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황지우와 박찬욱의 만남] 관절없는 신체, 파시즘이 퍼지는가
2009-06-23
글 : 김용언
사진 : 최성열
황지우 한예종 전 총장과 박찬욱 감독이 만나 예술의 위기를 논하다

지난 5월18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로부터 감사 결과를 받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감사 처분서는 ‘이론학과 축소, 전공 무관 교수 초빙, U-AT(Education For Consilience of Arts & Technology in the Age of Ubiquitous Computing) 통섭 사업 중단과 연관 교수 중징계, 서사창작과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예종쪽에서는 이것이 대학의 자율적인 교수·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황지우 총장 중징계 및 실명 거론된 일부 교수들의 중징계 등의 사유가 원천적으로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한예종은 현재 문화부쪽에 이의제기공문을 제출했고 문화부쪽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씨네21>은 문화부 감사 처분에 항의하여 사퇴를 선언한 황지우 전 총장과 박찬욱 감독의 긴급 대담을 마련하여, 이번 한예종 사태로 불거진 문화예술계 전반의 심각한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문화예술계의 미래적 비전 등을 들어보았다.

씨네21: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이번 한예종 사태를 겪으면서 드는 가장 근본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 혹은 배운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황지우: 박찬욱 감독님은 칸에서 서울 오신 지 일 주일쯤 되셨겠네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제가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보니까, 박 감독님처럼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몰입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피아니스트든 야구선수든 체스선수든 소설가든 혹은 비틀스나 심지어 완전범죄에 이르기까지(웃음), 특정 분야에 숙달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박 감독님은 그동안 몰입하고 개긴 시간이 얼마나 되실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문화의 컨버전스는 세계적 경향

박찬욱: 다른 매체 종사자들과 다르게, 영화는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뭔가 혼자 하기가 힘든 분야입니다. 기회가 언제라도 주어졌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많이 썼죠. 하지만 아무런 호응없는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시인인가 영화감독인가 싶기도 하고…. (웃음) 무엇보다 시인은 지면에 발표할 기회가 어떻게든 생기지만, 각본은 제작비가 투입되어 만들어지지 않으면 발표할 기회도 없으니까요. 혼자 개긴 시간이 정말 길었죠.

황지우: 영상원 졸업생에게도 위안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1년에 영화과 졸업생이 4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이 백수 생활을 좀 하게 되죠. (웃음)

박찬욱: 제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부러워하는 게 몇 가지 있어요. 3, 4년 전엔 시네마테크가 생겨서 고전을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제일 부러웠어요. 두 번째로 디지털 장비들이 워낙 좋아져서 예전처럼 돈 없다고 혼자 끙끙 앓는 시대는 지나갔지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근본적으로 시대가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미학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한예종의 교육 방향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황지우: 제가 문학쪽에 속해 있지만, 미술이나 영화쪽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쪽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것이, 대부분 개념 미술 아니면 설치 미술 혹은 둘을 믹스한 형태입니다. 30년 동안 동어반복하는 형국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광주 비엔날레, 뉴욕 구겐하임 등을 돌아다녀 봐도 동시대 예술의 빈사상태를 겨우 제어하는 정도예요. 미래의 예술가가 될 학생들로 하여금 이 교착상태를 어떻게 돌파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2006년 총장직에 오른 이후 제 화두였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었지만 연극이나 영화 모두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아마도 디지털 언어의 보편화,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디지털을 통해 컨버전스되는 상황이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겠지요. 새로운 미학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이제는 과학 기술 분야뿐 아니라 예술도 학제간 융복합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미래의 예술가들이 ‘what art is’, 예술됨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찬욱: 다른 예술끼리도 서로 자연스럽게 혼합될 수 있는 거겠지요.

황지우: 맞습니다. 전통적인 인문학적 상상력을 과학 기술이 추동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서는 인문적 상상력이, 왼쪽에서는 과학 기술이 예술적으로 접속해 들어오는 환경에서 ‘통섭’이라는 패러다임으로 교육을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어요. 전 그런 환경을 한예종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유비쿼터스 시대 인문과학예술의 통섭 교육’이라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새로운 교육 실험을 추진했던 겁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가 바뀌면서 문화부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보기에는 미래를 투시하고 준비하는 쪽보다 과거 지향적인 퇴행에 가깝습니다. 한예종에 대해선 “지금까지 했던 걸 해라, 새롭게 일을 벌이지 말라”라는 지시가 직접 떨어진 거죠. 교육 프로그램, 교과 운영, 말하자면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보장되어야 할 교권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예종 사태의 발단이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워요. 특히 영상원만 한정해서 본다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의 욱일승천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비약적 발전에는 분명 영상원 학생들이 적지 않은 몫을 담당했다고 생각해요. 충무로에 가서나 만져볼 수 있을 좋은 기자재들을 1, 2학년 때부터 바로 쓸 수 있으니까요. 전 늘 학생들한테 그랜드피아노를 닳아 없애버려라, 카메라가 너덜너덜할 때까지 장난감처럼 막 쓰라고 합니다. 그래야 뉘앙스가 나올 수 있다고 하면서요.

