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성숙한 앨리스가 팀 버튼을 만났을 때
2010-03-18
글 : 김도훈
3D 블록버스터로 탈바꿈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가 아니면 누구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만든다면 대답은 딱 하나다. 팀 버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치게 어울리는 소재와 감독이 만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오랜 할리우드의 교훈을 말이다. 어쨌거나 팀 버튼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프로덕션디자인과 <나니아 연대기>를 연상시키는 할리우드 판타지의 관습을 양손에 들고서 루이스 캐럴의 고전을 업데이트했다. 그래서, 그게 성공적이냐고?

인류 역사상 가장 괴상한 아동소설의 고전이라면 당연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연작이다. 아동용 개정판으로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꺼내든 어른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을 거다. 루이스 캐럴의 원작은 기묘하고 기이하고 기괴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세계다. 수수께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훌륭한 주석본 중 하나인 마틴 가드너의 <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The Annotated Alice)를 읽는 게 좋다. 마틴 가드너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작에는 심지어 수학적 수수께끼도 숨어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괴이한 고전을 대체 누가 영화화할 것인가. 도전한 자들은 많다. 가장 유명한 버전은 역시 월트 디즈니가 1951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금발에 파란색 점박이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가 앙증맞은 생물들과 원더랜드를 떠도는 그 고전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이 많다. 누구는 디즈니가 원작의 정서를 해쳤다 생각하고(주로 영국인들이다), 누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가장 감동없는 평작이라 생각한다(주로 미국인들이다). 둘 다 맞는 소리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원작 고유의 무정부주의적인 초현실주의가 희석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원작의 묘미를 살리느라 제대로 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완벽한 난센스의 세계를 어떤 감독이 장편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10년 전이라면 테리 길리엄의 이름을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단 하나의 이름뿐이다. 팀 버튼.

원작과는 다른 19살의 앨리스

일단 새로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소녀 앨리스 킹슬리가 이상한 나라를 방문한 지도 어느덧 10여년이 흐른 어느 날. 19살의 장성한 처자 앨리스(미아 와시코스카)는 애스콧 경 부부의 파티에 갔다가 그날이 바로 덜떨어진 아들 해미쉬가 공개 구혼을 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시 영국의 관습에 따르자면 앨리스는 반드시 구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주저하던 앨리스는 갑자기 나타난 토끼를 따라 달아나다가 토끼굴 속으로 떨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더랜드다. 문제는 앨리스가 어린 시절의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모자장수(조니 뎁), 체셔 고양이(스티븐 프라이), 애벌레 압솔렘(앨런 릭맨) 등 원더랜드의 주민들이 앨리스가 폭군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에 대항해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의 직위를 되돌려줄 전사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촬영현장의 팀 버튼(왼쪽)과 주연 미아 와시코스카.

시놉시스를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팀 버튼과 제작진은 캐럴의 원작을 그대로 리메이크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오즈의 마법사>와 함께) 서구사회 무의식의 일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문화적 상징 중 하나다. 그대로 영화화했다가는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를 선언했을 게 틀림없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원작의 속편, 혹은 에필로그다. 각본가 린다 울버튼은 말한다. “어떤 식으로 각색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마침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앨리스의 나이를, 중대한 결정을 눈앞에 둔 19살 성인으로 확 올려버리는 거죠. 삶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홀로 서 있는 앨리스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각본을 쓰기 시작했어요.” 팀 버튼 역시 린다 울버튼의 각색 방향에 동의한다. 그가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각색의 방향은 “제대로 된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극장 버전에서 한번도 강렬함을 느껴본 적 없습니다. 그냥 여러 괴상한 사건들을 주욱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지요. 제 목표는 원작의 고전적인 본성을 지키면서도 좀더 감정이입이 가능한 영화를 만드는 거였습니다.”

관객이 이입할 수 있는 현대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팀 버튼과 린다 울버튼은 원더랜드 바깥의 앨리스를 창조했다. 그녀는 국제무역을 꿈꾸던 야심찬 사업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꿈을 잃어버린 상태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결혼해서 좋은 아내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인생의 기로에 서 있던 앨리스는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던 이상한 나라로 돌아간 뒤 자아를 되찾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페미니즘의 기운으로 다시 읽어낸 앨리스다.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는 구혼을 물리치고 아버지가 꿈꾸던 중국 무역 시장의 개척을 위해 무역선에 오른다. 문제는 이게 그다지 정치적으로 공정하다고는 하기 힘들다는 거다. 이를테면, 19세기 페미니스트 제국주의자 앨리스의 모험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현실의 앨리스 캐릭터를 업데이트하는 건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이상한 나라 속에서 벌어지는 앨리스의 모험에 원작과는 다른 할리우드적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팀 버튼과 제작진이 참고한 건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같은 최근 할리우드 판타지영화들인 듯하다. 앨리스는 폭군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묘사되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붉은 여왕의 거대한 용 자바워키와 혈혈단신 최후의 결전을 맞이한다. 우리가 알던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앨리스는 오히려 칼을 들고 싸우던 <나니아 연대기>의 주인공들이나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을 연상시킨다. 팀 버튼이 루이스 캐럴의 원작으로부터 온전히 가져온 건 상징적인 캐릭터들뿐이다. 그는 캐럴의 캐릭터를 손에 들고서 현대적인 판타지 모험영화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관습적인 판타지영화의 내러티브 때문에 캐럴의 뒤틀린 듯 어둡고 해체적인 상상력이 휘발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디즈니의 이름으로 (IMDb에 따르자면) 2억5천만달러의 제작비를 손에 들고서 원작의 정신을 따르는 아방가르드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을.

