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한 캐릭터가 자기 마음에 갇힌 이야기”
2008-07-23
글 : 김도훈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몽환적인 스릴러 <52구역>의 감독 알렉시스 알렉시우

그리스영화 <52구역>은 기억에 갇힌 남자에 대한 몽환적인 스릴러다. 건축가 이아소나스는 페넬로페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깬 이아소나스는 페넬로페와 그녀의 물건들이 아파트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한다.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아소나스는 천천히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기기 시작하고, 결국 무시무시한 비밀을 알게 된다. 슬프게도 혹은 재미있게도, 알렉시스 알렉시우 감독이 <52구역>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예산이 없었던 탓에 한정된 장소,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모든 것이 벌어지는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시우 감독은 적은 예산이라는 장애를 끝내주는 상상력으로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 이아소나스는 좁은 아파트에 갇힌 채로 끝없이 지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나 기억은 끝없이 반복되며 정해진 비극으로 치닫을 뿐이다. “이건 한 캐릭터가 자신의 마음에 갇혀버린 이야기다. 필립 K. 딕의 소설처럼 진짜와 가짜 사이에 갇힌 인간의 이야기 말이다.” <52구역>은 이미 브뤼셀, 로테르담, 시체스, 트란실바니아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국제적인 호평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고, 부천에서도 가장 빠르게 매진된 작품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알렉시우 감독은 젊음 감독들이 그리스에서 장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장르필름? 그리스에는 한해 15편 정도의 리얼리티 드라마나 간단한 코미디물이 만들어질 따름이다. 장르는 아예 저변조차 없다.” 하지만 그리스는 신과 여신들과 영웅들이 호령하던 일리아드 세계의 근원 아니겠나. 알렉시스 알렉시우 감독의 노련한 데뷔작 <52구역>은 젊고 활력 있는 장르의 재능들이 그리스에도 살아 있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한다. 이젠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이름만을 기억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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