박찬욱: 그 점은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전 사실 영상원 출신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지만, <친절한 금자씨>부터 <박쥐>까지 함께 작업한 정서경 작가라든지 제가 제작했던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등이 영상원 졸업생들이지요. 그외에도 현재 한국영화의 제일 중요한 세력들이 여기서 배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지금 한예종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여기서 배출된 영화인들이 남다른 이유는 일단 자기 기술만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손재주 혹은 장비에 대한 숙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근본적인 차이에요. 저도 딸을 키우고 있는데요, 본인 의사도 중요하겠지만 전 가급적이면 한예종에 보내고 싶습니다. 학부모 입장 때문에라도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웃음)

황지우: 자랑 같지만 영상원 학생들의 미학적 시야라고 할까, 여섯개 장르가 함께 모인 한예종의 장점이라고 할까, 거기에 암암리에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웃음) 영상원 학생들이 매 학기 단편을 찍을 때 연극원의 연기과 학생들을 스카우트하고, 무대 미술쪽에선 아트디렉터를 맡습니다. 전통 예술, 미술, 음악, 무용, 여러 예술 장르의 클러스터(cluster) 효과라고 할까요. 영상원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미술원 가서 강의 듣고 무용원 가서 모던 댄스도 보고, 그렇게 타 장르와의 뒤섞임을 통해 예술적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런 컨버전스가 한예종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해요. 칼아츠가 대표적이고, 줄리어드 스쿨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음악 교육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거기 드라마 프로그램도 통섭의 대표 격이더군요. 케빈 스페이시나 발 킬머가 거기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요.

박찬욱: 저도 케빈 스페이시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 교양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요. (웃음) 예일대 나온 토미 리 존스도 그렇고, 그 사람들이 그냥 곡예단에서 배우듯 연기를 연마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자기 분야만 아느냐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죠. 물론 요즘 우리나라도 바뀌고 있지만, 대다수가 자기 영화만, 요 매체만, 영화에서도 요것밖에 모른다는 게, 그리고 고전이나 문학, 다른 장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그래서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반달리즘, 그게 정말 문제에요

씨네21: 현재 문화부에서 한예종을 압박해 들어오는 건 바로 그런 통섭적인 부분을 없애라는 것이지요. 여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지우: 한예종 감사 내용 중에 이론과 축소 혹은 폐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예종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났다고 계속 주장하더라고요.

박찬욱: 영재 교육 말이죠? (웃음)

황지우: 네. 한예종 설치령 어디에도 실기만 가르쳐라, 테크닉만 가르쳐라, 그래서 일종의 기능인을 배출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멋대로 왜곡하는 겁니다. 전세계 그 어느 예술 대학에서도, 실기 중심이 교육의 목표가 아닙니다. 수단이나 방법이죠. 이론과는 필요없으니 없애라는 건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입니다. 인문학과 이론 수업이 필요한 건 학생들이 한 사람의 독립적인 예술가로 섰을 때 자기 확신과 지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고요.

박찬욱: 그 사람들이 20세기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고들 하는데 20세기도 못 됩니다. 19세기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에서 낙선되던 딱 그때입니다. 어떻게 그림을 매끈하게 그려낼까에만 점수를 주던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19세기적 사고방식이라는 게 고독하게 어디도 돌아보지 않고 캔버스만 노려보면서 붓질하거나 피아노만 하루 종일 죽어라고 치는 천재들의 신화만 머릿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은 과학의 발전을 따라잡고 도입했던 사람들입니다. 광학이론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그들의 그림이 나올 수가 없었죠.

