, 그냥 놀고먹고 죽자는 생각을 가진 깡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이것으로 영화를 한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게 단초가 돼서 쓰던 것을 다 엎고 이거다, 하고 생각했다. 그게 지난해 7월쯤이다.

-애초에 만들려는 영화는 무엇이었기에.
=지지난해쯤 이완용 암살사건을 영화로 만들어보려 했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겠더라. (웃음)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영화감독이 됐는데 이것을 단기간에 하기엔 좀 무리겠더라. 그러다가 지난해 5, 6월경에 사람들이 날보고 ‘왜 이렇게 후진 영화만 찍냐, 좀 고상한 영화를 찍어야지’ 하기에 뭔가 고상한 영화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녹다운이 됐다. 결국 머릿속에서 고상함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거다.

-고상한 영화라고 하면….
=형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고독한 형사, 정의로운 형사.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라면 임상수 감독님이 잘 쓰실 것 같아 시나리오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내가 너무 젊은 것 같았다. 아직은 고독한 영혼 같은 것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그런 영화는 마흔이 넘어야만 되겠더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우치는 수행보다는 풍류와 여자에 관심이 더 많은 젊은 도사다. 그는 봉인에서 풀려나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요괴 잡는 임무를 맡지만, 타고난 장난기와 승부욕, 그리고 500년간의 시차 때문에 늘 소동을 몰고 다니는 천방지축 악동이다. 하지만 원작을 읽어보면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전우치전>을 보면 시작하자마자 “조정에 벼슬하는 이들은 권세를 다투기에만 눈이 붉고 가슴이 탈 뿐이요, 백성의 질고는 모르는 듯 내버려두니” 이러면서 전우치가 이 같은 현실에 분개해서 도술을 부리는 것으로 나온다.
=그거야 그래야 백성들이 읽으니까 흥행을 위해 그랬겠지. (웃음) 전우치가 왕이나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건 그냥 의무사항일 뿐이고, 사실은 술 좋아하고, 친구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자도 좀 좋아하고, 그리고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인간이다. 그러니까 별로 목표가 없는 인간이다.

-고전 <전우치전>은 영화 속에 어느 정도나 배어들어가나.
=전우치라는 이름과 한신 정도뿐이다.

-결국 원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런데도 굳이 전우치라는 이름을 끄집어낸 이유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 <전우치전>을 너무 좋아했다. 어느 나라 민담이나 설화나 전설 같은 데에는 공통점이 있잖나. ‘트릭스터’(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또는 어릿광대)도 어느 설화에나 다 나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치면 트릭스터는 헤르메스다. 그는 나그네의 수호신이면서도 도둑의 신이기도 하다. 우리로 치면 석탈해(신라의 제4대 탈해왕)가 트릭스터의 원조다. 그에게는 약간 사기꾼 기질이 있는데, 대신의 집에다 석탄을 파묻어놓고 자기 선조가 대장간하던 집이라고 해서 집을 뺏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인물에 끌렸던 거다. 전우치도 마찬가지고.

-삐딱한 인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이 워낙 건전하니까. 그런 것으로라도 대리만족을…. (웃음)

-인터뷰에서 “사기꾼 영화를 만드니까 날 의심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사기, 도박영화 안 만들 거다”라고 했으면서도 또 사기꾼을 다루게 된다.
=그래서 범죄자들이 10범까지 가게 되는 거다. 나도 이제 전과 3범이 되는 셈이다. (웃음)

-영화에서도 도술의 세계를 많이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어떤 도술을 생각하고 있나.
=도술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진짜 도술을 피우는 것이고 하나는 속임수다. 눈을 현혹시켜서 믿게 만드는 속임수나 환영(幻影) 말이다. 우리는 주로 후자쪽이다. 열심히 누군가와 싸웠는데 알고보니 빗자루더라, 이런 식의. 원래 거대한 무언가보다 사소한 게 재밌지 않나. 그런 것들을 찾고 있다. 사실 도술이라는 게 둔갑, 염력, 공간이동 등 생각해보면 뻔하다. 최영환 촬영기사와 어떻게 찍을까 이야기를 하다보니, 도술로 안 되는 게 없는 거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뭔가 한계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런저런 전제조건도 깔아놓아야 한다.

-그런 도술의 세계는 서구적 판타지랑 많이 다를 것 같다.
=서구적 판타지는 불새를 찾으러 다니거나 양탄자 타고 날아다니지 않나. 우리의 도술은 품위가 있다. 속이는 도술이라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하는 문제도 있고.

