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처음으로 얼굴을 접했을 때 ‘와! 세상에 이렇게 예쁜 사람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들고 한대 얻어맞는 것처럼 머리가 꽝 하고 울리는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요. 물론 그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길어야 몇년 정도면 끝이죠. 그렇다고 그 미모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익숙해지면 처음의 꽝 하는 효과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때는 왜 처음에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고. 그럼 좀 슬프죠. 대상이 누구건 그 꽝 하는 감정은 꽤 즐거운 경험입니다.
제시카 알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전 이 배우를 어린이 TV시리즈 <플리퍼>에서 처음 봤습니다. 아직 파릇파릇한 틴에이저 시절이었는데, 애가 화면에 나오자마자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이 갑자기 또렷해졌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알바의 외모가 주는 효과는 그만큼이나 즉시적이었어요. 거의 설탕 한 스푼이 주는 쾌락과 같았죠. 얼굴을 보면 당수치가 픽 하고 솟아올랐어요. 지금도 이 배우의 얼굴을 보며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 경험이 <다크 엔젤> 시절까지 갔어요.
어느 인종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은 모호함을 가진 예쁜 베이비 페이스와 완벽한 몸매는 제시카 알바라는 배우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아무도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알바라는 배우를 깔봐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외모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것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몸매 좋은 배우에게 비키니를 입혀놓고 바하마 해변에서 오필리아를 연기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연기가 아주 훌륭할 수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오필리아 대신 바하마 해변의 비키니 미녀만 볼 겁니다. 알바는 그런 효과를 스크린에 나올 때마다 제공합니다. 알바의 외모는 ‘시네마’라는 장르에서 최상의 재료는 되지 못합니다. 제시카 알바를 보면서 안나 카리나나 메리 픽포드, 잉그리드 버그만을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알바의 이미지는 형성됨과 동시에 고정됩니다. 영화에서 이미지는 흘러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흐른다’는 것은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와이어 액션을 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도 좋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지요. 연기 경력이 긴 배우지만 알바는 아직도 제대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알바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단 한번도 ‘연기파’ 배우로 훈련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그게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배우로서는 늘 그보다 더 많은 걸 원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역할을 연기한 <어웨이크> 같은 영화를 보면 갈 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얼마 전에 알바의 신작 <디 아이>를 봤습니다. 동명의 홍콩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아마 알바가 배우로서 가장 공을 들인 영화일 겁니다. 어떠냐고요? 원작의 이심결이 여전히 낫습니다(그리고 알바의 바이올리니스트 흉내는 정말 서툴러요!). 하지만 알바의 필모그래피를 놓고 보면 이건 상당한 발전입니다. 여전히 제 시선은 알바의 표면적인 외모에 쏠리지만 뭔가 하려는 의욕과 지금까지 거의 안 쓰던 연기 근육을 움직이려 하는 게 보이더군요. 의욕과 시도만으로 모든 걸 이룰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그런 걸 보여주면 최종 평가는 유예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