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하] “이야기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2009-01-01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처음으로 사극 선보인 유하 감독 인터뷰

-기자시사와 VIP시사 이후 다시 편집을 한다던데.
=시사 때 상영한 버전이 2시간23분짜리인데, 사실 애초부터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래도 스토리라서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 거다. 후반부의 지나치게 설명적인 부분을 10분 정도 자를 생각인데, 그러면 극장에서도 한회가 더 나오니까 투자사와 제작자도 좋아할 것이다. (웃음)

-애초에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에 이어 ‘폭력 삼부작’의 세 번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세 번째 영화를 만들려다 보니 내가 너무 액션쪽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 해서 다른 장르를 다루면서 변화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는 40대 가장인 직업 조폭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우아한 세계>가 나와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가 하려던 것과 똑같더라.

-<쌍화점>은 어떻게 시작됐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찍은 뒤 멜로영화를 한편 더 하고 싶었다. 그것도 격정적이고 에로틱한 멜로영화 말이다. 그러다가 사극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멜로는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멜로드라마라면 신분, 제도, 윤리 등의 장애물이 명백히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별로 없지 않나. 그래서 사극을 생각했는데, 우연히 <고려사절요>를 보다가 공민왕 이야기를 만났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만든 조선에 의해 많이 왜곡되긴 했지만 공민왕은 실제로 트랜스젠더였다. 여장도 하고, 남의 성관계를 엿보기도 했다. 그리고 귀족 자제들을 꾸려서 자제위라는 친위부대를 만들었는데, 그들과 남색을 즐기기도 했다. 결국 공민왕은 홍륜이라는 인물에 의해 난자당해서 죽는다.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성 정체성이라는 장애물을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실제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많이 반영한다는 느낌이다.
=정사에 따르면 노국공주가 죽은 뒤 공민왕은 총기를 잃고 자제위 소속인 홍륜, 한안 이런 예쁘장한 남자 아이들과 남색을 즐겼다. 후사가 없다보니 그들과 후궁들을 관계 맺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익비라는 후궁이 임신을 했다. 그 사실을 최만생이라는 내시가 왕에게 알리니까 공민왕은 그들을 다 죽이라고 지시했다. 공민왕이 원나라에 독립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림과 거문고 연주 등 예술에 능했다는 점, 노국공주가 강단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 왕위를 노리는 조카가 있었다는 점, 원에 힘입은 대신들이 있었고 공민왕이 그들을 일거에 몰살한 것도 모두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그렇게 여기저기에 흩어진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했고, 내가 멜로드라마만 만들어서 살을 입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왜 공민왕이라고 적시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너무 역사적 사실에 얽매여서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잘못하면 역사왜곡이라는 비판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제목을 <쌍화점>이라고 지은 이유는 뭔가.
=고려가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문헌을 보니 <쌍화점>이란 노래를 궁중에서 왕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런 음탕한 가사의 노래를 왕이 불렀다니 충격이더라. 그런 고려의 도덕적 패러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제목도 그렇게 붙였다. 그리고 ‘쌍화’를 한자로 보면 서리 상(霜) 꽃 화(花)인데, 서리꽃이라는 섬광처럼 왔다가 찰나에 사라지는 유한한 이미지 아닌가. 그게 청춘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결혼, 교육, 폭력 등 매개만 바뀌었을 뿐이지 나는 줄곧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동성애는 지금 시대의 트렌드이기도 한데, 그런 점을 고려했나.
=트렌드를 좇아간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절박한 사랑의 장애물을 찾다 보니 성 정체성과 동성애라는 지점이 나왔는데, 그것은 시대적 코드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성애라는 소재나 높은 표현 수위 때문에 캐스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편이었다. 어차피 조인성은 <비열한 거리> 이후 한편 더 하자는 데 동의한 상태였다. <비열한 거리> 때는 굉장히 불안한 눈이라든가 ‘조인성스러움’을 뽑아내려 했다면 이번에는 사극이니까 더 정제되고 차분하게 내적 떨림을 담아내고자 했다. 고마운 게 인성이는 어려운 배역인데도 아쉬운 소리 한마디 안 했다. 영화 찍는 내내 부담스러웠던 것도 내가 인성이를 너무 소비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진모는 <무사>를 함께했던 김성수 감독이 영감을 줬다. 언젠가 “진모가 약간 계집애스러운 데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기억이 나더라. 그래서 만나봤는데 선이 굵고 남성적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수줍어하고 여성적인 면도 있었다. 그렇게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느낌 때문에 확신을 갖고 캐스팅을 했다. 송지효는 <말죽거리 잔혹사> 때 오디션에 참가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런 느낌이 좋아서 캐스팅을 했다.