황지우: 가깝게는 20세기의 예술사에서도 어떤 변화의 모멘텀이 과학 내지는 테크놀로지쪽을 경유하며 나온 게 많잖아요. 큐비즘을 보면 그 배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존재합니다. 20세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세계관적인 상응 관계가 있어요. 미래주의와 테크놀로지는 너무나 직접적이고,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있죠. 브르통은 텍스트에서 초현실주의의 미학적 근거들을 끌어냈고요. 백남준으로 표상되는 미디어아트는, 막 출현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자체가 어떻게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가를 표현했어요. 이런 몇 가지 예만 보더라도 한예종의 통섭 교육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문화부쪽 지시는 너무 비전이 없습니다. 답답해요. 문화부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든가 국립박물관 등 여러 소속기관들이 있어요. 지난 1년3개월 동안 그런 소속기관들의 기관장 회의에 참석하면서 점점 걱정이 커졌습니다. 문화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반달리즘(vandalism, 다른 문화나 종교 예술 등에 대한 무지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행위), 그게 정말 문제예요. 이전에는 각 기관들의 기획 능력을 인정해줬다면 지금은 그걸 전부 환원당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신체로부터 점점 관절이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현시점에서 이게 우리 문화계의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에요. 문화 행사차 평양을 두번 방문했었는데 그때 느꼈던 게 바로 그런 ‘관절없는 신체’입니다. 지금의 한국이 그것과 놀랍도록 닮아가고 있어요. 전체주의, 파시즘. 굉장히 무거운 용어입니다만, 이게 퍼져나가고 있지 않는가 싶어요.
지난 10년 동안 문화부는 어쨌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을 펴왔어요. 물론 그러면서 어떤 예산이라든가 행정절차에서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그런 정책의 잔잔한 효과라는 건 정말 컸거든요. 지금은 지원을 줄이거나 폐지하면서 동시에 간섭은 높아집니다. 문화예술의 핵심은 자발성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부분을 박멸시키고 있어요. 지원없는 간섭 혹은 지원을 대가로 하는 간섭들은 바로 문화 파괴로 갈 수 있어요.

박찬욱: 동감합니다. 제 경험담을 잠깐 말씀드리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끝낸 다음 파리 오페라쪽에서 오페라 연출 제의를 받았었어요. 스위스 현대음악가에게 위촉하여 작곡 중인데, 그 작곡가가 저를 연출자로 요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까지 다 챙겨본 다음 이 감독 아니면 안 한다고 했다더군요. 전 자신없다고 고사했는데 한번 와서 보기라도 하라고 강권하기에 프랑스에서 그 작곡가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철학과 영화, 음악, 미술을 종횡무진하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현지 미술감독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 대화만으로는 이 사람이 대체 뭘 전공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요. (웃음)
그러고 나서 스위스 작곡가가 음악을 어떻게 만들지 보여주겠노라며 저를 퐁피두 센터 앞 이르캄(IRCAM: 국립음향음악연구소)으로 데려갔습니다. 현대음악과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킨 최첨단 형태를 연구하는 곳인데, 예를 들어 슈토크하우젠의 음악을 생각하면 될 거예요. 거기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습니다. 가수가 몸에 어떤 장치를 달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음향이 달라집니다. 혹은 완벽한 무음 상태의 방도 존재하고요. 별의별 방이 다 있더군요. (웃음)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가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페라에는 큰 취미가 없어서….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만일 <카르멘> 정도의 고전 오페라라면 오케이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일 제가 전자음악에 조예가 있었다면 이르캄 기술자들과 의논하며 새로운 개발도 가능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연극 연출 경험도 없고, 오페라도 잘 모르고, 현대음악을 잘 모르고, 전자음악도 잘 모르고(웃음),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예술 매체간의 넘나듦이 어떤 식으로까지 가능한지 한국 밖에서 그게 어떻게 사고되는지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예술가에게 ‘문사철’은 기본이다

씨네21: 잠시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물론 두분 각자의 기본 토대가 문학이고 영화겠지만, 그외에도 스스로를 지금까지 키워낸 자양분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박찬욱: 어린 마음에도 영화학교에서 영화만 공부한다는 게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영화를 할지 뭘 할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철학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학교를 다니면서 철학 공부를 열심히는 못했으나(웃음), 분위기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 과를 다닐 때 선배들도 만나고 선생님들 이야기도 들으면서 어떤 태도를 배웁니다.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는 그것을 사유하는 태도 말이죠. 어떤 생각거리가 있으면 대충 궁리하다 마는 게 아니라, 어떤 논리의 고리가 막힐 때까지 끝까지 가보는 그런 태도를 배우는 겁니다. 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제 영화는 어떤 문제를 지독하게 물고 늘어진다라고들 합니다. 그런 태도는 철학과를 다니지 않았다면 가지지 못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문학으로부터의 영향력도 정말 컸고요. <박쥐>도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시작됐지요.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생각으로부터 제 영화를 출발하는 편이에요. 이 인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요.
또 하나 중요한 건 미술이에요. 제 동생(미술가 박찬경은 한예종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도 하다.-편집자)도 미술을 전공했지만, 저 역시 옆에서 들여다보면서 관심을 많이 두었어요. 전시회를 슬슬 다니고 화집도 들여다보면서 그런 시각적 상상력으로부터 영화적 상상력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번에 무슨 영화를 찍을 건데 초현실주의를 참고해볼까, 하면서 그때부터 뒤적거리는 게 아닙니다. 그건 오랫동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혼자서 계통없이 돕는 공부하는 것과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체계적으로 가이드받는 환경과 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어느 쪽이 효과적일까요? 어떤 사람이 한예종 사태에 대해 ‘통섭은 혼자 하면 된다’라고 주장하던데, 효율 위주로 생각하는 요즘 세상에서 효율을 무시하는 거죠. (웃음)

