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프리 도노반] 재단한 듯 정밀한 악질
2009-02-0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체인질링>의 배우 제프리 도노반

“영화 보는 내내 MB가 생각나더군요.” <체인질링>의 리뷰에 한 네티즌이 청소년 수사국의 캡틴 J. J. 존스에 대해 남긴 댓글이다. 아동실종 신고에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조사할 수 없다는 LA경찰. 존스는 윗선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제 손아귀에 쥔 힘으로 문제를 무마하려 하는 중간관리다. 그는 추락한 경찰의 위신을 위해 아이 잃은 어미의 입을 틀어막고, 낮은 목소리로 윽박지르며, 웃는 낯으로 고함을 지른다. 경찰에 저항한 겁없는 여자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것도 그가 누린 무소불위의 권력 중 하나. 결국 그는 “무고한 여성을 정신병원에 처넣은” 죄목이 청문회에서 읽힐 때, “아니죠, 에스코트했습니다”라고 반박하는 굴욕을 겪는다.

<체인질링>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크리스틴 콜린스의 상대는 이렇듯 악질이다. 로맨스영화가 아니니 섹시할 리 없고, 인간적인 면이 가려져 호감을 갖기도 힘들다. 영화에 이입한 관객이라면 욕지거리라도 쏟아부을 법한 존스는, TV시리즈 <번 노티스>의 간판스타 제프리 도노반이 연기했다. <컴얼리 모닝> <빌리브 인 미> 등 인디영화에 간간이 출연해온 그에게 <체인질링>은 조금 센 선택이었다. 그동안 그가 연기해온 사려 깊은 의지형 캐릭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도노반은 안젤리나 졸리의 이름만으로 <체인질링>에 승선했다. 하기야 감독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뉴욕 프리미어에서 그는 “존스 역시 거대한 권력의 희생자”라며 역할을 두둔했고, “졸리를 마주하는 매 순간이 환상적이었다”고 겸손한 소감을 덧붙였다.

1968년생인 도노반은 상당한 시간을 무명으로 지냈다. <터칭 이블> <트레숄드> 등 TV시리즈 파일럿의 주연으로 여러 번 등장했지만, 대부분 채택되지 않았다. 덕분에 좋아하는 무대를 오롯이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변명. 순발력이 필요한 무대가 익숙하지만, 도노반의 연기는 재단한 듯 정밀하다. 한번 봐서 기억에 남지 않을 외모는,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입어야 하는 그의 천직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퇴출당한 스파이로 생계를 위해 해결사 노릇을 해야 하는 <번 노티스>에서 그는, 신분을 위장할 때 각종 사투리며 외국어를 연기하는데 백이면 백 매번 자연스럽다. 안톤 체호프를 존경해 러시아어를 익혔고, 실제로 은퇴한 스파이와 이메일을 주고받을 정도로 치밀하게 캐릭터를 준비한 덕분이다. “제프리는 숙제를 할 줄 아는 배우다.” TV시리즈 제작자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다. 연기가 흉내라면 관객은 알아채고야 만다.

사진제공 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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