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프로젝트에는 일을 벌이는 누군가가 꼭 있다. <15말레이시아>의 프로듀서인 피트 테오가 그렇다. “평소 친분이 있던” 15명의 감독들을 불러 모아 말레이시아에 관한 영화를 제작해서다. 시작은 지난해 말레이시아를 뜨겁게 달군 한 뮤직비디오. ‘인종차별’을 주제로 120여명의 가수, 아티스트들이 <Here in My Home>이란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것이다. 영화배우이자 뮤지션인 피트 테오 역시 참가했다. 뜻깊은 자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딴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주위의 감독들과 함께 다인종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문제를 짚어보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는 야스민 아흐마드와 같은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부터 호유항, 리우 셍 탓과 같은 젊은 피까지 한데 모이게 했다. 감독들에게 그가 강조한 건 두 가지다. “정치적인 문제일수록 대중적으로 만들어라”와 “검열을 피하기 위해 TV, 극장이 아닌 인터넷에서만 상영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파리, 뉴욕 프로젝트와 같이 도시를 마냥 예찬하지 않는다.
감독들이 많은 만큼 촬영 뒷이야기도 가지가지다. 먼저, 말레이시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비위생적인 삶의 방식들을 풍자하는 <건강한 과대망상>. “장관이 정말 재미없는 사람인데 카메라만 돌아가는 돌발행동을 하는 등 의도치 않게 코믹한 장면이 나왔다.” 반면에 가슴 아픈 일도 겪었다. 바로 <초콜릿>과 이번 영화제에서도 상영하는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을 연출한 야스민 아흐마드 감독의 죽음. “젊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때마다 야스민이 제작비를 보태줬다”는 피트 테오 프로듀서는 “모두들 그녀를 ‘마(엄마)’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작품 끝날 때마다 그녀를 추모하는 자막이 올라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배우, 뮤지션,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다재다능한 만큼 그는 연출에도 마음이 있지 않을까. “영화 만들었다고 다 감독이 아니다. 사람들이 감독으로 불러줘야 진짜 감독”이라는 그는 “세상에는 형편없는 영화가 얼마나 많나. 그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진 않다(웃음)”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