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구경하는 남자, 구경남이 온다
2008-09-30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글 : 김혜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 촬영현장

밥차도, 발전차도, 웅성거리는 스탭도 보이지 않는다. 8월29일. 제주도 한림읍 귀덕리에 자리잡은 강요배 화백 작업실은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도록 평온하다. 평상에 모여 홍상수 감독이 난산 중인 오늘치 대본을 기다리고 있는 열서너명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스탭 전부다. 고사에는 출연배우 매니저들이 스탭보다 머릿수가 많았다는 말이 그럴듯하다. 홍상수 작품 번호 9번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에 너나없이 노 개런티로 합류한 배우는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을 비롯해 유준상, 공형진, 문창길, 하정우, 정유미 등 호명하기가 숨차다. 인물도 많고 대사도 많다. 줄곧 관객을 이끄는 영화의 구심점은 김태우가 분하는 영화감독 구경남. 하지만 그 또한 명실상부 구경하는 남자다. 구경남은 어떤 식으로든 ‘새 삶’을 시작한 과거의 지인들을 순방한다. 제천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 공연희(엄지원)를 만난 경남은 제주도로 와 선배 양천수 화백(문창길)과 그의 젊은 아내 고순이(고현정)와 조우한다. 다른 장소, 두 여인이라니 <생활의 발견>이 떠오르는데, 김태우와 고현정은 고개를 젓는다. 이번에는 유난히도 구조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겉이 푹신한데 속은 단단한 물체 같다고. 두 번째 촬영지는 해안도로 횟집. 현장 통제가 필요한 야외장면이 닥치니 비로소 단출한 스탭의 수가 아쉬워진다. 구경남과 양 화백, 고순이, 셋이서 막걸리를 먹는다. 선배 부부가 잘사는 이야기를 듣던 구경남, 뜬금없이 묻는다.“그럼, 선배님 섹스는 어떻게 되시나요, 요새?” 당황한 노년의 남자가 더듬는다. “음, 섹스는, 잘 안 된다고 봐야지.” 홍상수 감독은 3인숏에서 2인숏, 원숏으로 오가는 시점을 김훈광 촬영감독(<밤과 낮>)에게 정확히 주문한다. 현장의 홍상수는 정중하고 가차없다. 원하는 바가 구체적이고 결단은 신속 단호하다. 이 영화의 조감도를 보고 있는 것은 햇빛에 부신 듯 가늘게 뜬 저 눈뿐이다(<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9월 초 29회차로 촬영을 마감하고 편집을 마친 상태다. 2009년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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