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테러보다 치열했던 나라 사랑
2009-10-14
글 : 이주현
<눈물의 왕자> 욘판 감독

욘판 감독은 해외 나들이가 잦다. 홍콩, 대만, 중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올해는 베니스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 5년만의 신작 <눈물의 왕자>가 초대돼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많았다. 홍콩 현지에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상태라 오스카행도 기대해볼만 하다. 프루트 챈이 제작하고 욘판이 감독한 <눈물의 왕자>는 1950년대 대만,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영화의 큰 소스가 됐다.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매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슬픈 동화 같다. 욘판 감독이 3명의 배우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타났다. 대만의 톱 배우 3명은 욘판 감독이 “편하고 재밌고 촬영장에선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전날 GV때도 맸던데, 스카프가 인상적이다.
=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너무 좋아서 똑같은 걸로 다섯 개나 샀다. 영화만큼이나 스카프를 좋아한다.(웃음) 지금 부산의 선선한 날씨에도 꽤 어울린다. 부산에 오니 홍콩에 있는 것처럼 마음도 편하다. 도시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와 닮은 것도 같다.

-대만에서 촬영한 첫 작품이다. 그동안은 왜 대만에서 영화를 찍지 않았나?
=찍고 싶은 장소가 생기고 느낌이 오면 가서 찍는 것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눈물의 왕자>는 나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다. 어릴 때 대만에서 자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영화에 담은 거니까 촬영지에 대한 고민도 크게 하지 않았다.

-1950년대에 당신은 영화 속 어린 아이들 또래였는데, 그 당시에 대한 기억은 얼마나 남아 있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백색테러(1950년대 대만에서 행해진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를 보고 또 얘기한 거다. 어른의 시점이 아닌 아이의 시점으로.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분위기는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
=나는 창작자니까. 파워풀하고 재능있고 창의적인 예술가니까. (웃음) 농담이고, 중요한 건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진솔하게 담는 거였다. 정치적으로 무거운 얘기고, (마녀사냥을 일삼았던)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가 대만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 관객들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았고, 상상의 여지를 두고 싶었다. 선과 악,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 평화와 테러처럼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백색테러에 대한 저항, 선언이 아닌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대만에서 잘 나가는 배우 4명을 한 자리에 모으기 어렵진 않았나?
=다들 시나리오 보고 너무 좋아해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 <눈물의 왕자>는 5년이나 준비해서 완성된 작품이다. 영화 찍기 전에 <눈물의 왕자>를 소설로도 집필했고, 배우들한테 책을 나눠주고 캐릭터를 분석해오라고 시켰다. 시나리오가 나왔을 땐 이미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상황이어서 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 45일간의 촬영 기간이 마치 방학 같았다.

-핑(주 슈안)과 우-양 부인(테리 콴)의 관계가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시나리오 쓸 때 결말을 생각하고 쓰지는 않는다. 캐릭터에 몰입해서 쓰다보면 그런 결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영감이 모든 걸 만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꼭 잉크로 시나리오를 써야 된다. 그래야 영감이 떠오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사진 박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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