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나카다이 다쓰야] 하늘이 내린 후기 구로사와의 페르소나
2010-07-20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쓰바키 산주로> <카게무샤> <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아꼈던 배우 나카다이 다쓰야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고 있는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찾은 두명의 중요한 게스트가 있다. <카게무샤>와 <란>의 주연을 맡았던 나카다이 다쓰야, 구로사와 감독의 스크립터 겸 프로덕션 매니저로 활약했던 노가미 데루요는 한국에 머물던 지난 한주 동안 한국 관객을 만나 시종일관 진지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구로사와의 영화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과 방송에서 접할 수 없는 흥미롭고 진솔한 얘기로 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영화뿐만 아니라 고바야시 마사키, 이치가와 곤, 나루세 미키오 등 당대 최고의 일본 감독들과 함께하며 현재 일본의 국민배우로 칭송받는 나카다이 다쓰야와 생전의 구로사와가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불렀던 여장부 노가미 데루요를 만나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특별전은 7월1일부터 2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7월24일부터 8월4일까지 필름포럼에서, 8월10일부터 8월29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모든 영화와 행사는 무료이며 자세한 일정과 정보는 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카다이 다쓰야는 일본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란>의 촬영장을 방문해 완성한 다큐멘터리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1985)에서 크리스 마르케는 단 한번의 테이크로 그 엄청난 분량의 시적인 대사들을 소화해내는 그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1932년 도쿄에서 태어난 나카다이는 <카게무샤>와 <란>을 비롯해 구로사와 아키라와 5편을 함께했지만 고바야시 마사키, 이치가와 곤, 나루세 미키오 등 당대 최고 일본 감독들과 함께하며 선명한 궤적을 남겼다. 그외 데시가하라 히로시, 오카모토 기하치, 고샤 히데오, 구마이 게이, 기노시타 게이스케, 시노다 마사히로 같은 감독들의 명단까지 더하면 정말 일본의 모든 명감독들의 영화에서 서로 다른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들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낸 감독들이기에 일본영화계에서 동시대 어떤 배우들과 비교해도 이것은 진정 드문 경우다. 그것은 나카다이 다쓰야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게 해주는 일이기도 한데, 어쩌면 구로사와와 이치가와 곤 사이를 오가며 <라쇼몽>(1950), <요짐보> <불꽃> <열쇠> 등을 촬영하는 한편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1953), 마스무라 야스조의 <문신>(1966) 등을 촬영하며 당대 일본 감독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촬영감독 미야가와 가즈오 같은 배우였는지도 모른다.

나카다이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젊은 관객에게는 <하치 이야기>(1987)에서 개와 우정을 나누는 노교수,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쿠타로(야마다 다마유키)의 할아버지로 출연해 익숙하다. 보통 일본 남자배우의 전설로 언급되는 세 사람이 나카다이 다쓰야를 비롯해 그보다 무려 열살이나 많으면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미쿠니 렌타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원한 페르소나인 미후네 도시로라 할 수 있는데 나카다이 다쓰야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달리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까지 부지런히 오가며 활동했고 그 어떤 전속계약도 맺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 놀랍다. 게다가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며 지금도 에너지 넘치는 현역으로 활동 중인데, 최근에는 사카모토 준지의 <자토이치: 더 라스트>에도 모습을 비췄다.

