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변덕 없는 세상
2008-12-12
글 : 고경태

<주니어 씨네21> 같습니다.
이번호 표지그림은 <벼랑 위의 포뇨>! 맑고 고운 동심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열장이 넘는 시안을 뽑았습니다, 라고 말할 순 없고요. 딱 와닿는 한장이 무엇인지 헷갈려 최대한 많이 컬러로 출력해보았습니다. 그림을 표지 전체에 가득 채우는 게 좋을지, 여백을 조금이라도 남기는 게 효과적일지부터 판단이 잘 안 섰습니다.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너무 익숙한 장면, 중요도가 떨어지는 풍경, 주인공인 포뇨가 도드라지지 않은 그림은 제외하면서 하나하나 후보를 좁혔습니다. 결국 마지막 하나를 골랐습니다.

밑의 그림들은 표지 탈락작(!)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쳐다보노라면 그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마감날 기자들은 이 표지후보 그림들을 서로 가져가 책상 위에 붙이겠다며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왁자지껄 작은 소동이 벌어졌지요.

얼마 전 후배기자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사주간지와 영화주간지 두 가지를 다 만들어보니 뭐가 다르더냐.” 먼저 표지가 떠올랐습니다. <씨네21>은 예전에 만들던 <한겨레21>보다 표지를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적은 것 같습니다. 인쇄공정상 전체 마감이 끝나기도 전에 오케이 대장을 넘겨줘야 하는 탓입니다. 그래서 비주얼과 카피 선정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영화주간지의 표지엔 있습니다. 한마디로, 변덕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죽 끓는 듯한 국내외 정세의 변덕에 능동적으로 즉각 대처할’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시사주간지를 만들 때에는 마감 와중에 김일성 주석이 죽는다거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거나, 9·11테러가 일어나 표지기획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새롭게 급부상한 이슈나 완성도를 핑계로 최종마감 직전에도 표지를 바꾸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럴 땐 죽을 맛입니다. 표지 비주얼을 몇 시간 만에 급조하려면 디자이너도 애를 먹게 됩니다. 여기에 비하면 <씨네21>의 표지는 세파에 휩쓸리지 않는 안정성을 지녔다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왕이면 세상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도 변덕을 평~생 부리지 않는다면 더 좋을까요? 당근 안 좋겠지요. 변수가 없는 세상, 예측을 몽땅 허락하는 생활은 재미없습니다. 갑자기 변덕을 부리고 싶어지는군요.

*** 최근 <씨네21>이 영화비평을 박대한다는 소문이 독자들 사이에 스멀스멀 기어다닙니다. 사라진 ‘전영객잔’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필자들의 개인사정으로 두달간 휴업 중입니다. 새해와 함께 다시 변덕스럽게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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