황지우: 박 감독님과 제가 배경이 비슷합니다. 전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에서 잘리고(웃음),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을 4년 다녔어요.

박찬욱: 그러고 보니 제가 학부 때 황 총장님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웃음)

황지우: 제 경우는 철학이 너무 따분하고 까다로워서, 철학책을 보면 잡념이 많이 일어나요. 칸트나 헤겔의 독일어 원서를 펼쳐놓고 한 페이지 읽는 데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웃음) 딴생각을 하는 거예요. 제 시는 바로 그 잡념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테제가 있으면 그리로 수렴하는 게 아니라 방사선적으로 튀어나가는 사고 체계였습니다. 예술은 그런 자리에서 태어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박 감독님이 철학에서 태도를 배웠다는 중요한 얘기를 하셨는데요. 예술가들에게 인문 교육은, 흔히 ‘문사철’이라고 하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기본입니다. 예술가가 세계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취하는가가 거기서 비롯되니까요. 전 박 감독님의 <공동경비구역 JSA>나 <올드보이>를 보면서 감탄했어요. 까발리고 해체하는 전략이랄까, 전체적으로 알레고리가 풍부해요. DVD로 보다가 매 장면에서 정지시켜보면 화면 전체가 다 상징이에요. 남북의 인물들이 경계를 넘나들 때 그 선 하나에 숏이 집중된다든가, 주어진 서사와 에피소드를 통해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철학에서 배운 지독할 만큼 물고 늘어지는 마인드에서 온 게 맞다 싶어요. 통섭적 인간. 다빈치적인 인재라고 해야 하나. (웃음) 그건 21세기 예술가에게 회피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마스터 철학자들을 살펴봐도 철학 공부만 한 게 아니거든요.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자연과학까지 다 합니다.

박찬욱: 얼마 전에 <시선 1318>이라는 옴니버스영화를 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윤성호 감독이라고, 그분도 영상원 출신 맞지요?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단편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가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보던 영화랑 서사 구조의 문법이 다르고 접근 방법도 달라요. 카메라를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고 제목을 다는 텍스트 활용이 다릅니다. 심지어 제목 폰트체까지도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어요. 윤성호 감독이 어린 학생들과 같이 시나리오를 썼고 학생들이 직접 출연도 했습니다.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로도 화질 좋은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만일 저보고 하라면 분명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을 거예요. 윤성호 감독은 어떻게 이 매체를 갖고 놀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종래의 방식으로만 교육받았다면 어렵지 않았을까요.

황지우: 요즘 영화계에는 다른 어떤 일들이 있나요?

박찬욱: 가까운 예로, 지난 3월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을 공모로 돌린다는 갑작스러운 통보가 떨어졌죠. 기존의 모든 지원 사업을 공개 공모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화부의 강한 의지라면서요. 시네마테크 사업을 힘들게 일구어왔고 지켜온 주체가 분명 있는데, 자기들 기준에 맞게 산정하겠다는 겁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성과들이 있는데 왜 그걸 바꾸려는지, 이건 인적 청산의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황지우: 그러지 않아도 인력풀이 적은 이 땅에서 문화적 생산이 현저히 궁핍해지는 거지요.

좌파라기보다는 무정부주의라고 해야…

씨네21: 문화부 주도 아래 문화계 전반에 걸친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이념적 코드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을 읽다보면 대체 ‘좌파’라는 용어의 뜻이 뭔지 모르겠어요. (웃음)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쓰이거든요.

