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도덕성에 둘러싸인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
원작자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각본가 윌리엄 모나한, 프로듀서 도널드 드 라인 인터뷰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원래 리들리 스콧과는 ‘The Invisible World’라는 기존의 시나리오 각색건으로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 중인 여성 저널리스트가 현지의 이라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짐으로 둘 다 위험에 처해지는 내용인데 그 프로젝트 때문에 여기 도널드나 윌리엄 모두가 본격적으로 모이게 되었다.
=윌리엄 모나한: ‘The Invisible World’로 이른바 데이비드가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셈이었으니까. (데이비드를 보고 씩 웃는다.) 그러다가 리들리가 데이비드의 <바디 오브 라이즈> 원고를 건네주더라. 정말 뛰어난 첩보물이었다. 이런 작품을 놓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소설이 처음으로 영화화된 셈인데 영화를 보니 어떤가.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흥분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작가로서 전달하고 싶어했던 주제인 CIA의 세계, 그 세계가 실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이 어떤 도덕적 경계에 서 있는지 등 이른바 중동에서의 미국인이라는 그림이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어서 만족한다.
-기자였던 경험이 스파이물을 쓰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내가 이해한 그 세계 속 인간들의 역학 관계가 늘 흥미로웠던 이유는 그 관계들이 내가 속한 저널리즘의 세계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리포터의 과제는 소식통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그가 남들과 공유해서는 안 되는 정보를 빼내는 것이다. 때로는 그 정보 때문에 정보를 흘린 사람이 곤란해지는 상황이 온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비밀스런 교환들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유사점은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와 편집장과의 관계이다. 내가 특파원으로 일했을 때 나와 편집장의 관계는 바로 페리스와 호프만의 관계 그대로였다. 당시 편집장과 전화할 때마다 말 그대로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놈의 편집장은 도대체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이라크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두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인 영화이다. 그에 대한 각자의 관점은 어떤가.
=윌리엄 모나한: 정치적인 영화라고 말할 때 대개는 어떤 특별한 의제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사실상 CIA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좀더 현실에 가깝게 보여주는 데 있다는데….
=도널드 드 라인: (윌리엄의 말을 끊으며 프로듀서답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좋은 스파이영화다!
=윌리엄 모나한: 호프만은 극중에서 레오가 지적하듯이 스스로를 ‘미국’으로 보고 있다. 그의 모든 대사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관점을 깔고 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아니다. 실상 그는 미국인의 어떤 타입의 결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실책을 범하곤 하는 존재다. (말을 더 이으려고 하는데…)
=도널드 드 라인: 호프만의 뻔뻔하고, 막무가내인 면은 요르단의 정보 수장인 하니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들의 오랜 역사만큼 그들은 좀더 기다리고, 좀더 큰 그림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체제를 운영한다. 하니는 과일이 제대로 익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페리스는 그 둘 사이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고. 이 영화에는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따로 없다. 어느 누구도 선과 악의 구분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다.
=윌리엄 모나한: (여전히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그렇다. 정치성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약간 답답해하다가) 예술가로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런 정치성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력할 뿐이다.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이 영화는 스파이 스릴러물이다. 스파이 스릴러 영화의 매력은 그를 둘러싼 시대를 미묘하게 포착해낸다는 점에 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나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그려진 냉전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모든 것이 회색빛이고 모호해진 도덕적 경계라는 주제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도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와 같이 여전히 모호한 도덕성에 둘러 싸인 지금 이 시대가 전해졌음 한다.
“시간은 돈이며 느려지면 배우들이 지친다”
리들리 스콧 감독 인터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러셀 크로를 캐스팅한 이유는.
=그야 그들이 현재 가장 뛰어난 할리우드 배우들이니까. 처음 책을 읽어내려가는데 ‘이건 레오군… 맞아, 이건 레오야…. 이건 러셀이 맡으면 되겠군’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캐스팅 리스트를 펼쳐두고 누굴 선택할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캐스팅은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누가 적임자일지가 바로 보인다.
-러셀 크로는 어떤 배우인가.
=러셀은 언제나 왜 자기여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래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주인공인 페리스가 아니면서도 그와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고, 그렇기에 좋은 캐릭터 연구가 되지 않을까라고 대답해줬다. 그러면서 슬슬 이제까지 그가 연기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인사이더>의 제프리 와이갠드라든가, 며칠 전에 만났던 사람이 CIA쪽에서 일했던 모양인데 몸무게가 꽤 나가더라, 꽤 뚱뚱하고 땀을 많이 흘리더라며 지나가듯 덧붙여준다. 그때부터 러셀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러셀 크로는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지만, 당신과는 유난히 호흡이 맞는 것 같다.