-뭔가 참고할 만한 영화는 없었나. 이를테면 <해리 포터>라든가.
=그래서 안 봤다. <해리 포터> <엑스맨> 그런 건 아예 안 보고. 자유롭지 않잖나. 옛날 리바이스 광고 있었잖나. 헨델 음악 틀어놓고서 벽 뚫고 막 뛰는 것. 뭐 그런 거 비슷하게 우리도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이 나오고 또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하는 이야기를 썼는데, 갑자기 이석원 PD가 오더니 큰일났다는 거다. 할리우드영화 <점퍼>에 우리가 생각했던 설정이 포함돼 있다는 거다. <범죄의 재구성> 쓸 때는 <오션스 일레븐>이 개봉해서 혼자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서 거의 천식 환자처럼 영화를 봤는데, 이번엔 <점퍼>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점퍼>와 뭐가 비슷하기에.
=결국 난 안 보고 말로만 설명을 들었는데 몇몇 공간이 똑같다. 남극과 수영장. 그래서 남극을 뺐다. 그리고 하루는 아내와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다가 “뒤로 빌딩 숲이 좍 보이는 숭례문 위에서 전우치가 싸우면 얼마나 멋지냐”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딱 깼는데, 아내가 묻더라. “그 장면 썼어?” 안 썼다고 하니까 “탔어”, 그러더라. 정말 인생이 마술 같더라. 그래서 동대문에 차몰고 갔다. (웃음) 또 광화문 앞에서의 추격장면을 넣어야지 했더니 광화문을 공사한다고 천막으로 덮어놓질 않나. 내가 산 전자제품만 고장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웃음)

-<전우치>의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조카에게 이야기해줄 때처럼 여러 가지 한국의 고전들을 많이 참조했나.
=그렇다. 이를테면 <삼국유사>라든가. 읽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삼국유사>가 정말 재밌다. 철학적이기도 하고 아주 기묘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거든.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공주가 병에 걸렸는데 모든 의사가 못 고치니까 왕은 해통이라는 신통력 높은 스님을 부른다. 해통이 보니 푸른 용이 공주를 감싸고 있더라. 그래서 검은 콩 한 사발을 놓고 주문을 외우면 그게 검은 옷을 입은 병사들로 변해서 용과 싸운다. 그래서 안 되자 황급히 흰 콩을 놓고 주문을 외니까 이번에는 흰 옷을 입은 병사들이 나오고. 결국 용이 날아가면 공주가 병에서 낫는 거다. 서양과는 세계관 자체가 다른 거다. 사실 그 신도 썼다가 영화로 찍으면 찌질할 것 같아서 뺐다. (웃음) 사장된 장면만도 150신은 될 거다.

-그런 고전들을 풍부하게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됐겠다. 드디어 전공인 국문학을 살리는 것 같다.
=그래서 <금오신화>부터 <유충렬전>까지…. 정말 재밌는 건 <옹고집전>이다. 쥐가 옹고집이 자른 손톱을 먹고 옹고집으로 변하는데, <크리스마스 캐럴>과도 비슷하고. 하여튼 대학 시절 <삼국유사>를 영화로 찍겠다고 친구들에게 몇번 이야기했다가 무시당했었다. ‘바보 같은 놈, <투캅스> 같은 걸 찍어야지’ 하는 반응이었다. (웃음)

-<전우치전>은 후대에 읽히기를 지방 토호들의 부패와 이에 대한 민심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그런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이 영화에도 담기나.
=사회를 그렇게 크게 비판하지는 않는데, 전우치가 500년 만에 와서 보면 참 웃기는 사회이긴 할 거다. 어떻게 보면 <비지터>와도 비슷하다. 과거에서 온 자가 현대에 와서 어리둥절해하는 장면이 몇개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집어넣어야 할 요소가 이렇게 많나. (웃음)

-요괴라는 존재가 현대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뭔가 은유를 담고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람이 요괴보다 더 나쁘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요괴가 요괴스럽지 않지 않나. 요괴는 지금의 사회악 같은 것과 약간 비슷하다. <쎄븐>에 나오는 일곱 가지 대죄처럼. 탐욕, 식욕, 명예욕, 권력욕, 질투… 그런 것이 있다.

한때 충무로에는 ‘<전우치>가 빨리 캐스팅을 결정해야 다른 영화들도 캐스팅이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많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 참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선택은 관심을 모았다. 결국 최동훈 감독의 낙점을 받은 배우는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 유해진이다. 강동원은 당연히 전우치 역을 맡게 되고, 임수정은 조선시대에 전우치가 흠모했던 여인과 닮은 여성 서인경 역을, 김윤석은 전우치를 봉인했던 도사 화담을 연기한다. 그리고 유해진은 전우치의 도술로 사람이 된 개 초랭이를 연기한다.

