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적벽대전> 시리즈의 원작 <삼국지>를 소설과 만화로 골라읽기
2009-02-03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삼국지 천하는 누가 호령하는가

수많은 중국 고전 중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각색된 작품은 역시 <삼국지>일 것이다. <삼국지>는 <수호지>나 <서유기>에 비해 대단히 현실적이며,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통할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다. <수호지>는 조정에 대항하는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의 내력이 무척 흥미롭고 <삼국지>보다 장르적인 재미가 강하기는 하지만, 처세술이나 조직 경영 같은 실질적인 가르침은 덜하다. <서유기>는 동양 판타지의 절정이다. <서유기>가 <드래곤볼>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사상 최강의 원숭이가 서역으로 모험을 떠나며 벌이는 이야기는 모든 상상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어른이 되면 <서유기>에서 멀어지기 쉽다.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삼국지>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여 중원의 패권을 잡기 위해 벌이는 이야기다. 왕족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에 불과했던 유비가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었는지, 간웅이라고도 불리는 조조와 최고의 책사로 꼽히는 제갈공명이 어떻게 서로의 빈틈을 파고들며 절묘한 전략을 세우는지, 그래서 중원을 둘러싼 위촉오가 어떻게 힘을 키워가며 서로를 탐하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삼국지>는 경쟁에서 이기는 음모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써먹을 훌륭한 실전경영서로서 기능한다. 인간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직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기계발서로서의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삼국지>가 어린 시절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인 동시에 성인이 되어서도 틈틈이 읽으면 더욱 좋은 교양서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쑥쑥 읽히는 황석영과 이문열의 일필휘지

그동안 <삼국지>는 수많은 작가에 의해서 번역돼왔다. 과거에는 박종화와 정비석의 <삼국지>가 가장 유명하고 많이 읽혔지만, 최근에는 좀 바뀌었다. 당대 최고의 한국 작가로 꼽힐 수 있을 만한 황석영과 이문열의 <삼국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발과 문장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공력을 지닌 이력답게 두 작가의 <삼국지>는 쑥쑥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이문열이 <황제를 위하여>에서 보여준 것처럼, 황석영이 <장길산>에서 보여준 것처럼, 두 작가의 일필휘지는 강렬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정치적 태도로는 진보와 보수가 확연하게 갈리지만 황석영과 이문열의 <삼국지>는 의외로 사상적 편차가 크지 않다. 두 작가의 번역본은 <삼국지>의 정통적인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이관 벗어던진 장정일의 재해석

젊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은, 이문열과 황석영의 <삼국지>가 아니라 장정일의 <삼국지>다. 고전 대하소설인 <삼국지>와 선정적인 이야기와 표현 때문에 화제가 된 <아담이 눈뜰 때>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장정일과는 어딘가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장정일이 방대한 독서일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정일의 장점은 도발성 이전에 성실함이다. 장정일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삼국지>를 다시 해석한다. 물론 그 해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삼국지> 서두에 등장하는 황건적의 난을 황건 농민군의 봉기로 해석한다든지 모든 연도 앞에 서기를 따로 표기하는 등 젊은 작가에 의해 다시 쓰여진 <삼국지>를 읽는 재미는 무척이나 쏠쏠하다. 정통적인 해석으로 쓰여진 <삼국지>는 워낙 많기 때문에 장정일의 <삼국지>가 더욱 돋보인다. <십자군 이야기>의 작가 김태권이 그린 153컷의 삽화도 만족스럽다.

장정일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판본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그것은 장정일의 <삼국지>에서 느끼는 불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소설 <삼국지>는 약간의 해석 차이가 있을 뿐 기존의 구성과 인물을 그대로 따라간다. 모두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더욱 다양한 스타일의 <삼국지>가 보고 싶다. 그리스 희곡들을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변주하며 새롭게 창작해낸 서양의 문학 작품들처럼 말이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서울문화사에서 나왔던 기타가타 겐조의 <영웅 삼국지> 같은 작품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정의가 또 다른 정의와 맞부딪치는 <삼국지>를 보여준다. 하드보일드 소설가라는 이력답게 비정한 세상에서 개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명멸해가는 영웅들의 모습을 잡아낸 것이다. <영웅 삼국지>는 정통적인 <삼국지>와는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보수성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중국만이 아니라 동양의 고전이 된 <삼국지>를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보고 싶다.