-동성애 장면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애정신이 나오더라.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신도 많고 장소도 다 다르고 체위도 달라서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오죽하면 ‘베드신 다찌마와리’라고 불렀겠냐. (웃음)

-주진모와 조인성의 동성애 장면은 이 정도 규모의 상업영화치곤 꽤 수위가 높더라.
=이전에 <로드무비> 같은 영화가 있긴 했지만, 톱스타 두명이 그런 연기를 한다는 점 때문인지 다들 강한 인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충격이겠다 싶어서 절제를 한 거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은 4월에 찍을 예정이었는데, 진모가 한달만 미뤄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5월에 찍었다.

-그리고는 조인성과 송지효가 나누는 정사장면이 7번 나오는데, 매번 다른 모양새다.
=정사신은 모두 감정의 흐름을 반영한다. 처음에는 실패하고 두 번째는 정상체위로 씨내리라는 목적에 충실한 정사를 나눈다. 그렇게 했는데 좋으니까 좀 격렬해지고, 그 다음 서고에서 갖는 정사는 공간의 특성상 서서 하게 되고, 그 다음 왕후의 사가(私家)에 홍림이 찾아갈 때는 두 사람 다 정사를 만끽하게 된다. 사실, 홍림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남자이다 보니 그렇게 격렬하게 치달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홍림의 왕후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육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의 비유를 빌리자면 에로티시즘이란 유사 죽음이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면서 둘 다 죽음을 맞이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잖나. 인간이란 존재는 영속성에 대한 욕망 때문에 섹스를 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축제가 있고 죽음이 있다. 영화의 결말을 멜로영화의 상투적인 내러티브로 볼 수도 있지만, 바타유적인 에로티시즘에 대한 해석을 영화의 내러티브를 끌어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성행위를 과도하게 보여줬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과정을 더 집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성행위를 담은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이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국사회가 워낙 엄숙해서 그렇게 못했다. 그건 추후에나….

-거대한 예산이 든 영화답지 않게 액션장면이나 스펙터클이 적다는 느낌도 준다.
=나는 내밀한 삼각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채 남자와 여자가 벌이는 삼각관계 말이다. 그 내밀한 심리를 끝까지 묘사해보고 싶었다. 배경이 궁중이다 보니 규모가 커보이지 굉장히 미니멀한 이야기다. 사실 나는 그러한 심리가 증폭되는 게 더 스펙터클하다고 본다. 진정한 의미의 스펙터클은 마음의 증폭이 아닌가. 마음의 증폭은 잘 짜여진 스토리에 있다고 본다. 그게 지금의 트렌드와 안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고집은 있었다. <씨네21> 사이트에 보니까 김혜리 기자가 “이왕 이야기를 하려면 끝을 보겠다는 욕심이 돋보이는 멜로드라마”라고 내 생각을 그대로 적었던데, 실제로 그게 가장 컸다. 내가 세헤라자드가 돼서 이야기의 끝까지 가보자는 게 가장 큰 욕망이었다.

-처음으로 사극을 만들어본 소감은 어떤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싶은 면이 있었다. 본디 현실을 취재하면서 날것을 살려내는 데 쾌감을 느끼는 사람인데, 옛날 사람들은 만날 수 없잖나. 하지만 사극이 좋은 면도 있다. 나에게 어차피 사극이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이야기다. 오래된 미래랄까. 어차피 과거나 미래나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을 메워가야 한다. 그렇게 상상력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쾌감은 있더라.

-그러고 보면 <쌍화점>은 당신으로서는 리얼리티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난 첫 영화이다.
=점점 리얼리티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사실인 듯하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너무 현실에 붙잡혀서 그 이상을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사를 중시하는 감독이라면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영화도 리얼리티에서 자유로운 영화가 될까.
=일단 차기작은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놓은 영화가 대작 사극인데, 사극을 만들어보니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아직 잘 모르겠다. 아홉살짜리 아들이 볼 수 있는 영화도 만들고 싶다. 아들놈이 그러더라. “아빠는 왜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안 만들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와 <말죽거리 잔혹사>가 15세 관람가였고 나머지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는데, 그렇게 센 영화만 만들다 보니 나 자신도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왜? 나라고 가족영화를 만들지 못하라는 법이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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