-강동원을 전우치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뭐랄까, 약간 기묘한 느낌이 있다. 앞에서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고개 돌리면 0.2초 만에 그냥 실실 웃고. 그렇게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그런 배우이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하는 거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약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보통 할리우드영화는 인물이 있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려주잖나. 그게 드라마를 진행시키는 데 효과적이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인물도 재밌을 것 같다.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
유해진

-강동원의 반응은 어땠나.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라. 도사라든가 요괴 잡고 날아다니고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자칫하면 배우로서는 망가질 수도 있는데.
=아닌 것 같다. 장난기가 있긴 하지만, 그걸 이제 보완해주는 풍류라는 게 있으니까. 사실 남들은 <영웅본색>이 멋있다고 하는데 나는 단 한번도 그게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저런 식의 우정은 가급적 맺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웃음) 그런데 <다이하드>를 보고선 열광했다. 총을 들고 분연히 싸우러 가기 전에도 벽에 걸린 핀업걸 사진 한번 쓰다듬고 가야 하는 그런 모습이 좋더라. 전우치도 약간 그런 느낌이다.

-임수정이 연기할 전우치의 짝 서인경은 어떤 인물인가.
=사실 인경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경은 아주 가녀린 캐릭터다. 조선시대부터 전우치가 좋아했던 여자다. 그런데 내가 또 멜로를 싫어하잖나.

-어디선가 멜로영화를 정말 하고 싶다고 말한 적 있는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한다고 그랬는데, (웃음) 음… 일부러 멜로처럼 풀지는 않았다. 그냥 계속 전우치 옆에 있는 여자? 뭐 그런 느낌이다.

-<슈퍼맨>의 로이스나 <스파이더 맨>의 MJ처럼 전우치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는 인물인가.
=오히려 전우치를 곤란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이 영화랑 약간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보면 이 여자를 통해서 굉장히 중요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내가 원하는 건 후반으로 갈수록 캐릭터가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왜 슈퍼맨은 여자를 구하기 위해 지구를 돌아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지 않나. 웃기는 이야기다. 그러면 그 시간에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은 어쩌라고. (웃음)

-유해진이 연기하는 초랭이라는 인물은 전우치의 동반자의 느낌이다. 돈키호테와 산초랄까.
=티격태격 동반자다. 언제나 다 그렇게 한쌍이 만들어져야 재밌는 건데. <48시간>의 닉 놀테와 에디 머피처럼, 또는 슈렉과 동키처럼. 옆에서 도술을 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밌잖나. 초랭이는 원래 개인데 사람이 되고 싶어하니까 수많은 사람의 욕망이 여기 다 들어 있는 거다.

-김윤석의 경우는.
=김윤석 선배는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있다. 화담은 고상한 듯한 인간이 악당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 어쨌든 연기력에 관해서만큼은 무한한 신뢰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여타의 악당과 좀 달리 가고 싶긴 하다. 이를테면 템포를 뺏는 연기를 보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의해봐야지.

-그런데 <전우치전> 속 서화담은 나중에 전우치가 스승으로 삼고 함께 선계(仙界)로 가는 인물이잖나.
=서화담은 원래 위대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그냥 화담 아닌가.

-이번에는 예산이 많이 들어갈 텐데 부담되지는 않나.
=규모가 큰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는 단순하다. 첫째, 감독 인생을 거기에 꼴아박는다. 둘째, 돈 쓴 것을 영화에 보여준다. 그 정도. 사실 예산보다 나에게는 아직도 뭔가 이야기를 해준다는 즐거움이 큰 것 같다.

-확실히 당신의 영화는 재미있는 이야기,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사발을 푼다’는 공통점이 있다.
=30대는 약장사다. (웃음) 좋은 약을 팔아야 하는데, 계속 내가 이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가 뭔지 나도 찾고 있다. <범죄의 재구성> 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뭐랄까 사람들이 보지 못한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그냥 옛날이야기 보듯이, 좀 한국적인 것을 보여준다, 그런 거다. 어릴 때부터 한국의 고전적인 것을 좋아했다. 점점 판소리가 좋아지고 옛날 밥그릇도 찾아다니게 되고. 이게 늙는 건지. (웃음) 그리고 어쩌면 내 영화는 직업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사기꾼, 도박꾼, 이번에는 도사. (웃음)

-어쨌거나 범죄영화적인 요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누군가는 뭘 훔치고 누군가는 음모를 꾸미고 그러니까. 그래서 시나리오를 더 써야 한다. 아무리 봐도 재밌는 대사가 없다. 앞의 영화에서 그런 대사를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 (웃음)

