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화적 인연 맺은 영화계 인물들의 마지막 인사
2009-06-09
사진 : 최성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난 5월23일 새벽 그는 자신의 육체를, 영혼을, 회한과 분노와 슬픔을 절벽 아래로 내던졌다. <씨네21>은 영화 전문지라는 특성상 그의 삶을 되새기고 그 함의를 분석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영화인들의 이야기와 지난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나눴던 인터뷰를 실어 그의 안타까운 서거를 추모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남은 생의 한 가지 숙제”

이창동 감독·참여정부 문화관광부 장관

처음 아내에게 전화를 받은 것이 칸 시각으로 새벽 3시였다. 그 뒤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다음날도 잠을 자지 못했다. 해가 뜨면 해야 할 내가 맡은 일이 있었으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시간이 갈수록 슬픔과 아픔이 더해졌다. 가슴이 물리적으로 아팠다. 지난해 여름 그와 함께 올라갔던 부엉이바위, 그 절벽 끝에서 내려다보던 까마득한 허공이 계속 눈앞에 떠올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한 시대를 대표했던 사람이 그토록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단 말인가. 지금 내 가슴을 누르는 슬픔과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 밑에 분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내 남은 생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 조각이다. 그는 그렇게 우리에게 위로하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자연도 역사도 또한 삶 속에 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그것이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심한 듯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말 미안합니다”

정지영 감독·고려대 전문교수

그를 만나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이다. 몇분과 영화계의 현안을 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동갑인 우리는 기질이 맞았다. 스스로도 선언했지만, 그야말로 탈권위적인 성격은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적의란 게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선거 때 내가 한 일이라곤 몇개의 매체에 그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글을 쓴 것밖에 없지만 나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만남은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에서였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한창 시끄러울 때 영화계 인사 몇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FTA 협상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인간적으로는 좋아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아니라는 판단도 하게 됐다. 그렇게 애증이 교차될 때 그가 간 것이다. 그분은 유서에서 ‘미안해하지 마라’라고 적었다. 물론 가족에게 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자신을 사랑했지만, 또 미워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 한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정말 미안하다. 우리 모두 그에게 신세를 진 것 같다. 그는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지막 소통의 수단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충격적이다. 아프다. 나는 연일 술만 마시고 있다.

“유령의 마력에서 깨어날 때”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배우

내가 국립극장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갑자기 어느 날엔가 창극을 보고 싶다시며 관람오셨다. 공연이 끝난 뒤 저녁을 먹었냐고 물으셔서, 부부동반으로 청와대에서 함께 식사했다. 식사하는 도중 거의 내내 전통 국악과 풍물에 관한 얘기를 하셨고, 그 분야에 관해 굉장히 해박했다. 농촌에서 성장하셔서 그런지 <서편제>도 참 좋아하는구나, 그런 인상도 받았던 게 기억난다. 그 뒤로 개인적인 인연이 전혀 없다가 2006년 어느 날 갑자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의 임명에 대해선 누구의 판단이나 추천없이 대통령 본인께서 결정을 내리셨다고 했다. 특별히 정치적인 인연이나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는데도, 아마 국립극장장으로서의 성과라든가 직접 만났을 때 내린 판단에 확신을 갖고 임명했던 것 같다. 그분의 그런 판단이 무척 각별하고 고마웠다.

장관으로 재직할 때도 언제나 내게 힘을 주셨고, 서로 참 좋은 관계로 일할 수 있었다. 정치적인 인연보다는 인간적인 인연 혹은 서로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는 문화적 인연이라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서거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유리피데스가 쓴 <박카스의 여신도들>이라는 그리스 비극이 있다. 나는 이 비극이 인간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복수심과 증오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한다.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디오니소스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곳곳에 증오의 씨를 퍼뜨린다. 수천년 전 그리스 반도의 유령인 디오니소스가 한반도에 환생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내부에 숨겨진 증오가 피의 제물을 찾아 미로 속을 떠도는 것 같다. 가혹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사정없이 몰아치던 검찰이 야수를 구속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내민 손에는, 알고 보니 도덕성과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인권 변호사 출신 전직 대통령의 심장이 놓여 있었다. 우리 모두, 복수심과 증오에 질식되지 않도록 유령의 마력에서 깨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고향 마을의 땅에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가 또 한번 내 가슴을 친다. 비통하다.

“지도자 한분을 떠나보낸 거다”

권해효 배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그분과 함께했던 몇몇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2년 11월로 기억한다. 당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후보 선출 결과를 앞둔 날이었다. 그날 저녁때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다. 대전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기나긴 길에서 그분은 초조해 보였다. 계속 버스 통로를 왔다갔다하시면서 담배를 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예전 1987년 모두들 거리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혼자서 부르다가, 가사가 떠오르지 않으면 옆사람에게 물어보면서 다시 이어서 불렀다. 모든 것을 던진 대선후보 단일화의 순간에서, 아마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언제나 자신의 원칙에서 출발했던 분이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웃기는 말이 있다. ‘지도층’이라고.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많고 그렇게 불리고자 애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도자는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우리는 정말 지도자 한분을 떠나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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