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말리와 나>, 애견인 3인3색 에세이 [2] 김소영
2009-02-26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맬러뮤트 실피드와 로트바일러 바치 기르는 김소영

토종닭들을 묻고 우리는 쫓겨났지

(어쩔 수 없는 스포일러 있음)

김혜리 기자가 전화를 하더니, ‘전영객잔’의 김소영과는 다른 스타일로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영화로 <말리와 나>를 추천했다. 우리 둘은 시네필이며 애견인이라는 공통의 장점이 있긴 하다. 물론 나는 “왜 이러세요! 전영객잔은 재미없다는 말?”이라고 히스테릭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김혜리 기자의 가녀리면서도 강인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네필이며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고 말하자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거기 나오는 개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가지 않을 거야. 시놉시스를 보니 여피 부부가 개를 기르는 뻔한 이야기. 제니퍼 애니스톤도 질색이고. 영화가 끝날 무렵 그 개가 안젤리나 졸리에게나 가버리라지.”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래버라도 리트리버종인 말리가 제니(제니퍼 애니스톤) 그리고 존(오언 윌슨)과 함께 출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말리는 브래드 피트와는 달리 제니를 떠나 안젤리나 졸리에게 가지 않는다. 대신 그 녀석은 제니와 존의 식구로 들어가, 이 젊은 부부가 3명의 아이를 낳는 것을 지켜본다. “캐나다. 키 54~57cm 몸무게 23~24kg. 만능견이다. 예민하고 지능이 높고 침착하며 사냥감을 찾아내며 물어오는 데 탁월.” 래브라도 리트리버종의 특성이다. 반면 우리의 주인공 말리는 과감하고 지능은 필요할 때만 높아지고 부산하며 엉뚱한 사냥감을 찾아내 덮치는 데 탁월하다. 이 영화는 말리의 성장과 함께 많은 부분을 말리와 가족간의 이별에 쏟고 있다. 이쯤에서 나의 개들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여러 마리의 맬러뮤트를 키웠었고 현재는 다섯살짜리 맬러뮤트 실피드, 또 다른 2살짜리 로트바일러 바치를 반려하고 있다. 바치는 맹견인데도 맬러뮤트와 같이 성장해서 천사처럼 애교스럽다. 험상궂은 얼굴로 늘 내게 상냥하다.

실피드란 우리 아이가 붙인 이름으로 게임 캐릭터이기도 하고 바람의 요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풍성한 꼬리와 갈기를 날리면서 언덕에 인디언 현자처럼 서 있을 땐 후자인 것 같고, 다섯살이 넘도록 밤새 삑삑이 장난감을 갖고 놀아 이웃에게 항의를 받을 때는 전자처럼 행동한다. 아름답고 지칠 줄 모르는 실피드와 그의 딸 눈이는 내가 그들을 위해 좀더 너른 들판과 산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자 친환경 나무 개집 사이를 뚫고 나가 마을 양계장의 닭들을 밤새 찾아다니며 놀라게 했다. 새벽, 마감도 못하고 그들을 찾아다니던 나는 한 양계장에서 두 마리의 맬러뮤트가 무아지경에 빠져 흰 깃털을 날리며 퍼덕이는 닭들을 구경하는 것을 목도했다. 바로 시네마 파라디소의 개들이었다.

그날 아침, 더 지칠 줄 모르는 이웃집 양계장 할머니는 기절해 죽은 40마리의 닭들을 싣고 와 우리 집 앞마당에 쏟아놓고 갔다. 토종닭이라는 이유로 상당한 배상액을 물어주고, 마당에 40마리의 닭들을 매장하고 우리는 동네에서 쫓겨났다. 이렇게 나는 5년간 개들과 함께 3번 이사를 했다. 난 우리 맬러뮤트보다 더 극성인 말리를 동네에서 쫓아내지 않는 플로리다의 주민들이 오바마의 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장 근심하는 것 중 하나는 인간과는 다른 그들의 라이프 사이클이다. 사람의 몇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그들에게 할당된 삶의 시간. 아, 나도 사실 그것이 두렵다. 개들의 동물다운 활기와 활력에 반비례하는 짧은 라이프 사이클은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인간과 아직 동물계에 속한 개와의 공생의 가장 어려운 점이다. <말리와 나>라는 영화도 바로 이 부분에 오래 머문다. 말리가 늙어가고 병이 들고 그래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물론 이때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다. 말리가 힘없이 쓰러져 나무 아래 누워 있을 때, 아이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말리를 보고 ‘바이’라고 말할 때, 빠르게 잘 달리는 데 비해 형편없이 가는 다리를 가진 개의 다리, 죽어가는 말리의 다리를 존이 만질 때 이 ‘견성’ 멜로드라마는 심금을 울린다. God bless all the dogs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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