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타츠야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부산영화제의 ‘공식 의전(?)’이라 불리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폭탄주 세례를 받은 것. 그 자리에 동석한 부산영화제 양시영 어드바이저는 “후지와라 상, 처음엔 못 마신다더니 나중엔 스스로 (폭탄주를) 말고 있더라”며 후일담을 밝혔다. 이 짓궂은 폭로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좀 더 마실 수도 있었는데…”라고 대답하는 후지와라 타츠야는 영락없는 스물일곱 청년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 무대와 스크린 안쪽의 그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프로다. 배우 데뷔작 연극 <신도쿠마루>의 장님 소년부터 무차별 살육전에서 살아남은 <배틀로얄>의 테러리스트, <데스노트>의 악의 심판자까지, 후지와라가 맡은 역할은 대부분 캐릭터 그 자체가 작품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하곤 했다. 그래서 <퍼레이드>의 나오키를 후지와라가 연기했다는 건 절반은 의아하고, 절반은 그럴듯해 보인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퍼레이드>는 꿈을 꾸지만 무기력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일본 20대 청년들의 무채색 청춘을 그린 작품. 후지와라가 맡은 나오키는 영화사 직원으로, 다른 네 명의 주인공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역할이다. 확실히 지금까지 후지와라가 도전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캐릭터이기에 의아한 선택이면서도 ‘마지막 한 방’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이기에 수긍이 간다. “원작 소설은 읽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키란 인물이 안고 있는 고독과 불안에 끌렸다. 그는 자신이 주도적이며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뒤쳐졌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지 않나.”
우연히도 후지와라 타츠야는 <퍼레이드>의 나오키(28살)와 한 살 차이다. 어린 나이에 톱스타의 위치에 올랐지만 20대 특유의 불안감은 그 역시 안고 있는 듯했다. “현재에 늘 최선을 다한다. 솔직히 일은 한순간에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아직 같이 작업을 못해본 감독, 배우, 작품이 너무 많은데, 나중에 이들과 만나려면 현재에 충실해야 되지 않겠나.” 그런 그가 탐내는 역할은 <올드보이>의 오대수다. 과연 그 다운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