=러셀은 말을 돌려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무척 똑똑한 배우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는 영국인이고 그는 호주인이라 건조하고, 다소 차가운 유머감각을 공유해서 둘이 잘 맞는 것 같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는 예산에 맞추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들이 대개 벅찬 규모들이다 보니 예산 범위에서 계획했던 그림들을 잡아내기 위해 멀티 카메라 시스템을 고안해낼 수밖에 없었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11대의 카메라와 카메라팀을 돌렸다. 이렇게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면, 직감적으로 순간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멈칫하는 순간, 모든 게 다 느려져버린다. 그러면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간다. 시간은 곧 돈이지 않나. 또 하나, 배우들의 연기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한쪽만 카메라에 잡히면 상대배우가 스스로 리허설도 할 겸 프레임 밖에서 대사를 쳐주고 싶어하는데, 왜 그렇게 배우를 낭비하나.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 배우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또 느려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나는 같은 부류다”
러셀 크로 인터뷰
-50파운드를 어떻게 찌웠나. 맥도널드만 먹었나.
=뻔하지 않나. 그냥 한다. 대단한 게 아니다. 캐릭터에 맞다고 생각했고, 그게 리들리가 보는 캐릭터의 모습이기에 했다. 캐릭터가 좀더 현실감있게 다가와야 하니까.
-이런 정치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할 것 같은가.
=이 영화의 박스오피스 성공 여부는 영화의 완성도에 따를 뿐이다. 리들리가 어떤 정치적인 의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전 세계를 현실에 가장 근접하게 묘사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 세계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 세계 속에서의 속고 속이고 유혹하며, 버리고 버려지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리들리 스콧 감독과 몇번이나 함께했는데 그와 작업하는 것은 어떤가.
=그는 내게 딱 맞는 존재다. 하루의 일이 끝났을 때 무엇인가 이루어냈다, 제대로 일을 했다라는 그 기분이 좋다. 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스쳐지나가는 와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두 번째 신에서 문이 아니라 창문이면 어때?”라고 하면, “아, 그게 좋겠다”라고 말하고는 각자 또 가던 길을 가는 식이다. 우리는 현장에서의 이런 직관적인 판단을 제대로 살리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 나중에 영화에 그대로 그 느낌이 드러난다. 우리가 빠르게 일하는 방식이 그런 느낌을 살리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리들리는 오래전부터 2대의 카메라로 20주 동안 일하는 것보다 5대의 카메라로 10주 동안 일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그게 나는 참 좋다. 왜냐하면, 내가 연기할 때, 나와 내 상대편을 향하는 카메라가 따로 있다는 소리니까. 클로즈업 숏이나 와이드 숏, 내가 하는 세세한 리액션 숏들이 그 한번의 테이크에 다 담기고 있다는 소리니까. 리들리의 연출 방식은 누구보다도 즉각적이다. 촬영장에서 그는 5팀의 5개의 카메라를 잡아내고 있는 5개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그 앞에서 그는 마치 자신의 캔버스 앞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처럼 어느 공간에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필요한 요소를 바로 집어넣어 완성시킬 수 있는 감독이다. 감독 의자에 기대 앉아서 모니터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이미 리들리의 머릿속에서는 영화가 편집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는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내게 맞다는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부류(Bloke)이다.
“정치적인 소재의 영화에 흥미를 느낀다”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인터뷰
-정치적인 소재의 영화에 특별히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하나.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니까. <블러드 다이아몬드>도 그런 맥락에서 한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고 흥미로운 주제라고해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아가서 훌륭한,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면 그건 정말 철저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의 관계는 이른바 당신과 마틴 스코시즈와의 관계와 유사할 것 같은데.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업을 같이 하다 보면 얼마나 서로를 편하게 느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느냐라고 할까. 첫 리딩 때였나, 그 둘과 시나리오를 읽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둘이 “그 세신은 그냥 한 장소로 묶어버리는 게 어때?” “어, 그게 좋겠다”라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두신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서로의 직감에 의존하는 두 사람이라 처음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CIA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나.
=당연히. 그들이 처한 상황의 위험도나 긴박성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 세계의 특성상 접근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의 소설이나 그의 경험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몇몇 시퀀스를 위해 전직 CIA 요원을 만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얼마나 그 세계가 복잡한지, 우리가 다른 나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