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종교에 대한 담론으로 보지 마라
2009-08-18
글 : 김도훈
사진 : 최성열
이용주 감독 인터뷰

이용주 감독은 <살인의 추억> 연출부로 영화계에 뛰어들었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영화사에서 입봉작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준비하던 멜로영화가 엎어졌다. “가장 입봉하기 쉬운 게 공포영화 아이템인 것 같아서 <불신지옥>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게 이 영화의 탄생 비화다. 이용주 감독은 원래 건축을 전공한 건축학도다. 건축사에서 4년간 직장생활을 한 경험도 있다. “영화가 하고 싶었다. 게다가 직장생활 시작했을 때 IMF가 터졌는데 주변 사람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보면서 짜증도 많이 났었다. 그러다가 이래저래 단편을 하나 찍었는데 아주 재밌더라. 안 하면 후회하게 생겼더라. 부모님께 딱 2년만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10년째다. (웃음)”

-제목을 봉준호 감독이 지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 정말 이걸 어떡해야 하나. 그거 오보다. 일파만파 퍼져서 기정사실화돼버렸다. 초고 제목부터 ‘불신지옥’이었다. 제작사 내부에서 제목이 비호감이라 바꾸자는 말이 있었고, 고(故) 정승혜 대표님이 <비명>이라는 제목을 지으셨다. 그런데 이후 결정할 시점이 되어 둘 중 뭐가 나은지 회의를 하다 결국 <불신지옥>으로 결정했다.

-영감의 원천은 뭔가. 실제 모태가 된 사건이 있나.
=무당과 관련된 아는 선배의 초자연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아주 개인적인 사건이어서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고 영매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매는 신과 사람의 중간자다. 그런데 그게 기독교쪽에서 보기에는 성령일 수도 있다. 이런 말이 도발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신과 대중을 이어주는 중간자가 영매 아닌가. 불교에서는 그게 스님이고 개신교에서는 목사고 무속신앙에서는 무당인 셈이다.

-기자시사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굳이 ‘사이비’라는 말을 강조하던데. 교인들의 반발이 좀 걱정되어서 그런 건가. 사실 나는 영화가 한국 기독교의 위악적인 이면에 대해 더 강하게 밀어붙일 줄 알았다.
=내가 경계한 건 이 영화가 자꾸 그런 부분으로만 화제가 되는 것이다. 이건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고 호러영화일 뿐이다. 그런데 종교에 대한 담론이 영화를 뭉개버릴까봐 걱정이 됐다. 물론 종교적 맹신은 내게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그게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잖나. 중요한 건 균형이다. 만약 이게 진짜로 한국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저항감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불신지옥>이라는 제목 자체를 아예 달지 않았을 것이다. 한쪽 손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이명박 시대를 창조해낸 한국 서민층의 불쾌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월남전 참전 용사에다 삼청교육대 운운하며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내뱉는 경비원 귀갑의 캐릭터가 그런면에서 두드러진다. 그런 분들, 요즘 서울광장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번 정부 역시 기복 종교의 산물 아닌가. 바르게 사는 걸 버리고 오직 잘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대통령을 뽑았으니까. 다만 그걸 비판하려고 귀갑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다. 오히려 이건 나의 오래된 개인적 공포에서 온 캐릭터다. 5공, 6공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내가 느끼던 공포의 대상이 귀갑 같은 어른들이다. 국가적으로 국민을 협박하던 시대였으니까.

-장르적인 강박에서 자유로웠거나, 혹은 장르적인 강박이 오히려 심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듯하다.
=강박이 없었다. 강박이 없어서 이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정한 기준은 기존의 영화에 비해 너무 낯설면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낯설어서는 안 된다. 다만 새로워야 한다. 장르에 대한 공부는 당연히 필요했고, 공부한 토대 위에서 뭘 약간 비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공부를 위해 참고한 호러 장르 영화들은 뭐가 있나.
=영화는 거의 없다. 주로 다큐멘타리를 참고했다. 다큐영화 <영매>도 봤고, 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던 ‘거리에서 신앙을 파는 사람들’ 같은 다큐멘타리를 흥미롭게 봤다. 한 사이비 종교 다큐멘타리를 봤는데 그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지도자가 만든 물을 죽은 자에게 바르면 부활할 거라 믿더라. 한번은 아들이라는 사람이 매장했던 어머니 시체를 꺼내 와서 물을 바르며 부활을 기도하더라. 바로 그런게 우리 상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광신의 공포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불신지옥>은 호러라기보다는 오컬트 추리극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미스터리와 호러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다. 음, 소진이나 수경 같은 캐릭터를 사다코처럼 보여줬다면 호러영화로서 조금 약하다는 이야기는 안 들었겠지만(웃음).”

