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이 <아임 낫 데어> 재미있게 즐기는 법 ‘인물 참고 편’이라면 이 장은 ‘작품 참고편’이다. <리날도와 클라라>(1977), <하트 오브 파이어>(1987), <가장과 익명>(2003) 등 밥 딜런이 연출, 각본, 출연 등으로 참여한 극영화들이 있지만 <아임 낫 데어> 보기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밥 딜런 열성 팬에게만 추천한다. 극영화를 반드시 한편 보아야 한다면 <관계의 종말> 한편이면 무난하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D. A. 페니베이커가 밥 딜런의 1965년 영국 투어에 동행하여 촬영한 <돈 룩 백>(1967)이 최초다. 밥 딜런이 카메라 앞에 서서 종이에 쓴 가사를 한장씩 넘기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그때 화면의 후경(왼쪽)에서 앨런 긴즈버그가 어설프게 설정된 연기를 선보이는 광경을 놓치지 말 것. <아임 낫 데어>의 쥬드가 <돈 룩 백>의 이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돈 룩 백>을 본 밥 딜런은 자신을 “호텔 방에서 뒹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타이핑이나 즐기면서 기자회견이나 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불평을 털어놓았지만 이듬해 1966년 5월 영국 투어에서 다시 페니베이커가 그를 담는 걸 허락했고 그렇게 완성된 영화 <이트 다큐먼트>(1971)에서는 심지어 공동감독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만약 당신이 <돈 룩 백>이 아니라 그 유명한 1965년 밥 딜런의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 공연에서 시작하고 싶다면 <밥 딜런: 디 아더 사이드 오브 더 미러>(Bob Dylan Live At The Newport Folk Festival, 1963~65) DVD를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아임 낫 데어>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조망하고 싶다면 마틴 스코시즈의 역작 <노 디렉션 홈>(2003)은 필수 중의 필수. <아임 낫 데어>에 등장하는 공연 중 관객과 벌이는 설전 혹은 언론 매체와 벌이는 말장난과 신경전, 비상자유인권협회에서의 사고(?) 등이 <노 디렉션 홈>을 보면 어디서 온 것인지 한눈에 알게 된다. 게다가 “밥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복잡한 사람이에요”라는 조앤 바에즈의 인터뷰(역시 <아임 낫 데어>에 차용됐다)가 있는가 하면, 밥 딜런의 곡 <하드레인>을 처음 들었던 날을 기억하며 감정에 새롭게 북받쳐 눈물을 머금는 긴즈버그의 인터뷰가 있고, “왜 (그때 관객이) 야유를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듣고 있던 노래에 대한 반응은 아닐 겁니다”라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 밥 딜런의 인터뷰도 있다. 덤으로 무명 시절의 청년 밥 딜런이 마음에 드는 LP를 수백장씩 빌린 다음 종적을 감추는 데 얼마나 선수였는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막무가내의 거짓말을 자주 했는지 말해주는 주변 증언도 생생하다. <노 디렉션 홈>만큼 <아임 낫 데어> 보기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밥 딜런의 심경을 추론하면서 <아임 낫 데어>를 보겠노라 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필독서다. 전반부는 통기타를, 후반부는 전기기타를 연주하듯 써내려 간 이 자서전에는 밥 딜런의 고백의 문장이 넘쳐나 가치있다.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진짜 사연(알려진 바와는 좀 다르게 그는 토머스 딜런의 시를 좋아해서라고 말하지 않고, ‘딜런’이라는 발음이 그냥 멋있게 들렸다고 말한다!). 음악가인 자기를 시대의 변호인으로 만드는 규정들에 대한 분노 “나는 그들(가족)을 지키고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잘난 체하는 인간들이 언론에서 나를 대변자라느니 심지어 시대의 양심이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더러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강한 태도로 사회로 돌아오라 협박(?)했던 그룹들(<아임 낫 데어>에서 칼을 들고 협박하는 호텔 웨이터를 상기할 것)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일부러 저지른 행동들. “위스키 병을 들고 머리에 술을 붓거나 백화점에서 술에 취한 행동을 하는 뜻밖의 일들은 내가 떠난 뒤 모든 사람들이 숙덕거릴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자서전의 흥미로움은 그의 고백이 가까운 주변인들이 그를 설명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거나 일부러 뭔가를 누락시킬 때 생긴다. 그러니 밥 딜런은 여전히 거짓말의 선수인가. 아니면 그는 여전히 거기 없는가. 이 자서전의 행간을 읽어가는 건 실은 <아임 낫 데어>를 보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