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제시카 알바] “관객이 비명을 지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2008-05-27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디 아이>의 제시카 알바

각막 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시드니(제시카 알바)는 눈앞에 펼쳐진 낯선 현실 세계와 자신의 눈에만 어렴풋이 보이는 정체불명의 이미지들로 인해 수술 뒤에 오히려 주위와 고립되어 간다. 홍콩의 동명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디 아이>의 주연을 맡은 제시카 알바는 임신한 티가 꽤 역력해 보였는데 <허니> <굿 럭 척> 등의 가벼운 코미디물이나 <판타스틱4> 같은 앙상블 액션영화와 달리 혼자서 1시간40분을 이끌어나가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에 특히 애착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시카 알바와의 인터뷰는 지난 1월22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제작노트에 보면 감독이 당신이 작품에 이 정도까지 열의를 다할 줄 몰랐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당신에 대해 흔히들 가지고 있는 편견에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별로. 자주 마주치는 반응이다. 같이 작업했던 대부분의 감독들이 다 그런 말들을 하더라. (웃음) 프로젝트에 일단 합류하면 감독에게 매일 시간날 때마다 전화해서 시나리오랑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크 엔젤> 할 때, 제임스 카메론 감독한테 그렇게 배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작업한다는 것이 사실 어느 정도 희생을 요구하지 않나. 가족이라든가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니까. 그런 만큼 영화를 할 때에는 100%를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희생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촬영 때만큼은 일이 곧 생활 그 자체라고 받아들이고 임한다.

-이번 작품은 공포물인데, 개인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집에 있어야 하지 않을 사람들이 와 있는 것.

-그런 경험이 실제로 있었나.
=아니다. 그냥 공포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인 것 같다. 아래층에 누가 있어… 등등의 상상 말이다. 공포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공포영화가 있다면.
=딱히 하나를 들기는 어려운데…. 맨 처음 나온 <13일의 금요일>이 내가 처음으로 본 공포영화였다. 그 영화 때문에 어렸을 때 한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싸이코>도 무서웠고, <새>도 그랬고, <악마의 씨>도 무서웠다.

-예로 드는 영화들이 다 심리스릴러쪽인 것 같다.
=그런가. 확실히 고어쪽은 아니다. <헬라이저>나 <쏘우>처럼 누군가가 육체적으로 끔찍하게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힘들다.

-이번 영화 속의 캐릭터는 어떠한가.
=시드니는 내면이 무척 복잡한 인물이다. 비명을 질러대며 누군가에게 쫓기는 인물이 아니라, 내면의 심리적인 공포를 천천히 경험하는 인물이다. 캐릭터 연구를 위해 시각 장애 경험을 해보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보고 몇 개월간 바이올린 레슨을 혹독하게 받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요소가 주는 공포감이 분명히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방향감각을 잃고, 각기 다른 표면 위를 걸어간다는 것. 약간의 돌출부분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드니라는 인물은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쉽게 두려움을 느끼는 실제의 나를 넘어서 그녀를 연기하기 위해서 한번 더 생각하고, 해석해야 했다.

-영화에서처럼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문득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
=글쎄. 없는 것 같다. 그 눈의 실제 주인 역을 맡았던 배우와 같이 촬영할 때 감독이 당시에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 따라하게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왠지 오싹했다. 꿈에도 나왔을 정도였으니까.

-임신 중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가. 힘들지는 않나.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내 몸을 장악해버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내 몸의 모든 변화에 그냥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를테면,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순식간에 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든지. 뭐 이런 일들에 말이다.

-앞으로 계획이 어떤가. 출산하기 전까지는 당분간 활동은 접을 계획인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작가파업 때문에 시나리오를 접할 기회가 확실히 줄었는데다가, 임신한 캐릭터가 나오는 시나리오가 흔치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브로드웨이 쇼에 출연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랬다. (웃음) 그런데 쇼가 시작될 즈음이 만삭일 때라 힘들 것 같다.

-브로드웨이 쇼는 여러모로 많이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쪽에 관심이 있나.
=그렇다. 브로드웨이 쇼도 만만치 않지만 1시간짜리 텔레비전 액션드라마는 정말 힘들었다. <다크 엔젤>할 때, 매일 찍고 토요일 새벽 6시에 촬영이 끝나서는 월요일 새벽 6시에 촬영장에 나가야 했다. 주말에는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고. 모든 장면에 내가 나와 쉴 틈이 없었다. 액션 분량을 담당하는 추가 촬영도 해야 했으니까.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올 텐데, 임신이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가.
=특별히 임신 때문이라기보다 나이가 들면서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십대 때에는 들어오는 역을 하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무엇인가 내면이 복잡하고 색다른 캐릭터를 찾게 되는 것 같다.

-평론가들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주관적이고, 정치적이기도 하고, 그외에도 복잡한 요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게는 관객이 어떻게 봐주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객이 와주고, 극장에서 무서워하고 비명을 지르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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