굳이 3D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

대신 팀 버튼은 프로덕션디자인에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다. 의상의 콜린 앳우드, 특수효과의 켄 랄스턴, 음악의 대니 엘프먼 등 기술적인 최고급 장인들을 모조리 끌어들여 완성한 ‘이상한 나라’는 과감한 볼거리다. 물론 초기 팀 버튼의 수공예적인 아름다움은 여기에 없지만, 제작진은 적어도 캐럴의 원전을 좀더 현대적인 판타지의 무대로 볼 만하게 재해석해냈다. 그리고 여기에는 3D가 있다. 제작진이 각색한 이야기의 진부함을 희석시킬 또다른 무기로 3D를 생각했음은 당연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실 세계와 이상한 나라의 입체효과를 달리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앨리스의 모험에 시각적으로 좀더 동참하도록 만든다. 현실세계의 3D는 입체안경을 벗고 보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만큼 절제되어 있고, 이상한 나라에 떨어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3D 효과가 사용된다. 그런데 팀 버튼은 애초에 3D로 영화를 찍는 방식이 아니라, 2D로 영화를 찍은 뒤 3D로 변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버튼은 “굳이 처음부터 3D로 찍어도 큰 득은 없다”고 설명한다. “2D로 찍는다면 더 빨리 작업할 수 있고 화질 역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데 굳이 3D로 찍을 이유가 있겠는가.” 버튼의 이 발언은 즉각적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성질을 돋운 모양이다. <아바타>로 3D의 세계를 열어젖힌 카메론은 “2D로 만들어서 3D로 변환하려는 팀 버튼의 결정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제작자인 리처드 자눅은 변론한다. “3D 카메라는 아직까진 서투르다. 돈도 많이 들고 스탭도 더 많이 필요하다. 2D로 찍어서 3D로 변환해 개봉한 사례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3D로 찍힌 영화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카메론에게 우리 영화의 테스트 필름을 보고 뭐가 2D고 뭐가 3D인지 한번 구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눅의 말과 달리 결과가 <아바타>처럼 완벽한 건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3D 버전은 조금 거친 편이다. 3D 버전은 여전히 재미있는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하지만 미술팀과 특수효과팀이 창조한 원더랜드의 디테일을 감상하려면 밝고 선명한 2D를 선택해도 괜찮다.

루이스 캐럴에 대한 디즈니식 경배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 버튼 경력의 수학적 법칙을 읽음으로써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틀쥬스>(1988)를 만든 뒤 <배트맨>(1989)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가위손>(1990)을 만든 뒤 <배트맨2>(1992)를 만들었다. <에드 우드>(1994) 다음에 <화성침공>(1996)을 만들었다. <화성침공>은 팀 버튼 역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그는 <슬리피 할로우>(1999)와 <혹성탈출>(2001)을 연이어 만든 뒤 <빅 피쉬>(2003)를 만들었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을 만든 뒤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를 만들었다. 숨은 법칙은 하나다. 그는 대중적인 소재로 거대 스튜디오 영화를 만드는 사이사이에 좀더 규모가 작은 개인적 영화를 만든다. 그게 바로 팀 버튼이 성공적인 상업영화감독과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지켜내는 방식이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대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창의력을 제한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사실이다. <가위손>처럼 정말로 내 자신을 담아내는 영화들이 따로 있다. 그러나… 다른 영화들도 즐겁게 만든다. 지나치게 할리우드적인 건 아주 좋다기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결과를 얻는다. 좀 위험하기도 하다. 다만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는 즐거움 때문에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그리고 영화가 흥행에서 득을 못 본다면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좋아. 큰 스튜디오 영화를 한 뒤에 좀더 개인적인 영화를 하겠어! 꼭 이런 식으로 계획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팀 버튼의 차기작은 <프랑켄위니>(Frankenweenie)다. 그가 1984년에 만들었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어린 소년이 자동차에 치여 죽은 애견을 프랑켄슈타인 스타일로 되살린다는 내용의 단편은 이후 <비틀쥬스> <가위손> <슬피리 할로우>로 이어지는 버튼 특유의 괴짜 정서를 미리 감지한 작품이었다. 장편 <프랑켄위니>는 초장기 팀 버튼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새로운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3월4일 개봉)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상업영화감독 팀 버튼의 거대하고 반질반질한 환상이다. 루이스 캐럴이 이를 반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팀 버튼은 위대한 고전을 향해 디즈니 스타일로 경배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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