유명 감독과 배고픈 단역의 만남

올해 마쓰모토 준, 시바사키 고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은 <후지TV> 개국 50주년 기념 특집극 <우리 집의 역사>는 전후 일본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가족의 일대기다. 그래서 제국은행사건, 신칸센 개통, 도쿄올림픽 등 역사 속 실제 사건들이 가족의 일상과 겹치고 역도산, 엔도 슈사쿠, 미소라 히바리 등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들이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물론 나카다이 다쓰야도 등장한다. 가족 중 무네오(사토 류타)는 배우를 꿈꾸며 <7인의 사무라이> 오디션을 보러 가는데 그 옆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무표정한 남자가 바로 야마다 다카유키가 연기하는 나카다이 다쓰야다(게다가 야마다 다카유키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그의 손자였기에 이것은 의도적인 오마주이기도 하다). 최근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를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 관객에게 서늘한 사무라이로 시작한 그의 옛날을 보여주는 무척 상징적인 장면이다. 드라마에서 연출부가 “다음 차례는 나카시로 다쓰야!”라고 이름을 잘못 소개하자, 자신의 이름은 나카다이라며 바로잡는 짧은 순간에도 방정맞은 무네오와 달리 위엄이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사실에 근거한 에피소드다. 극단 ‘배우좌’의 연극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카다이 다쓰야는 1952년 배우좌 배우양성소 4기생으로 입소해 연기를 배우면서 <7인의 사무라이> 오디션을 보고 사무라이 단역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다. 드라마 속 오디션 장면처럼 정말 아무 말 없이 시장통을 지나가는, 그러니까 사무라이를 고용하려고 마을에 내려온 농민들이 지나가는 사무라이를 쳐다보는 장면에서 옆모습으로 3초 정도 등장했다. 노가미 데루요가 기억하는 그 순간은 이렇다. “구로사와가 나카다이의 연기를 보더니 ‘저 사람의 걸음걸이는 사무라이의 걸음걸이가 아냐. 좀더 굶겨서 걷게 해’라고 했다. (웃음) 그래서 다른 사무라이들까지 3초 등장하는 장면을 반나절 동안 촬영했다.” 세월이 흘러 <카게무샤>와 <란>으로 떼놓을 수 없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한 구로사와와 나카다이의 첫 만남은 그렇게 유명 감독과 배고픈 단역의 만남이었다.

욕망부터 기괴함까지, 개성있는 그만의 연기

1955년 배우양성소를 졸업한 그는 정식으로 배우좌에 입단하면서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활동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린 첫 영화는 고바야시 마사키의 <검은 강>이다. 나카다이가 ‘나를 배우로 만들어준 감독’이라 말하는 고바야시 감독은 러닝타임이 10시간에 가까운 대작 <인간의 조건>을 비롯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할복>과 <괴담> 등에서 줄곧 나카다이와 작업하며 그를 아꼈다. <검은 강>에서 선글라스에 스카프를 두른 젊은 야쿠자로 나온 그는, 흠모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하들을 시켜 여자를 위기에 빠트리고는 자신이 구해주는 척하며 미소를 띠고 등장하는 비열한 악역이었다. 전후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 기지촌 풍경을 배경으로 사회비판의식을 전면에 드러낸 <검은 강>에서, 나카다이가 연기한 야쿠자 ‘조’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어이 자라난 당대의 일그러진 욕망의 표상 같은 남자였다.

그 다음은 <불꽃> <열쇠> 등을 함께한 이치가와 곤이다. 어쩌면 그는 나카다이의 강렬한 눈빛 속에 숨은 어두운 욕망을 가장 잘 끄집어낸 감독인지도 모른다. 당시 다이에이 영화사의 대스타 이치가와 라이조와 함께 출연한 <불꽃>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쁜 남자 ‘카시와기’로 출연했다. 이치가와 곤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불꽃>으로 영화화하며 미조구치(이치가와 라이조)의 두 친구 중 밝은 모습의 쓰루가와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카시와기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불꽃>이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미조구치의 집착과 갈망을 보여준다면 카시와기는 좀더 뒤틀린 형태의 미(美)를 추구하는 남자다. 게다가 카시와기는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인데, 나카다이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원제목이 <금각사>인데 승려들의 반대로 소설 제목을 그대로 쓸 수 없어 제목을 바꾸고 영화 속 절도 준각사로 불렀다. 여기서 나는 육체적인 콤플렉스가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캐릭터였는데, 신체가 불편하고 어딘가 뒤틀린 성격을 연기하면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웃음) 그런 모습을 보고 구로사와가 <요짐보>에 캐스팅한 것 같기도 하다.”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열쇠>에서 한 남자의 젊은 아내와 그의 딸과 관계를 맺는 병원 인턴 ‘기무라’의 음산한 표정, 키가 커서 여자의 어깨에 목을 홱 꺾어 기대있는 기괴한 이미지 역시 나카다이를 당대 가장 개성 넘치는 배우 중 하나로 만들었다.