초보자라면 <전략 삼국지> 60권을

소설에 비해 만화는 더욱 자유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널리 알려진 고전을 재해석하거나 할 때, 과장과 왜곡을 특징으로 하는 만화 장르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원본을 존중하면서 그대로 해석하는 정통적인 만화부터 인물의 재해석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만화나 기상천외한 개그나 판타지로 빠지기도 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삼국지>가 만화에서는 가능하다.

단순하게 소설 <삼국지>를 그림으로 보고 싶다면,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그린 <전략 삼국지>와 이문열이 평역한 소설 <삼국지>를 이희재가 그린 <삼국지>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아이들과 함께 보면 가장 좋을, 평범하지만 기본적인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철인 28호> <바벨 2세>의 작가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 삼국지>는 60권이라는 권수가 말해주듯 각국에서 널리 읽힌 나관중의 판본을 축약이나 변형이 거의 없이 그대로 그려냈다. 이희재의 <삼국지>는 이문열의 번역을 그림으로 보는 느낌이다. 다분히 성인을 위한 <삼국지>라기보다 아이들 시장을 노리고 펴낸 <삼국지> 만화다. 삽화가 있는 <삼국지>도 많이 있지만, <삼국지>를 스펙터클하게 그림으로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고우영, 해학과 풍자의 맛을 곁들이다

하지만 쉽게 <삼국지>를 보고 싶다는 이유를 넘어서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만화 <삼국지>를 찾는다면 만화만의 장점이 있는 작품이 더욱 좋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고우영의 <삼국지>다. 단지 국내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 아니다. 1978년에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의 <삼국지>는 일본과 중국의 어떤 만화판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중국 고전의 독창적인 해석도 다채롭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갖가지 에피소드와 교훈을 우리 사회에 빗대어 풍자하는 기교도 탁월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수십번을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걸작이다.

고우영 <삼국지>의 가장 큰 매력은 인물 묘사에 있다. 유비는 쪼다고, 제갈공명은 미소년이고, 조조는 두통에 시달리는 모사꾼이다. 고우영은 주인공인 유비를 겁도 많고 치사하기도 한 소인배로 묘사하지만 그것이 역사상에 존재했던 유비라는 인물의 가치를 격하하는 것은 아니다. 고우영은 스스로를 유비에 빗대면서 오히려 그 ‘쪼다스러움’이 보통 사람에 불과했던 유비가 난세의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웅호걸들이 난무하는 난세에서, 유비의 소심하고 치사한 행태는 경쟁심이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사람들을 끌어당기거나 격의없이 만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 <삼국지>를 읽는 보통 사람들에게 은밀한 용기를 주기도 하고. 가장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제갈공명과 관우를 은밀한 라이벌로 대립시키는 것도 인상적이다. 올곧은 성품의 관우를 조금씩 궁지에 몰아넣으며 제갈공명이 고뇌하는 모습 역시 공감이 간다. 세상은 꼭 선인과 악인만이 다투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고우영의 <삼국지>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우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통념을 180도 뒤집는 경우는 없다. 그보다는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 자신의 시선을 명확하게 부여하여 생생함을 더해주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다. 쓱쓱 빗질을 하는 것처럼 담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그림과 기발한 말재간으로 고우영이 어루만진 인물들은 더욱 빛난다. 고우영의 말재간에는 단순한 말장난을 뛰어넘어 당대의 사회상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조롱하는 풍자와 해학이 있다. 뛰어난 작가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캐릭터에 따라 말투와 어휘가 천양지차다. 유치한 장비와 고상한 관우의 대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운율이 맞는다. 반면 제갈량과 관우의 대화는 지극히 정중하면서도 총성없는 전쟁처럼 느껴진다. <일지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서도 고우영은 여느 작가에 뒤지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고전이나 역사를 각색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단연 최고수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의 정수를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아니 원작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전혀 새로운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고우영의 만화다.

