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감독의 네 번째 장편 <내 사랑 내 곁에>는 외견상 그의 전작들과 달라 보인다. 실제 노인 커플을 출연시킨 <죽어도 좋아!>, 에이즈 걸린 여성과 농촌 총각의 이야기를 다룬 <너는 내 운명>,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극화한 <그놈 목소리>까지 그는 실화를 소재로 삼아왔다. 방송사 시사교양 프로듀서 출신답게 그는 실화를 매개 삼아 사회적 반향이 강한 메시지를 던져왔던 것이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별한 메시지 또한 담지 않은 영화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와 완전히 결별했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세련미있게 가공되지 않은 감정의 직접적인 분출, 세상의 순정함에 대한 믿음, 영화적 스타일보다는 배우 연기의 극대화 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종우(김명민)와 지수(하지원)가 있다. 감각과 의식은 멀쩡한데 육신이 마비되는 루게릭병에 걸린 종우는 이제 막 마지막 혈육인 어머니를 잃었다. 그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찾아온 장의지도사 지수가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살았던 장의사집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한때 좋아하는 감정을 가졌던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것이라는 희망에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종우의 병세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사실 시한부 인생의 사랑을 다룬 <내 사랑 내 곁에>의 이야기는 그리 참신할 게 없다. 박진표 감독은 갖가지 변형을 통해 뻔한 결말을 피해보려 했던 이 소장르의 영화와 달리 죽음이라는 문제를 처음부터 끄집어내는 정면승부를 펼친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또렷한 정신으로 바라보는 종우의 고통뿐 아니라 죽음을 너무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지수조차 사랑과 맞닿아 있는 죽음 앞에서 무릎 꿇게 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증폭하는 것이다. 여기에 종우와 함께 병실을 쓰는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함수를 풀어내려 한다. 이 영화는 죽음도 가를 수 없는 절대적 사랑을 말하는 동시에 그 사랑이란 자족적이거나 그저 덤덤한 생활일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김명민과 의외로 순정파 여성 캐릭터가 어울리는 하지원의 연기 외에 이 영화의 미덕은 단정짓지 않는 사랑에 대한 태도와 자극성을 피해 묘사된 묵직한 비극성일 것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나 섬세하게 설계된 이야기의 통로가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에만 의지해 이미 정해진 결말로 나아가는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건 ‘실화성’이 감싸주던 리얼리티의 체온이 부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