박찬욱: 영화계에 대해서도 좌파가 장악한다고들 하던데, 글쎄, 진보적이라는 의미인가? 예술에서의 진보,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태도와 혼동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분방해야 하기 때문에 좌파라기보다는 무정부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웃음)

황지우: 그래야 생산성이 있지. (웃음)

박찬욱: 만일 ‘어떤 영화를 래디컬하게 파고들고 싶다’고 말하면 그걸 급진주의라고 부르겠지요. 정치적 이념과 예술적 이념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거 같아요. 분명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 기준에 맞춰서 진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을 전부 배제하고 나면 활동하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황지우: 헤겔의 저 유명한 명제가 있지요.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이 복문에서 왼쪽 입장이 좌파, 오른쪽 입장이 우파라고들 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입장을 좌파라고 하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라면 한예종 교수들은 좌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현실을 비판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 없어요. 두 번째로, 한국전쟁을 가혹하게 치른 우리 사회에서 ‘좌파’라고 하면 함의적으로 빨갱이와 등식화되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예종이 좌파의 온상이라고 주장한다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반공법이라든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적이 있는 교수는 한명도 없어요. 요는, 좌파척결의 깃발 아래서 비판적 지식인이 설 자리가 없게 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지요.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 상당 부분의 콘텐츠가 없어져버릴 거예요. 현실 비판도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콘텐츠가 된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사마천의 <사기> 이래로 죽 그래왔어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문화 파괴의 반달리즘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우리 사회 전체가 포박되는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 너무 낯익은 매카시즘입니다. 민주주의 후퇴하고도 관계가 있고요. 이제 우리가 다시 요구해야지요. 가져와야 합니다. 일년 동안 그게 반납되어버렸거든요. 국가가 다시금 시민사회 위에서 서브젝트, 주어 노릇을 하고 있었어요. 한예종 문제의 근본 역시 그겁니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

박찬욱: 본인들이 우파 정권이라고 자처하는데, 그렇다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게 상식이지요. 자꾸 간섭하려 드니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학교 한 군데의 커리큘럼까지 간섭하려면 문화부 역시 공무원을 더 채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람이 부족하지 않을까? (웃음) 황지우: 예술의 전문가도 아닌, 너무나도 불친절한 공무원이 한예종 감사를 했어요. 내가 거의 화상을 입듯 했던 70년대와 80년대 풍경들이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기시감이, 꼭 꿈을 꾼 것 같아요. 악몽을.

박찬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때 저도 시청 앞 광장에 가 있었습니다. 안치환이 나와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는데 0.5초 정도 진짜 헷갈리더군요. 그야말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다시 살아난 시기니까….

‘이머징 테크놀로지’ 과감하게 열 때

씨네21: 마지막으로 두분께서 현장에서 느끼기에, 앞으로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과제가 무엇일지 예상해보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HD로 찍었는데요. 사실 디지털적인 속성을 조금만 가져온 편이죠. 전 전통적인 드라마에 익숙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에 대해선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런데 디지털과 HD문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한 지금 상황에서 곧 입체영화가 나옵니다. (웃음)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 <아바타>가 개봉하면 다들 뒤집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상업영화 현장에서도 기술 발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예술 교육에서 이런 변화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만 배워서는 다른 예술가들과 경쟁하기 힘들어질 거예요.

황지우: 전 1992년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상금을 좀 주기에 금방 다 써버릴 테니까 뭔가 기념이 되는 걸 남기자 싶었어요. 컴퓨터 박사인 정과리 교수가 컴퓨터를 조립해줬어요. 도스 시스템으로 디렉터리를 만들고 불러내던 시기입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윈도 시스템을 전혀 상상도 못했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뒤는 어떨까, 상상해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예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예술 대학들이 이른바 이머징 테크놀로지(emerging technology)에 대해서 과감하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젠 완전 아날로그입니다. (웃음)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들의 언어가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이 언어가 낯설고 짜증스럽고 경멸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언어를 줘야 하고 툴을 줘야 합니다. 저는 이머징 테크놀로지가 순간적이고 기술적인 현란함과 쌈박함, 감각적인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툴을 통해 분명히 이 세계를 새롭게 지각할 수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머징 테크놀로지에 굉장히 개방된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그에 열린 환경을 학생들한테 제공해야 합니다. 굳이 선생들이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환경만 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냅니다. 그리고 미래를 노크하면서 찾아갈 겁니다.

박찬욱: 그러려면 손가락 놀림만으로는 분명히 안됩니다. 이런 변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던 중세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다르잖아요.

황지우: 결론 삼아서 한마디하자면 ‘냅둬, 내비둬’입니다. 한예종, 영화계,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해 내버려둬달라, 그럼 보답할 것이라는 겁니다. 믿고 맡기며 어떤 시행착오를 기다려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보다 시민사회가, 국민들이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것 같아요.

박찬욱: 이 시대가 70, 80년대의 기시감이라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예전엔 다른 세력이 기득권을 뺏어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감이 작용했다면 지금은 복수심이 움직이고 있는 듯합니다. 복수의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복수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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