‘개혁가 조조’를 보고 싶다면 <창천항로>

고우영의 <삼국지>가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로 재구성했다면, 이학인 원작, 왕흔태 그림의 <창천항로>는 고전 <삼국지>를 나름의 철학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물론이고,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도 조조는 간교하고 사악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창천항로>의 조조는 총명하고, 용맹하고, 하늘의 뜻을 읽을 줄 아는 뛰어난 지략가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불의를 깨닫고, 자신이 이 세상을 뜯어고치겠다며 나선 개혁가이기도 하다. 반면 유비는 우직할 뿐인 왕족의 후손으로 나온다. 고우영의 <삼국지>에서 유비가 혼자서는 제대로 일도 처리하지 못하고, 공명과 관우에게만 매달리는 졸장부이며 ‘병신, 쪼다’로 그려진 것과는 다르다. 이렇게 인물의 해석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이유는, 그들이 <삼국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후대에 <삼국지>를 재해석하면서 조조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한나라를 정통으로 생각했던 나관중은 자신의 정치적 태도에 따라 한나라의 후손인 유비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그래서 유비와 촉은 영웅이며 정통이 되었고, 조조는 권력을 탐하는 악인으로 묘사된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본다면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쓴 나관중의 ‘소설’일 뿐이다. 그렇다면 후대에 <삼국지>를 각색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과 사상에 따라서 <삼국지>를 다시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판타지로 간다면 아예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할 수도 있고.

<창천항로>는 <삼국지>의 실질적인 주인공을 조조로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조조만을, 혹은 그의 라이벌만을 영웅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세상은 두 사람의 영웅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창천항로>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모두 영웅으로 묘사한다. 대표적으로 동탁과 여포는 대부분의 영화나 만화에서 포악하거나 인간적 결함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창천항로>의 동탁은 거구에 변발이 멋들어진 북쪽 기마민족의 수장이다. 중원의 한족이 보기에 그는 한없이 포악하고, 무례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동탁은 뛰어난 인재들을 형식에 상관없이 중용하고, 하늘의 뜻이 다르다면 맞대결해서라도 그 뜻을 가져오겠다는 거인이다. 일본으로 보자면 오다 노부나가 같은 영웅. 여포는 원시적인 힘과 충동을 만끽하는, 사랑이건 전투이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전사로 그려져 있다. 각자의 견해가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들 모두가 당대의 영웅이다. 그들도 실수를 저지르고, 악행도 저지르고, 때로 자멸에 이르기도 하지만, 그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영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간적인 신들처럼.

요절복통 패러디에 미소녀 격투까지

만화의 즐거움은 역시 파격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개그와 연결되면 <삼국지>의 세계는 완벽한 스탠딩 코미디 무대가 된다. 정훈이의 <트러블 삼국지>는 조조, 유비, 손책 등의 영웅호걸이 펼치는 썰렁하면서도 순도 높은 개그를 보여준다. 이미 알고 있는 <삼국지>의 상황을 기억하면서, 그 상황을 패러디하거나 엉뚱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감각을 즐기는 만화다. 인터넷 만화로 시작된 최훈의 <삼국전투기>는 등장인물들을 프로레슬링 선수나 록 뮤지션 심지어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등으로 자유롭게 바꾸어버린다. 패러디 정신에 충실하게, <삼국지>의 모든 것을 요절복통 상황으로 변모시키는 만화다. 약간의 본말전도도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삼국지>를 훨씬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역사소설 <삼국지>를 판타지로 바꾸는 만화도 있다. 야마하라 요시토의 <용랑전>은 일본의 고등학생이 중국의 삼국시대로 타임 슬립하여 전개되는 만화다. 일본의 전국시대도 아니고, 왜 삼국시대로 가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나름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전개한다. <삼국지>의 각색에,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타임 슬립하여 역사를 변경하는 일종의 대체역사적인 성격까지 띠는 만화다. 시오자키 유지의 <일기당천>은 가장 황당하게 <삼국지>를 인용하는 만화다.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이 현대에 환생하여 격투를 통해 자웅을 겨룬다는 이야기인데, 무대는 고등학교이고 영웅들은 모두 여고생이다. 한마디로 글래머의 미소녀들이 섹시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여 화끈한 격투를 벌이는 것이 전부인, 어이없는 <삼국지>다. <일기당천>을 보면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삼국지>가 연상되기는 하지만, <삼국지>의 향기를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미소녀의 격투라는 이유만으로 나름 인기가 있는 기묘한 만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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