-결정적인 한방은 부족하지만 호러 장르 영화로서 시각적인 부분이 결코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 특히 첫 희생자가 옥상에서 목을 매고 추락하는 장면과 지하실 추적 장면은 시퀀스의 리듬과 긴장감이 정교하고 박력 넘친다.
=지하실 추적 장면을 준비하면서 촬영기사에게 이야기한 것이 <사일런트 힐>이다. 칠흑 같은 어둠 말이다. 촬영기사가 난감해해서 테스트 촬영도 했다. 휴대폰 불빛만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조명기사가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결국 애초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었다. 사실 호러영화들을 보면서 불만이 좀 있었다. 밤인데 왜 다 보이는 걸까. 왜 차 안에서 굳이 불을 켜고 있을까. <불신지옥>의 지하실 장면은 리얼하게 가고 싶었다. 그런데 추락 장면은 시나리오만큼 잘 나오지 않은 것 같아 불만이 많았다. 좀더 ‘날스럽게’ 찍고 싶었다.

-‘날스럽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
=음, 그게… 말 그대로 날고기처럼 찍고 싶었다는 말이다. (웃음) 변명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내가 컷에 욕심이 엄청 많아서 1회차 찍는 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성격이 대단히 꼼꼼한 모양이다.
=결정적인 것은 연출부로 참여했던 <살인의 추억>이다. 그게 유일한 현장 경험이라 이후로도 영화 현장의 기준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 현장에서도 봉준호 감독님에게 배운 것 처럼 꼼꼼하게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탭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더라. (웃음) 봉 감독님에게서 좋은 기준을 물려받은 것 같다. 그분은 콘티까지 직접 그려 오신다. 놀랍다. 그려 오신 그대로 찍는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싶었다. 그 밑에서 보고 배운 게 바로 프리 프로덕션의 중요성이다.

-<불신지옥>에서 가장 훌륭한 점 하나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다루는 솜씨다.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아파트 도면을 만날 그렸으니까 익숙하다. 예산이 적어서 거기 맞추려면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을 미분해서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파트에 있는 공간은 모두 나온다. 지하실, 복도, 엘리베이터, 옥탑, 옥상 등등. 그런데 공간적으로 밀실극이 되면 답답하니까 공간적으로 풍성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했다. 예전에 5년간 준비하다가 엎어진 멜로도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건축가 출신의 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아파트가 참 희한하게 생겼다. 구하느라 고생 좀 했겠다.
=시나리오 지문에 ‘건설사를 알 수 없는 지방 아파트’였다. 요즘 아파트는 사실 일종의 공산품이다. 아파트 평면이 이미 획일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근데 지방으로 내려가면 삼성이나 현대가 아닌 작은 건설사들이 지은 아파트가 많은데, 서울 아파트들의 고정된 평면도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가 많다. 그런 이형적인 장소를 구했다. 익숙하지만 뭔가 다른 점이 좀 있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싶었다.

-이 질문은 기대했겠지만, 학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 질문 안 나오나 했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상징이다. 그런데 이 상징이 논리적으로 납득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불신지옥>은 선악의 대결이 아니다. 그런 컨셉을 지키고자 만들어 넣은 상징이 학이다. 혹자는 이게 소진이라고도 하고, 신령이나 악령이라고도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절대 대답 안 하겠다. 그래도 조금 설명하자면, 이 영화의 종교적 믿음이라는 건 증명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학 역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차용한 거다. 학은 과천 동물원에서 찍은 뒤 배경과 합성한 거다. 학대는 결코 없었다. 닭을 잡는 장면도 나오지만 진짜 잡은 게 아니다. 조류 학대는 없었다고 밝혀달라. (웃음)

-호러영화로 입봉하는 감독들에게 언제나 물어보는 이야긴데, 호러 장르에 애정이 원래 있었나.
=호러 마니아는 아니다. 잘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건 있었다. 플롯은 뻔한데 귀신 분장에만 공을 기울이는 호러영화들은 재미없었다. 무서운 장면이 많은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무서운 공포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물론 장단이 있다. <불신지옥>은 태생이 그러하니 시각적인 자극이 좀 덜한 편이다. 만약 다시 호러영화를 찍으면 시각적인 면과 이야기 사이에서 밸런스를 더 잘 맞춘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사실 분장팀장이 좀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처음 분장이 과해서 지우자고 했더니 그러시더라. 공포영화인데 이래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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