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카운트다운, 초대형 만주 웨스턴 발진!
2008-07-22
글 : 문석

7월7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기자시사회가 열린 CGV용산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시사회 입장권을 구하려는 자와 입장권이 부족해 허덕이는 자, 그리고 가짜 명함으로 입장권을 빼돌려 ‘한류 관람단’ 또는 이병헌의 열혈 일본 팬들에게 팔아넘긴 암표 파는 자들이 뒤얽혀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이 초대받지 않은 자들과 당연직 참가자인 기자들과 극장 관계자들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영화산업 관계자들 대부분까지 찾아와 즉석에서 ‘한국 영화인 대회’라도 열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것은 그만큼 <놈놈놈>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만주 웨스턴’의 전통을 이어 한국영화의 장르적 지평을 넓히고,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영화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 영화의 첫인상과 다양한 반응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꿈속에 품고 있던 30년대 만주 벌판을 재현해낸 김지운 감독과의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1930년대 만주는 어떤 공간이었나. 일제의 억압과 가난 속에서 수많은 유민은 중국 대륙으로 떠났고 그중 상당수는 개척되지 않은 만주 벌판에서 정착했다. 대규모 철도사업과 공장이 건립됐던 만주는 조국을 등진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개척기의 미국 서부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과 일본의 관동군이라는 존재를 빼놓으면 19세기 미국 서부와 30년대 만주는 인간의 헐벗은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치열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니 60년대와 7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만주 웨스턴’이라는 하위 장르가 생겨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 영화는 대개 독립운동이라는 소재와 관련이 있었지만, 외롭고 뿌리 잃은 사나이들의 처절한 분투기라는 점에서는 할리우드의 ‘오리지널 웨스턴’, 또는 이를 뒤틀어 변용한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웨스턴’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또한 이 같은 시공간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 영화다. <놈놈놈>의 세 주인공 윤태구(송강호), 박창이(이병헌), 박도원(정우성)은 희미하게만 묘사될 뿐이지만, 한반도에서 퉁겨나와 만주를 무대로 거칠게 삶을 꾸려가는 남자들임에 틀림없다. 장총을 들고 멋진 모습으로 황야를 거니는 도원이 공동체와 유리돼 ‘독고다이’ 노선을 고수하는 웨스턴 속 영웅 이미지에 가깝다면, 패거리를 이끌고 악행을 저지르는 창이는 최후의 순간 영웅과 일전을 벌이게 되는 전형적인 악당인 셈이다. 여기에 그 중간쯤에 자리한 듯 보이는 부랑아 느낌의 태구가 결합하면서 <놈놈놈>의 삼각형은 완성된다. 이들의 ‘삼각관계’를 비로소 만들어내는 것은 수수께끼의 지도다. 친일인사 김판주(송영창)가 쥐고 있던 지도는 계략에 의해 일본인 거물 가네마루의 손에 들어간다. 애초 창이에 의해 다시 김판주에게 돌아오기로 돼 있던 이 지도는 뜻하지 않게 열차털이범 태구의 손에 들어간다. 태구가 평온한 지도의 궤도를 건드림으로써 사건은 시작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결말에 이르기까지 지도가 지시하는 바는 드러나지 않는데, 그때까지 지도는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 지도는 태구에게 청나라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인생 역전의 기회이지만, 창이에게는 자존심을 손상케 한 목표물이고, 독립군에게는 일본군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는 핵병기인 것이다. 영화 초반 “지도는 봤어도 못 본 거고, 있어도 없다고 생각해야 뜻이 보이는 거야”라는 김판주의 대사처럼 이 지도는 (김지운 감독의 의도대로) 맥거핀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의지가 보여주는 볼거리

<놈놈놈>에서 지도의 실체나 임자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의지와 욕망이다. 각자 파악하는 실체는 다르지만 지도를 갖겠다는 욕망만큼은 모든 인물에게 공통적인 것이기에 지도를 둘러싼 모험은 치열해진다. ‘<놈놈놈>에는 이야기가 없다’는 불만은 이 때문에 튀어나온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정리한다면 누구라도 ‘지도를 찾는 세놈과 또 다른 놈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소소한 반전과 복선이 숨어 있긴 하지만, 어떤 이에게 이처럼 단순한 줄거리는 순제작비 175억원짜리 영화에 걸맞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정합성이 떨어지는 전개와 등장과 퇴장이 감잡히지 않는 인물들, 불친절한 상황설명 등은 이 영화의 큰 결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계속해서 힘줘 강조하는 바는 ‘누가 누구를 쫓고 누가 누구에게 쫓기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쫓고 누가 어떻게 쫓기는가’이다. 김지운 감독은 이 텅빈 괄호 같은 지도를 들고 튀는, 그리고 그것을 쫓는 행위와 그들의 표정에 주목한다. 한국영화 사상 초유라 할 수 있는 액션장면이나 놀라운 시각적 자극들 또한 주인공 세명과 그 주변 인물들의 강인하고 집요한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송강호가 주로 보여주는 영화 속 유머 코드 또한 이러한 처절한 의지와 욕망의 일환으로 드러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그의 욕망은 폼 나지 않는 행동으로 표출된다. 때문에 <놈놈놈>에서 중요한 점은 그 욕망들의 깊이와 색깔과 농도가 스크린 바깥으로 제대로 전달되는가가 될 것이다. 만약 관객이 스크린 속 그들의 표정과 행보에서 그 치열함을 적극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놈놈놈>은 준비해놓은 쾌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그냥 의미없는 멋진 포즈, 또는 허탈한 똥폼에 불과하다고 일갈할 가능성도 있다.

어찌됐거나 <놈놈놈>에서 부인할 수 없는 매력은 볼거리다. 실패한 몇몇 ‘한국형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이 영화는 다행히도 들인 제작비의 효과가 극대화돼 나타난다. 시각적인 요소들간의 균형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국열차 안에서 펼쳐지는 공간 특성을 활용한 격투장면이나 초현실적 느낌의 귀시장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한 백화점식 액션, 그리고 무엇보다 대평원에서 보이는 스케일 큰 추격장면은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다.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쿵짝거리는 박자소리에 맞춰 말과 오토바이와 지프차가 사막을 배경으로 무한질주하는 이미지가 대륙의 호쾌한 정서를 전달한다. 몸과 마음을 던져가며 이 영화를 위해 헌신했던 스탭과 배우들의 흥건하게 고인 피와 땀과 눈물 또한 뚜렷하게 보인다. 물론 그러한 시각적 쾌감이 보는 이의 정서적 만족감으로 이어지느냐는 다른 문제다. 드라마적 완결성에 의문을 갖고 보면 단점이 두드러지는 반면 액션 스펙터클에 빠져들면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첫 시사를 마친 뒤 평론가와 기자의 반응이 다양한 분포를 보인 것은 영화 자체가 뚜렷한 장단점을 보여준 탓일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 안에 묻어놓았다는 ‘오락영화의 진심’이 관객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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