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누렁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967년, 송아지 누렁이는 마흔살로 태어났다. 그때,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 정책은 이제 막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시골은 텅 비었고, 늙고 핍진한 얼굴의 주인은 누렁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늙은 누렁이는 곧 버려졌다. 누렁이의 어미는 떠나는 누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길고 애달픈 울음을 울었다.
버려진 누렁이를 처음 발견한 것은 경북 봉화 하눌마을의 농군 최원균씨였다. 그때 최씨와 누렁이는 동갑이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농군은 발을 절었다. 깡마른 몸짓에 글도 몰랐지만, 강단 하나만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최씨는 부지런히 논을 갈고, 밭을 맸고, 누렁이를 위해 꼴을 벴다. 소를 잘 다루는 최씨는 우시장을 돌아다니며 거친 일소들을 제압해 일을 가르치곤 했다. 최씨의 아내는 종종 “애들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와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며 웃었다. 누렁이는 최씨가 베어온 꼴을 먹으며 자주 졸린 울음을 울었다.
누렁이의 일은 최씨를 도와 밭을 매는 거였다. 늙은 누렁이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달구지를 끌었다. 최씨는 누렁이를 자주 재촉했지만, 심한 매질은 하지 않았다. 최씨 부부는 누렁이의 늙은 몸에 기대 겨울 장작을 실어 날랐다. 일을 견디지 못한 누렁이는 결국 쓰러져 며칠을 끙끙 앓았다. 최씨는 누렁이의 쇠죽에 콩 한줌을 더해 넣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누렁이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이 슬퍼서 울었다. 날이 갈수록 누렁이의 팔과 다리에는 힘이 붙었다. 최씨의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김추자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밭 한 이랑을 다 매고도 숨을 헐떡이지 않게 됐고, 박남정의 댄스곡이 들려올 때는 뼈끝까지 차오르는 충만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씩씩거렸다. 옆집 박씨네의 젊은 암컷을 보면 왠지 모를 아득한 감정이 살아나 자주 외양간을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최씨의 얼굴은 날로 수척해갔다. 어릴 때 앓았다는 왼쪽 다리의 아픔은 더 깊어졌고, 두통을 견디지 못해 일을 자주 쉬었다. 최씨의 절박한 노동의 풍경 너머로 이앙기와 트랙터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선진 영농’이 시작됐다. 최씨의 자식들은 하나둘 집을 떠나갔다. 집에는 누렁이와 최씨와 최씨의 아내만 남았다. 최씨는 지친 몸을 누렁이에게 자주 기댔다. 누렁이는 마음이 아파 최씨의 얼굴을 자주 핥았다.
SES와 핑클의 시대가 왔다. 누렁이는 봄이 되면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에 자주 정신이 팔렸다. 저 나비를 따라 산을 넘으면 그곳에는 누렁이가 알지고,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누렁이는 한눈을 자주 팔았고, 자주 밭이랑을 벗어나 제멋대로 뛰었다. 그럴수록 누렁이의 코뚜레를 당기는 노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누렁이는 최씨의 완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아차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봄볕은 늘 따뜻하고 한가로웠고, 눈 쌓인 겨울의 들판은 매섭고 추워서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원더걸스가 등장했다. 누렁이는 더이상 쇠죽을 먹지 못했다. 노인이 된 최씨가 다가와 누렁이의 입에 젖병을 물렸다. “에이씨, 좋은 데 가거라.” 노인은 평생 누렁이를 얽매왔던 코뚜레 줄을 끊었다. 같이 늙어간다는 것은 때로 견딜 수 없이 서글픈 일이지만, 시간이 엇갈려 흐른다는 것은 그보다 더 슬프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누렁이는 비로소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송아지가 된 누렁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최씨는 건강한 새 암소를 구해 코뚜레를 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