-‘혼이 담긴 구라’ 말인가.
=그래 그거. (웃음) 영화감독은 노하우가 안 쌓인다는 게 문제다. 그때 쓰면 그게 끝이다. 야구 타자로 보면 투수가 공 하나 던지고 바로 교체되는 격이랄까. 변호사로 보면 재판 하나 할 때마다 사법고시를 또 봐야 하는 것일랄까. (웃음)

-꼭 찍고 싶은 장면이 있나.
=전우치가 그림 속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도사들이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김윤석 선배와 술 먹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근데 “구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묻기에, 나는 “철제 담을 쌓아서 말이야 와이어를 달고…” 이렇게 기술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했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동양화의 느낌이 있겠다.
=그렇다. 수묵 담채의 느낌이다.

-참고하는 이미지가 있나.
=주로 사진을 본다. 김아타 작가가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라든가. 그리고 말 타고 하늘로 날아가고 그런 그림들도 본다. 그런 거 보고 혼자 킬킬거리고 그런다. 이런저런 옛날 그림을 참고하고 있다. 연출부에는 절에 붙어 있는 탱화, 이런 걸 수집해오라고 시켰다.

-친구인 최화진 감독을 위해 <화산고2> 시나리오도 써주지 않았나.
=초고만 아주 간단히 썼다. 지난해 2월인가 같이 썼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이렇게 즐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게 아마 그때인가보다.

-그동안 18금 영화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아동과 청소년을 의식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범죄의 재구성>이 왜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는지 평생 이해를 못할 것 같다. <타짜>는 뭐 이해는 된다. <전우치전>은 <타짜>와 영화의 톤은 똑같은데 피는 뺐다는 거지. 사실 <타짜>는 얼마나 교훈적이냐. 도박하면 안 된다, 뭐 이런. (웃음)

-CG 분량이 아주 많을 것 같다.
=CG를 맡은 EON의 이전형 실장이 많다고 그러더라. 한 200신 정도? 애초에는 CG를 남들이 쓰겠거니 하는 장면에서는 안 쓰고, 안 쓰겠거니 하는 장면에서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 되고, 결국 남들이 쓰는 장면에서 우리도 써야 할 것 같다. (웃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창의적인 CG를 쓰려고 한다.

-언제쯤 들어갈 생각인가.
=8월 말이다. 8월 말에 시작하면 내년 초에 끝나게 될 것이고 후반작업을 거치면 내년 여름쯤 개봉할 수 있지 않을까.

-힘들겠다. 몸 만들어야겠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그랬지 않나. 감독은 다리로 찍는거라고. 그리고 스탭들이 좋으니까. <범죄의 재구성> <타짜>를 했던 팀이다. 최영환 촬영기사와 김성관 조명기사, 이석원 PD가 참여한다. 음악 장영규씨, 편집 신민경 기사님도 똑같은데 미술만 조화성 감독으로 바뀌었다.

-<타짜2>에는 개입 안 하나.
=<타짜2>에 내가 개입한 유일한 지점은, 장준환 감독이 카드를 못 친다고 해서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님과 셋이서 카드를 친 것이다. 그날 룰 가르쳐주고 하다가 장 감독에게 잃었다. (웃음) 그때 흡족해하는 차 대표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

-신혼인데 부인인 안수현 프로듀서는 <박쥐>를 찍는 중이고, 당신은 영화 준비 중이라 자주 못 볼 것 같다.
=요즘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부부싸움도 하고 그런다. (웃음) 뭐 주로 집에 있을 때는 둘이서 술을 마신다. 동네에서 1차 먹다가 집으로 들어와서 와인으로 2차 하고 그런다. (웃음) 아마도 한국 와인애호가 중 1만원, 2만원대 와인을 섭렵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왜 싸우나.
=음,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너무 진실되게 해주니까.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첫마디를 “아, 시나리오 정말 고생했다” 이렇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항상 “자, 문제는…!” 이렇게 시작하니까. (웃음) 그리고 또 이런 식이다. “우리 남편 대단한 것 썼네. 세 시간짜리 썼어.” (웃음)

-시나리오를 아내로서가 아니라 프로듀서로 보는 것 같다.
=그런 거다. 하지만 또 가까운 곳에 모니터 요원이 있으니까 좋다. 며칠이고, 몇번이고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웃음) 그래도 많이 고쳐야 한다. 아, 정말 고쳐야 한다. 콘티도 그려야 한다. 인터뷰 그만하자. 그리고 봉준호 감독님 만나면 제발 개봉 때 붙지 말자고 전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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