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역사적 구라, 스펙터클의 쾌락
2009-02-03
글 : 김도훈
주유와 조조가 마침내 거대한 전쟁을 마무리짓는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오우삼이 마침내 적벽대전을 완성했다. 1월22일 개봉하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는 중화권 블록버스터의 야심이 팔팔 끓어오르는 대작인 동시에 여전한 오우삼의 남자 세계다. 영화의 전모를 살펴보고 원작 <삼국지>를 토대로 한 소설과 만화들을 소개한다.

동남풍은 마침내 불었다.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하 <적벽대전2>)이 거대한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전편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은 조조의 80만 대군에 대항하기 위한 촉나라 유비와 위나라 손권의 결집으로 막을 내렸다. 비평가와 관객의 반응은 의외로 미지근했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진정으로 보고 싶어했던 것은 10만 화살을 쟁취하고 동남풍을 불어오게 만드는 제갈량의 지략과 수천대의 함선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화공법이었다. 수많은 역사와 게임과 만화를 통해 새롭게 해석되어온 <삼국지연의>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구라의 현장, 그러니까 적벽대전 그 자체가 없는 <적벽대전>은 어째 트로이 목마 없는 <일리아드>처럼 맥이 빠지는 법 아니겠는가.

끝없는 심리전, 그리고 화공술

<적벽대전2>는 마침내 물을 사이에 두고 대전을 기다리는 긴장된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심리전이다. 조조(장풍의)는 자기 진영에 퍼진 열병 환자의 시체를 유비(우용)와 손권(장첸)의 연합군에 실어보내는 심리전을 펼친다. 그리고 수상전의 대가인 채모와 장윤이 있는 한 조조의 군사가 대전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 명백하자 주유는 적군의 첩자를 역이용해 조조 스스로 채모와 장윤의 목을 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제갈량(금성무)은 조조의 진지로 빈 배를 타고 가서 10만개의 화살을 구해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합군은 조조의 대군에 맞설 만한 물량을 보유하지 못한다. 적은 군사로 조조군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화공(火攻)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원하는 동남풍은 불지 않고 북서풍만 불어든다. 제갈량은 하늘의 기운을 읽으며 동남풍을 예견하고, 주유의 아내 소교(린즈링)는 연합군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홀로 조조의 진지로 향한다.

사실 정사인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단 한줄로 끝이다. “公至赤壁, 與備戰, 不利. 於是大疫, 吏士多死者, 乃引軍還. 備遂有荊州, 江南諸郡.”(조조는 적벽에 도착해 유비와 싸웠지만 형세가 불리했다. 이때 역병이 유행해 관리와 병사가 많이 죽었다. 그래서 조조는 군대를 되돌리고, 유비는 형주와 강남의 여러 군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정사에 살을 붙이고 화장까지 더한 일종의 역사 팬픽이었다. 그렇다면 오우삼은 “<삼국지연의>보다는 <삼국지>를 주로 참고했다”는 말에 정말로 진심을 담았는가. 물론 아니다. 오우삼의 말과 달리 <적벽대전>은 장이모의 <황후花>와 펑샤오강의 <야연> 같은 중국 다피엔다피엔(大片: 대작) 사극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판타지의 세계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 이야기는 주유와 제갈량과 조조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중국 대중이 즐길 만한 스펙터클의 쾌락에 특별히 집중을 더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갈량의 10만 화살’ 정말 멋지다

<적벽대전2>의 스펙터클은 꽤 위용이 있다. 불을 이용해 수천척의 조조의 함선을 불태우는 주유의 화공법은 디지털 특수효과의 도움을 빌려 압도적인 시각적 쾌락을 안겨준다. 오우삼 감독과 제작진은 나관중의 역사적인 구라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너비가 50m에 달하는 거대한 모형 함선을 실제 제작한 뒤 불태웠다. 그러나 결국 스펙터클을 완성하는 건 발전한 CG 효과다. 종종 오우삼의 카메라는 비둘기처럼 날아올라 불타는 적벽의 만을 굽어본다. 그 순간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반지의 제왕> 같은 할리우드 서사극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중화권 블록버스터의 자신감 또한 오롯하다. 그러나 CG 화염으로 불타는 화공전과 적벽으로 둘러싸인 조조의 진지를 궤뚫는 돌격전보다도 더 근사한 것은 예의 ‘제갈량과 10만 화살’ 장면이다. 비어 있는 스무척의 배를 이끌고 조조 진영으로 다가가 10만 화살을 거둬오는 제갈량의 지략은 느낌표의 연속으로 흘러가는 <적벽대전2>에서 가장 근사한 쉼표다.

그러나 역시 오우삼은 오우삼이다. <적벽대전2>는 오우삼 팬들의 오랜 향수를 복원하기에 충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끈적이는 우정과 의리의 세계 말이다. 정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주유는 제갈량의 지략을 끝없이 질투해서 암살까지 시도했던 속좁은 남자였다. 강한 남자들이 모인 자리는 질투심으로 가득한 황후들이 모인 자리나 마찬가지다. 질투와 계략과 계약과 계약파기로 얼룩진 장수들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오우삼은 남자들의 맹세와 의리를 멜로드라마처럼 강조한다. 제갈량과 주유 사이에 흐르는 것은 견제라기보다 형제애를 넘어선 존경과 사랑으로 보인다. 이는 적대적인 조조와 주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주유의 절세가인 부인인 소교 때문이다. 그러나 소교와 조조 혹은 소교와 주유가 함께 있는 장면보다 조조와 주유가 마주치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에로틱하다. 특히 주유와 조조와 조조의 장수가 엇갈리게 칼을 겨누는 장면은 <첩혈가두>를 비롯한 오우삼 영화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삼각 총기 대치장면의 재연이다. <적벽대전> 시리즈는 결국 너무나도 오우삼적인 남자들의 세계다.

너무나도 오우삼적인 남자들의 세계

<적벽대전2>는 전쟁 스펙터클로서 제 몫을 다한 영화다. 오우삼 감독의 팬들은 이 질척거리는 남자들의 연애사에서 향수를 달랠 것이다. 다만 <적벽대전>과 <적벽대전2>가 위대한 원작에 대한 최선의 각색물이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트로이의 헬렌 역할을 해야만 하는 소교 캐릭터와 남장 첩자인 손상향(조미) 캐릭터는 남자들만이 쥐고 흔들었던 역사에 대한 현대적인 양념이지만 서사를 방해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주유와 제갈량, 조조는 중화권 배우들의 호기있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매력을 드러낼 만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러나 <삼국지>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황건적 토벌전’과 ‘형주 전투’등 말을 치고 칼을 뽑는 대륙의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나관중과 중화민족의 구라는 쭉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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