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거울처럼 마주보는 영화와 현실, <셜록 주니어> <애프터 미드나잇>
2008-10-24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년 감독 버스터 키튼 상영시간 44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석포맷 DD 2.0 무성영화 자막 영어 출시사 키노(미국)
화질 ★★★ 음질 ★★★ 부록 없음

<애프터 미드나잇> Dopo Mezzanotte(After Midnight)
2004년 감독 다비드 페라리오 상영시간 88분 화면포맷 1.78:1 비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이탈리아어 자막 한글 출시사 인디스토리
화질 ★★☆ 음질 ★★★ 부록


<셜록 주니어>
<애프터 미드나잇>

영화는 현실의 반영인가, 창조된 허구인가. 삶에서 중요한 건 현실의 조건인가, 꿈의 힘인가. 영화의 오랜 주제인 ‘현실과 꿈’(또는 환상)은 영화의 생산자는 물론 관객에게도 계속되는 질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현실의 우위를 가정하며, 그럴 때마다 꿈과 환상은 하위로, 도피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그것은 혹시,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꿈이 현실을 전복할 힘을 부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실주의자들의 음모 탓이 아닐까. 영화가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듯이, 현실과 꿈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마침내 삶을 형성하는 대등한 두 요소다.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는 영화가 예술과 현실, 꿈과 현실의 주제를 다룬 가장 훌륭한 예다. 옛 격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둘 다 잘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으로 시작하는 <셜록 주니어>는 그 말에 의문을 품는다. 여기서 ‘두 가지 일’이란 현실과 꿈을 뜻하는 것이며, 결국 현실을 우선시하라는 말이다. 시골 극장에서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고 있는 영사기사는 탐정이 되고자 틈틈이 공부한다. 현실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오히려 슬픔만 안겨주자, 나약하고 소심한 그는 극장으로 돌아와 필름을 돌리다 잠에 빠진다. 꿈에서 남자와 연인, 악당 등 현실의 인물은 영화 속 인물로 재등장하고, 위대한 형사가 된 주인공은 범죄를 해결하면서 연인의 사랑도 얻는다. 꿈에서 깨어난 그에게 잘못을 사과하는 연인이 찾아오는데, 연애에 서툰 그는 다시 영화의 장면을 하나씩 따라한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한다.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장면에 이르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셜록 주니어>를 보는 관객은 키튼의 캐릭터를 통해 누가 영화의 인물이고 누가 꿈속의 인물인지 되뇌다 종내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돌아온다.

거울처럼 마주 보는 영화와 현실, 스크린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황,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거쳐 <애프터 미드나잇>에서 반복된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소재한 국립영화박물관의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남자는 밤엔 먼지 쌓인 무성영화를 틈틈이 틀어보면서(<셜록 주니어>의 주인공처럼), 낮엔 낡은 무비카메라로 주변을 찍으면서 보낸다. 그는 뤼미에르 형제같이 필름 위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지만, 키튼의 단편영화(그는 키튼의 단편이 장편보다 더 재미있음을 아는 사람이다)와 지오반니 파스트로네(<카비리아>로 유명한 이탈리아 감독)의 <불!>에 묻혀 사는 그에게 현실은 벽 너머 세상일 뿐이다. 어느 날, 현실에서 벗어나는 게 꿈인 여자가 그를 방문하고, 현실을 파괴하며 살던 그녀의 애인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꿈과 현실의 중간지대에 머물던 그는 혼란을 겪는다.

영화평론가, 작가인 다비드 페라리오의 <애프터 미드나잇>은 영화광이 만든 수줍은 아마추어 작품이자 끝없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체다.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시네마는 영원하다”는 선언으로 마친다. 영화는 끝나지만 당신의 이야기가 이어질 거라고 말하는 <애프터 미드나잇>의 결말은 정확하게 80년 전에 만들어진 <셜록 주니어>와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한다. 단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일이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자양분을 꿈으로부터 취하면서 말이다. 두 DVD엔 부록이랄 게 없다. 그 말쑥함이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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