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워낭소리> 소
2009-02-04
글 : 김도훈
“그만 울어, 소는 소여”

=(딸랑딸랑 워낭소리와 함께) 움머.

-엄머.
=여물 좀 주라.

-악, 소구나 넌.
=너가 뭐여. 나 이래봬도 40년 산 소야.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이 넘었을 거여. 존댓말도 모르냐 이 놈아.

-아이고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뭘 드릴깝쇼.
=여물 좀 줘. 여물 좀. 겨울이라 영 씹어먹을 풀도 없고 입안도 까실까실하니 죽겠구만.

-제가 도시 출신이라 여물 만드는 법을 몰라서….
=요즘 애들은 그것도 몰라. 쌀겨랑 밀기울에 짚 좀 섞어서 자작하게 끓여주면 되잖혀.

-아, 간단하네요. 근데 풀만 섞어서 끓이면 되나요 정말?
=그럼 소가 풀 먹고 살지 고기 먹고 사는감.

-요즘은 간단하게 공장에서 만든 사료도 많이들 잡수신다던데.
=에유, 그건 딱딱하고 입맛에 안 맞아서 싫여. 옆집 소새끼 말을 들어보니 물건너 아메리카 소들은 고기 들어간 사료 먹고 다리에 힘 풀려서 헬렐레 쓰러지고 죽고 그랬다드만.

-아이고, 그렇죠. 그 소 먹고 사람도 많이 죽었대요.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그니까 사는 대로 좀 살게 내비둬야지. 풀 먹는 소새끼들한테 괴기는 뭐 땀시 멕였대냐. 쯔쯔.

-그러게나 말이에요. 쯔쯔. 한데 평생 일만 하시다가 고렇게 돌아가시니 제가 눈물이 나서 못살겠더라고요.
=울긴 왜 울어. 뭐가 슬프다고 울어.

-눈코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데 저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소리는 크게 안 냈어요. 그날 극장에 도올 선생도 와 계시던데 꺼억꺼억하던 소리가 그분 소리였나 몰라.
=지랄 방정들이야. 울긴 왜 우냐고. 이팔청춘 찐한 사랑 한번 못해보고 막걸리 한잔 못 마셔보고 도축장에서 인생 마감하고 부위별로 팔려나가는 젊은 놈들에 비하면 나는 복받은 거지. 사십 평생 영감이랑 오순도순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천수 다 누리고 죽었잖아. 그런 게 복이지 복.

-흑, 그것도 슬퍼요. 찐한 사랑 한번 못해보고 도축장에서 인생 마감하고 부위별로 팔려나가는 젊은 소들.
=채식주의잔감.

-아뇨.
=고기 좋아하남.

-네. 저 채끝살이랑 갈빗살 마니아예요.
=고기 좋아한담서 뭐가 슬프다고 그래. 그런 게 원래 자연의 이치여. 소는 여물 먹고 사람은 고기 먹고.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남. 난 대로 살아야지.

-근데 소님은 이팔청춘 찐한 사랑 언제 해보셨나요?
=이팔청춘 찐한 사랑 좋아하네. 나도 못해봤으.

-아니 왜요. 사십년이나 사셨는데….
=나는 종자소가 아니라 일소잖아. 일할 때 성질 부리지 말고 말 잘 들으라고 일소들은 다 거세시키는 거 몰랐남? 고기소들 중에서도 수소들은 일소보다 순하게 크라고 다 짜른다드라고.

-아아, 어쩜. 사랑 한번 못해보시고 일만 하시다가. (소리없이 눈물을 떨군다)
=아따 뭘 그리 시간만 나면 울어. 자네가 소냐. 시도때도 없이 울게. 그만 울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소는 소여. 묵묵히 소처럼 살다가 소처럼 죽는 게 제일 행복한 법이여. (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과 함께 영롱한 워낭소리 들려온다. 뎅. 뎅. 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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