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제작비가 상당히 많은데도 부족하다고 툴툴대거나 엄청 오랫동안 찍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게 감독들이다. 그건 그들이 방종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간혹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영화라는 예술의 특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며 자본이라는 필요악을 끌어안아야만 성립 가능하다. 그런데 자본과 배우, 스탭 등의 요소는 감독의 운신에 명징한 선을 긋는다. 산업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대단한 예술혼을 가진 감독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제작비와 정해진 일정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돈과 시간에 대한 무한대의 욕망은 그러한 결핍감에서 비롯된다.
물론 성공작을 기반으로 돈과 시간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지는 감독도 존재한다. 그 ‘자유’는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디어헌터>로 스타가 된 마이클 치미노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3500만달러를 들인 <천국의 문>을 만들어 영화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를 말아먹었고, <늑대와 춤을>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케빈 코스트너는 1억7500만달러짜리 <워터월드>로 할리우드에 먹구름을 몰고왔으며, <아담스 패밀리> <맨 인 블랙>을 만든 배리 소넨필드는 1억8천만달러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만들었지만 골든 라즈베리상만이 환호했다. 엄청난 제작비와 시간에 상응하는 작품도 많다. 최근의 <아바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감독의 ‘자유’가 영화의 뛰어남으로 자연스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CG로 떡칠한 영화로 실망감을 준 감독과 영화들에 관한 이번주 특집은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나아가 <아바타> 이후로 심각해진 테크놀로지라는 물신에 대한 숭배 분위기에도 경종을 울리기 바란다. 3D라는 담론이 이상하게 비대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도 <러블리 본즈>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실패작이 쏟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돈과 감독의 관계다. 자본이 감독과 직접 만날 때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왜? 감독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투자사가 일부 감독들을 떠받드는 한국에서라면 사고는 재앙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 사이에서 합리적인 ‘한계’를 만들어 창의력을 극대화할 프로듀서의 부재가 아쉽다. 이에 관해서는 746호에서 달시 파켓이 잘 지적해줬으니 참고하시길.
다음호 개편을 앞두고 많은 필자들과 헤어져야 한다. 전영객잔은 세 ‘주인장’-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이 물러나고 새 필자를 맞이한다. 2005년부터 만 5년 동안 한국 영화비평의 새 패러다임을 열어왔던 세 평론가에게 뜨거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영화와 패션 사이에 오묘한 다리를 놓아주던 강지영씨에게도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