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전영객잔] 싱글맘도 바꿔치기당하다
2009-02-19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체인질링>의 이중적 체인질링이 드러내는 것

아이의 실종을 다루는 이 영화의 제목은 <체인질링>이다. “바꿔친 아이”란 뜻이다. 요정이 아이를 납치해가면서, 그 아이 대신에 두고 간다는 작고 못생긴 아이나 동물을 가리킨다. 이 영화를 두고 평을 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군포 여대생 실종과 관련된 연쇄살인사건들이 밝혀지고 있다. 아이와 여성들이 잔혹하게 무작위로,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흥미로운 대사 교환

영화는 ‘진짜 이야기’라고 자신을 밝히며 시작한다. 1928년 3월9일이다. 카메라는 로스앤젤레스의 주택가를 관찰한다. 흑백 화면이 컬러로 슬며시 채색된다. 미국 교외 주택가의 아침,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는 혼자 일어나 9살 난 아들 월터를 돌본다. 흥미로운 대사의 교환이 있다. 식기 전에 아침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시리얼인데 식을 게 뭐 있느냐고 대꾸한다. 싱글맘의 아침식사 광경이다. 따뜻한 토스트나 계란이 없는 차가운 시리얼만의 식탁.

방과 뒤 월터를 데리러 가자, 아이는 싸웠다고 말하면서 아빠의 이야기를 꺼낸다. 크리스틴은 우회적 대답을 한다. 월터가 태어난 날 책임감이 담긴 상자가 우편함에 도착하자 아빠는 겁이 나서 가버렸다는 것이다. 월터는 바보 같은 일이라고 반응하고, 크리스틴은 자기도 정확하게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꾸한다. 서로 말이 잘 통하는 모자다. 반면 위의 시리얼에 관한 대화나 이후 실종되는 날 월터가 극장에 함께 가는 대신 직장에 갑자기 나가야 하는 엄마에게 9살짜리가 “내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다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싱글맘과 아이 사이의 어떤 특별한 이해를 나타내준다.

이렇게 영화는 거칠거칠하며 까다롭게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설정한다. 나중엔 크리스틴이 뒤바뀐 아이에게 “월터는 내가 가진 전부”라고 말하게 되고, 또 월터의 천사와 같은 선행도 드러나지만 영화의 초반부 엄마와 아들의 관계 설정은 그보다는 훨씬 더 현실의 조건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특기할 점은 이렇게 아들의 유괴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다른 영화라면 집을 지키지 않은 엄마에게 죄의식을 부가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반면 <체인질링>은 바로 그 죄의식을 덧씌우려는 가부장적 권위의 원형을 경찰력과 정치권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사회적 정의의 실패로 간주한다. 또한 초반부에 드러나는 크리스틴의 이러한 화법, 우회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중반에 경찰, 정신과 의사 등의 대립에서 그 함의가 드러난다.

알려졌듯이 실종사건을 다룬 많은 영화들과 <체인질링>과의 어떤 차이는 실종된 아이를 경찰이 찾아주지만, 그 아이가 체인질링이라는 것이다. 이 바꿔친 아이를 찾는 싱글맘인 크리스틴은 1920년대 모던걸, 플래퍼(flapper)다. 짧은 머리, 하얀 얼굴, 붉은 입술, 클로세를 쓴 모습으로 등장하고 전화 교환소의 첫 여자 슈퍼바이저다. 플래퍼 복장에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오퍼레이터 걸들이 도열한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민원을 해결한다. 싱글맘, 모던걸이다. 그녀는 또한 외출 시에는 털 달린 모직코트를 입고 다니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이 드레스 코드는 의외다. 이 여자는 플래퍼 중에서도 더 ‘튄다’가 그 함의일지도.

모던걸에 대한 경찰의 악의적 편견

<체인질링>이 주는 충격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의 실종, 집단학살, 모성에 가해지는 권력, 폭력에 대한 진단 그리고 악마적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찰, 모던걸 여성주인공의 투지 등이 모두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을 정신병동으로 보내는 경찰 반장(제프리 도너반)이 크리스틴을 이해하는 방식은 플래퍼, 모던걸에 대한 당시의 통념에 기초한다. 크리스틴이 경찰이 찾아준 아이를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 아이를 부양할 만한 충분한 수입이 있는데도, 성적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경찰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당대 모던걸을 비판하던 용어와 표현들을 빌려 쓰는 것이다. 즉 그는 경찰의 독재적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서 말하지만, 당대 모던걸을 경멸하고 폄하하던 남성으로서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던걸의 모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중에 법정에서 그는 크리스틴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차갑고 무관심하며, 감정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고.

