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내 운명>에 이어 다시 사랑 이야기를 꺼냈다.
= 뭐 크게 벗어나겠나. 사랑 이야기라 해도 이번에는 사랑의 감정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 삶인 사람들, 삶이 곧 사랑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면 설렘, 열정, 욕심, 욕망 뭐 그런 것들인데, 이번에는 조금은 포괄적인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 그게 가족의 사랑이든 부부간의 사랑이든 조금 더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배경이 6인용 병실이 되는데 그것도 비슷한 차원에서였나.
= 좀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그놈 목소리> 이후 내가 관객을 부담스럽게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사회적인 목적이든 뭐든 뭔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때로 선동도 해야 했다. 관객이 이런 데 부담을 갖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됐고 나 스스로도 부담이 됐다. 편안한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신파적인 느낌이나 순정파의 색채는 여전하다.
= 영화평이 많이 안 올라왔지만 대체로 반반이더라. 역시 최루성 신파영화란 쪽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쪽이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사실 불치병을 다룬다는 게 어느 정도는 뻔하고 나 또한 그 틀을 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야 항상 배우가 무기잖나. (웃음) 이번에도 정말 타고난 배우운으로 작업을 했다. 좋은 배우들과 서로 신뢰하면서 영화를 찍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지면 될 것이다.
- 시사교양 PD 출신답게 전작들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다. 이번 경우는 루게릭병을 소재로 삼기는 했지만 실화는 아닌 것 같다.
= 사실 나는 실화가 아닌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너무도 무궁무진한 영화 같은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 스스로를 옥죄고 힘들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게 됐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는 신문, 방송에 나오거나 역사적 사실만을 실화라고 부르는데, 사실 우리가 살고 웃고 먹고 마시고 놀고 사랑하고 이런 일 또한 다 실화 아닌가. 그래서 특별히 실화다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거기에 너무 강박관념을 가졌던 것 같다.
- 루게릭병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방송사에 다닐 때 취재했던 아이템이라거나.
= 내가 취재한 적은 없다. 루게릭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하잖나. 그런데도 많이 다뤄지지 않아서 사회적 관심도 더 필요한 질환이다. 이 병이 힘든 이유는 의식과 감각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육체가 죽어간다는 점이다. 육체는 멀쩡한데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과는 반대인 셈이다. 오래 사는 분들도 계시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뜨고 보게 된다. 그래서 루게릭병 환자를 의식없이 누워 있는 식물인간들과 같은 병실에 눕혀놓으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 당신의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번에도 안락사 같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두 주인공의 고향인 지뢰마을과 관련된 사회적 메시지가 있을 줄 알았다.
=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가 내 영화에선 굉장히 중요한 설정이 된다. 지뢰마을은 내가 취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거기 분들은 의족을 많이 하고 있고 법을 공부하는 분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정면으로 다룰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니까. 안락사나 존엄사에 관한 문제를 애초엔 좀더 하려고 했다. 시나리오에도 있고 찍기도 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요소가 방해되는 느낌이 있었다. 편집과정에서 들어낸 것이다. 물론 박진표라는 사람의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잘못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좀 피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 주인공 중 한쪽을 루게릭병 환자로 설정해놓고 다른 쪽은 장의지도사로 정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언제나 나는 노골적이잖나. (웃음) 그것을 불편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어떻게 하겠냐. 내가 그렇게 생겼는데. (웃음) 그런데 실제로 그 모델이 있다. 내 가족 중 한분이 돌아가셨을 때 실제로 여성 장의지도사를 만났다. 죽 지켜보는데 젊은 친구가 참 예뻐 보이더라. 왜 영화에 대사로 나오잖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이라고. 정말 예쁜 손 같더라. 장례가 끝나고 나서 영화와 똑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영화 속 지수와 어느 정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게 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을 감싸안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을 가진 여자와 의식이 명료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만나면 그 만남 자체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어떤 성찰 같은 게 특별하게 두드러지지 않더라.
= 생각해보면 몇년째 가족의 곁을 지키는 일은 얼마나 힘드냐. 때로는 원망도 하고 때로는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그게 생활이 되어버려 숨쉬는 것 자체로 고마워하고 행복해하고 한다. 그게 포괄적으로 사랑인 거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그냥 한순간이라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저러면?’ 또는 ‘저게 나라면?’, ‘우리 가족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번씩이라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영화는.
- 흥행을 생각하면 <너는 내 운명>의 유치장 같은 폭발적인 장면이나 최루영화처럼 쥐어짜는 대목이 있을 법도 한데 차분하게 결말짓더라.
= 이 영화와 <너는 내 운명>은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일단 이건 두 사람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또 후반부에 남자주인공은 누워 있기만 하고 여자 혼자 감정을 터뜨려야 한다. 아마도 그런 데서 비롯되는 감정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울림의 폭이나 깊이에서도 조금은 다를 거다. 이를테면 큰 울음을 주고 시원하게 끝나는 영화가 있고 울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건 후자쪽이다. 일반인들은 의외로 이 영화가 훨씬 슬프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 사랑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반에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불사르자’는 쪽이었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이별이 예고된 미래에 대한 슬픔이 두드러진다. 어떤 게 사랑의 본질이라고 보나.
= 내 지론은 전자쪽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나. 그런 대사도 나오잖나. “세상에서 제일 먹기 힘든 게 마음이라잖여. 젤루 버리기 힘든 게 욕심이고. 젤루 배우기 힘든 기술이여”라고. 쿨하게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점점 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인 것 같고 삶인 것 같다.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맹점 아닌가 싶기도 하고.
