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저 사람이 누구더라?
<바더 마인호프>의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원작자 이름에서 눈길이 멎었다. 슈테판 아우스트. 어디선가 들어본 게 틀림없었다. 기억이 불쑥 떠오르진 않았다. 그냥 유명한 작가이겠거니 하고 넘기려는데 불현듯 7년 전 일이 머리를 쳤다. ‘맞다. <슈피겔> 편집국장이다.’ 2002년 1월,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거대 미디어 그룹 슈피겔 본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고교졸업장과 운전면허증이 내가 가진 자격증의 전부”라고 했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그는 <바더 마인호프>에 등장하는 울리케 마인호프와 함께 리버럴 좌파 잡지였던 <콩크레트>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 1985년 <신화의 시간>이라는 소설을 썼고, 한참 뒤 울리 에델 감독이 이를 영화화했다. 머나먼 이국땅 영화가 크레딧 한방으로 친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 여성 언론인 마인호프는 적군파 혁명가로 투신한다. 백화점을 불태웠던 안드레아스 바더를 용감하게 감옥에서 구출하고 본격 무장투쟁에 나선다. 은행강도를 벌이고, 경찰 간부들과 정부 요인들을 살해한다. 그녀를 포함한 리더들은 곧 체포된다. 그럼에도 서독 적군파 일당은 여객기까지 납치하며 세계혁명을 꿈꾼다. 그들은 왜 그리 무모한 짓을 감행했을까.
미국에서 살다온 선배에게 서독 적군파 이야기를 꺼냈더니, 미국 적군파를 아느냐고 되묻는다. 일본은 알겠는데 미국은 금시초문이었다. 자료를 찾아봤다. ‘웨더맨’이라는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 분파였다.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가 <웨더 언더그라운드>(2003)였다. 형식만 다를 뿐 내용에서는 <바더 마인호프>와 놀라울 정도로 쌍둥이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도시 게릴라 무장투쟁이 싹을 틔우는 과정은 서독과 다르지 않았다. 소박한 베트남전 반전시위를 향한 살기어린 진압, 그리고 인권운동 지도자들의 피격. ‘웨더맨’들은 지하로 숨어든다. 폭탄제조기술을 학습하며 혁명을 준비한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의 주요 건물이 줄줄이 불타오른다. 연기보다 생생한 옛 시위 자료화면과 당시 멤버들의 증언을 교차편집하는 <웨더 언더그라운드>의 장점이 사실성이라면, <바더 마인호프>의 미덕은 블록버스터라고나 할까.
<바더 마인호프>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점이 아쉽다. 오히려 단체관람을 권하고 싶다. 20세기 세계사 공부가 저절로 되는 작품이라서다. 폭력으로 구축된 세계질서의 이면을 통찰하게 해준다. 시민의 폭력과 국가폭력의 한계가 각각 어디까지인지 곱씹게 해준다. 2009년 대한민국의 용산과 평택이 떠오른다면, 그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