이래서 크리스틴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이 정신병원의 여자들 상당수는 경찰에게 사적인 보복을 당하느라 감금된 상태다. 클럽에서 일하며 폭행을 일삼는 경찰을 신고했다가 이곳으로 끌려온 여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자들이 약하고 논리적이지 못하니까 미쳤다고 몰아서 정신병원에 넣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라고. 군포 여대생 연쇄살인범(그놈의 이름은 쓰기도 싫다) 이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받은 일이 신문에서 다뤄졌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피해자인 크리스틴이나 다른 여자들이 경찰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몰려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다.

20명의 아이들을 무작위로 납치해 살해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 만큼 이 영화에서 경찰의 공권력에 맞서는 것은 한명의 여자만이 아니라 그를 돕는 목사와 인권변호사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스타브 브리그랩 목사(존 말코비치)는 크리스틴이 자신의 교구의 사람은 아니지만 공권력의 희생자임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여기서 목사가 데리고 온 변호사 한(제프리 피어슨)은 법정에서 크리스틴의 케이스를 대변해준다. 배심원들은 경찰과 시의 부패를 지적하고 이들이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논평한다. 이 영화에서 경합하는 것은 크리스틴을 둘러싼 언어적 ‘바꿔치기’와 ‘대변’이다. 그녀의 언어를 바꿔치기하는 것은 경찰과 정신병동 의사다. 경찰 반장은 그녀의 아들을 바꿔치기한 주제에, 그녀의 입을 막고 모던걸인 그녀의 심경을 자신의 편견으로 덧칠한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고 윽박지른다. 권위적이며 여성혐오적이다. 이러한 바꿔치기는 그녀가 기자들에게 아이가 바뀐 사건의 전모를 간단히 브리핑하며, 의사와 월터의 담임선생님의 증언을 배포할 것이라는 말을 한 이후에 벌어진다. 경찰 반장은 모던걸이며 싱글맘인 크리스틴을 정신나간 사이코패스로 체인질링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이중적 체인질링이 일어난다. 아이에 대한 체인질링과 여자에 대한 체인질링이 그것이다.

과연 안젤리나 졸리는 적역이었을까

반면 변호사의 대변은 법적 언어이면서도, 자신도 딸을 잃었기 때문에 나오는 정동이나 분노가 있다. 변호사가 말을 하는 동안 카메라는 크리스틴의 반응을 잡아낸다. 사실 난 안젤리나 졸리의 팬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크리스틴의 역할에 적역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에겐 1920년대 사회적 충격과 매혹의 대상이었던 루이즈 브룩스와 같은 모던걸의 위태로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신빙성이 있을 때는 전화기를 붙잡고 앉아 아들의 행방을 찾는 장면이다. 미국 각지의 경찰서에 전화를 한 뒤 한달쯤 있다가 다시 건다고 이야기할 때의 톤과 머뭇거림은 뛰어나나, 위와 같은 반응 숏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오히려 어떤 연기를 할까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역할을 줄리언 무어나 케이트 윈슬럿이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만났다.

‘체인질링’, 아이 바꿔치기는 다른 유괴영화들과는 달리 아이의 실종만이 아니라 그 실종이 야기하는 법적 질서, 아이를 잃은 모성에 가해지는 위협, 모던걸에 대한 사회적 통념들을 동시에 점진적으로 드러내듯 다루면서 기존의 영화들을 뛰어넘는다. 특히 아동살해범 고든 노스콧(제이슨 버틀러 하너)의 기회주의적 악마성, 비천함에 대한 재현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경찰이나 시장의 부패에도 이 영화는 법정에서의 진실의 승리에 ‘희망’을 두고 또 그것을 구현해낸다. 미국 내 권력 블록의 경합에서 배심원 제도가 지배하는 법질서에 믿음을 두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제목 <체인질링>은 복잡하고 어둡고 폭력적 문제를 다룬 토머스 미들튼의 르네상스 비극과 동일한 제목이다. 이 두 작품이 서로 어떤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르네상스 비극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혼했다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다른 남자로 사랑의 대상을 바꿔치기 하는 주인공 베아트리스의 사적 자율성의 문제는 1928년을 영화의 시작 지점으로 삼고, 모던걸, 싱글맘을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가 알게 모르게 환기시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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