- 결국 종우에 대한 지수의 사랑은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욕심이고 동정일까.
= 사랑이라는 게 뜬구름 아닌가. 욕심도 사랑이고 동정도 사랑이고. 그런 생각도 하는데, 사람들이 과연 상대방을 사랑하는 건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하는 건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도 같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랑이라는 단어 같다. 너무나들 쉽게 말하지만 뭘까 싶은 괴물 같은 단어고 뜬구름 같은 단어고.
- 그런 뜬구름 같은 사랑을 하는데 겉보기에 지수는 너무도 헌신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 누군가가 그랬다. 아무리 세상의 편견 속에 있는 직업을 가진 여자라 해도 죽음을 앞둔 남자와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랑하느냐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확 가는 건 한순간이라고. 종우에 대한 지수의 감정에 욕심이나 동정도 없진 않겠지만, 종우가 지수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이라고 해주잖나. 나는 지수가 거기서 확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겠지. (웃음)
- 영화 속 종우는 ‘가식적’이라는 말을 유독 싫어하는데, 순정한 세상을 믿는 당신의 입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순수한 마인드가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 이 세상 그 누가 가식적이라는 말을 좋아하겠냐. (웃음) 물론 영화라는 게 내 안에서 나오니까 내가 보고 있고 원하는 세계일 텐데, 실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들이 뭐라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후반부 얼굴 근육이 자유롭지 못한 종우가 겉으로는 웃는 표정을 하는데 속으로 우는 모습이었다.
= 김명민에 관해서 살을 20kg 뺐다는 사실만 너무 강조되는데, 그 장면이야말로 그의 연기에서 백미다. 종우의 감정은 하나가 아니잖나. 지수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자존에 대한 감정도 있고,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떠나야 하니까 밀어내고 싶은 감정도 있고. 거기에 뇌신경 장애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까지 있다. 그것들이 들쑥날쑥하는데 그 장면이 그 모든 게 집약된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모두 통합된 오묘한 표정 아닌가. 실제로 그 장면을 찍을 때 스탭들이 모두 울더라.
- 주인공 중 한쪽이 사지를 못 움직이다 보니 많은 것을 대사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감독 입장에서 답답했을 것 같다.
= 답답하고 고민이 됐는데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종우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후반부로 가면 손가락으로 전동 휠체어를 움직이는 정도 외엔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없다. 그나마 실제 환우들이 봤을 때는 비현실적이지만 영화적으로 필요한 리얼리티를 부여하긴 했다. 실제로는 말도 잘 못하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한다면 정말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아서 영화적 리얼리티를 살리는 쪽으로 간 거다.
- 애초 종우 역은 권상우가 맡기로 됐다가 갑자기 번복하는 바람에 무척 당황했을 것 같다.
= 어떻게 당황이 안되겠나. 그래도 김명민이 맡아줘서 다행이었다. 많은 분들이 전화위복이라고 말해줬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 김명민을 선택한 이유는.
= 그가 연기한 이순신, 장준혁, 강마에를 떠올리면서 그가 멜로에 어울리겠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그의 눈과 목소리만을 봤다. 그리고 의인과 악인이 있다면, 악인을 연기해도 너무 절실해서 용서받는 유일한 배우라는 생각도 들었다. 종우가 약간 이기적이잖나.
-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어떤 배우라는 생각을 했나.
= 단순히 20kg을 뺐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다. 크리스천 베일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는 살을 뺀 뒤 촬영을 시작했고, 김명민은 하루 0.5그램씩 살을 빼는 과정 자체가 연기였다는 거다. 그러니까 살을 뺐다는 것과 연기 잘했다는 것을 따로 생각하면 안된다. 이건 정말이지 목숨 걸고 한 연기이고 진짜 메소드 연기인 거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육체에 동화돼서 연기를 한 거다. 정말 괴물 같은 배우이고 완전 연기에 미친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전세계에 과연 있을까 의심한다.
- 지수 역할로는 애초부터 하지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 <발리에서 생긴 일> <다모>를 좋아하기도 했고, 실제로 만나보니까 도화지처럼 하얗고 순수하면서도 착한 친구더라. 장례지도사 훈련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형사 Duelist>나 <황진이>에서 그랬듯이 워낙 육체로 뭔가를 익히는 데는 능력이 있는 친구라 진지하게 몰입해서 임하더라. 하지원에게는 지수 역할을 설명하면서 ‘분명 이런 사랑을 해봤을 리는 없을 테니 그냥 그런 느낌을 생각하고 부딪혀보자’고 말했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으니 준비하지 말고 그 순간의 상황에 충실하라고.
- <행복> 때 허진호 감독을 인터뷰해주지 않았나. 그때 허 감독은 ‘<너는 내 운명> 같은 영화를 만들려다가 내 식대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 영화는 <행복> 같은 영화를 만들려다 박진표식으로 만들어낸 듯하기도 하다.
= 실제로 <행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복이 뭘까, 이건 정말 광의적인 얘기잖나.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도 좀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싶다. <행복>뿐이 아니더라도 허진호 감독의 영향이 여럿 있는 게 사실이다. 나는 그분과 그분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뗄 수가 없는 것 같다. 진호 형이 잘 봐주면 좋은 거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