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책을 권해주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권하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은 분명 다르겠지만, 책 판매량으로 알 수 있는 한국 독자들의 선택, 특히 일본 연애소설에 대한 취향은 꽤나 분명한 편이다. 여성 작가라면 에쿠니 가오리, 남자 작가라면 바로 요시다 슈이치다. 요시다 슈이치는 연애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과대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가장 절박한 형태의 소통이 연애라는 사실을, 그의 소설을 보면 절감할 수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1999년에 데뷔하고 2002년 <파크 라이프>로 아쿠타가와상을, <퍼레이드>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고, <악인>으로 오사라기 지로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동경만경> <나가사키> <랜드마크> <7월24일 거리> <사요나라 사요나라> <사랑을 말해줘>와 같은 작품들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한국을 여러 번 찾았다. 한국과 일본의 독자 문화나 출판 문화가 다른 점이 있나.
=도쿄와 서울의 차이는 얼마 없다. 도쿄에서 생활해도 한국의 요리를 먹는다든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에 본고장에 왔다는 정도의 차이랄까. 다만 술 문화는 역시 다르다. 어제 출판사 사람들과 회식을 했는데 폭탄주를 많이 마셨다. 일본에서 한 적 없었던 낭독회도 이번에 처음 가졌다.
-<워터>와 <나가사키>는 성장소설이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자주인공들이 무척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주인공 또래의 나이였던 때 당신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10대 때는 지방도시인 나가사키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가사키에서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컸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그래서 대학 진학 때는, 1조건이 도쿄에 있는 대학이었다. 전공인 경영학에 관심도 없었고…. 도쿄에 가고 싶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강한 진학 이유였다. 나가사키에 살 때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했다. 결국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나가게 되었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은 도쿄에서 뉴욕으로, 파리로 가는 문화 충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고향을 떠난 지금은 나가사키를 좋아하지만. 대학 때 공부를 거의 안 했고, 졸업하고 나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24, 25살 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주인공이 작가 자신을 반영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주인공들이 굉장히 생동감있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주인공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 <악인>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웃음) 내 일을 소설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간혹 내가 경험했던 일이나 느꼈던 일을 적기는 하지만 정말 내 일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내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나와는 별개의 사람들이다. 난 다른 사람에 대해 쓴다.
-연애에 관련한 소통의 문제를 자주 다룬다. 해답을 찾았나.
=정말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어떤 말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건 여전히 의문이니까. 그런 점들을 고민하면서 작품을 쓰고 있을 뿐이다. 좋은 소통 방법이 있으면 나도 알고 싶다.
-범죄를 다룬 <악인>이나 <사요나라 사요나라> 같은 근작들을 보면 요즘 일본사회 자체,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범죄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해서 <악인>과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쓴 건 아니었다. <악인>의 경우는 규슈의 고속도로를 무대로,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도쿄 근교 계곡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먼저였다. 그 장소들에서 떠올린 이미지들이 책 속 사건으로 연결지어진 셈이다. 사회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볼 수는 없겠다. 그렇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장소를 찾는 일은 직감에 의지하는 편이다. 소설을 위해 따로 로케이션을 찾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생활하는 동안 관심이 가는 곳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는다. 장소도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악인>과 <사요나라 사요나라> 두편 모두에서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선정적인 모습이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현실에서 소설 속보다 더 쇼킹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다루는 매체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캐낸다. 그런 언론의 모습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생각한 점은.
=어려운 문제다. TV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하지만 피해자나 가해자쪽에서 생각하면 보이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 문제겠지. 바라기는, 독자들이 <악인>이나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읽은 뒤 그런 사건보도를 보게 되었을 때 ‘알고 싶다’기보다 ‘꼭 알고 싶지는 않군’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가사키 시절 고향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했다고 했다. 그 소원을 이룬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뭔가.
=아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민이 별로 없다. 문제가 생기면 금방 도망쳐버리는 성격이다.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