구로사와 감독과의 재회

고바야시 마사키와 이치가와 곤을 거쳐 <요짐보>를 통해 다시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와 조우하게 된 건 무척 의미심장한 일이다. 어려서 영화광이었던 나카다이는 그들의 영화를 보며 배우의 꿈을 꿨기 때문이다. 특히 구로사와가 연출하고 미후네 도시로가 총을 도둑맞은 젊은 형사로 나온 <들개>(1949)는 무려 10번 넘게 봤을 정도로 매료된 영화였다. 그로서는 <7인의 사무라이> 이후 비중 높은 조연으로 불러준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요짐보>에서 나카다이가 연기한 우노스케는 상대파 무리의 사람들을 총으로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잔인한 남자였다. 도시로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특유의 부릅뜬 눈으로 “지옥의 입구에서 널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그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미후네 도시로가 들개 같은 남자라면 나는 뱀의 느낌으로 연기해 달라는 게 감독의 주문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구로사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무척 특별한 사건이다. 노가미 데루요는 “구로사와의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나카다이가 들어오면서 영화가 좀더 풍요롭고 재미가 배가됐다. 그렇게 불량기 가득하고 섹시한 남자 캐릭터는 구로사와 영화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영화계에서도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그 모습에 반했는지 구로사와는 속편 격인 <쓰바키 산주로>에 그와는 전혀 다른 엄격한 카리스마의 사무라이로 그를 캐스팅한다. 전편에서 죽었던 배우가 속편에서 다시 살아나 태연히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도 그의 자존심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꼭 겨뤄야만 하는가?”라는 산주로(미후네 도시로)의 물음에 그는 “너는 나를 배반했고 바보로 만들었다. 한명은 죽어야 한다. 결판 짓지 않고서 난 편안해질 수 없다”며 대결을 종용해 영화 역사상 빛나는 명장면 중 하나인 <쓰바키 산주로>의 최후 대결 장면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전혀 다른 시대와 분위기의 고바야시 마사키의 3부작 <인간의 조건>에 출연한 건 기적 같은 일이다. 뒤틀린 사무라이의 모습이 아니라 일제식민지 시절 만주 노호령광업소로 파견된 직원으로 나와, 중국인 노동자와 포로들이 당하는 학대와 혹사에 반발하는 양심적인 일본인을 연기했다. 군국주의의 횡포 속에서 희생되고 변질되는 인간의 모습을 치밀하게 표현해냈다. 포로들에게 위안부를 보내 달래고 구타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거짓 보고서를 쓸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딜레마가 먹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카다이가 큰 키와 강렬한 눈빛으로 기억되는 배우였다면 황량한 만주 벌판에 퀭한 눈으로 서 있는 <인간의 조건>에서의 모습은 이전 영화에서 보는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나카다이의 말에 따르면 1부, 2부, 3부 촬영하던 사이 몇 개월씩 시간이 날 때 <요짐보>와 <쓰바키 산주로>를 촬영했다고 한다.

일본 영화사의 전설로 남다

<인간의 조건> 3부작 이후 섬세한 심리묘사의 달인인 나루세 미키오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나카다이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할복>, 구로사와의 현대극과 조우한 <천국과 지옥>, 데시가하라 히로시의 <타인의 얼굴> 등에 연달아 출연하며 배우로서 그의 능력은 만개하기 시작한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 다카미네 히데코를 향한 사랑을 가슴속에만 품고 있는 바의 지배인, <할복>에서 로닌으로서의 비참함을 견딜 수 없어 할복자살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남자, <천국과 지옥>에서 빈틈 없는 일처리로 유괴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타인의 얼굴>에서 사고로 얼굴 화상을 입게 되자 타인의 얼굴틀로 만든 마스크를 쓴 뒤 아내를 유혹하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요짐보> 등 정통 사무라이 액션영화로 인기를 끌면서 미후네 도시로와 함께 그와 비슷한 일련의 대중적 사무라이영화들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역시 그 느낌은 달랐다. 이나가키 히로시의 <고지로>에는 미야모토 무사시로 나왔지만 오카모토 기하치의 <다이보사츠 고개>에 나오는 허무주의적 사무라이 쓰쿠에 류노스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반영웅이다. 숲속을 걸어가며 무표정하게 수십명의 매복한 적들을 난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이후 나카다이의 시대극을 마무리하는 작품은 역시 구로사와의 <카게무샤>와 <란>일 것이다. 당시 <자토이치> 시리즈의 가쓰 신타로가 카게무샤를 연기할 예정이었으나 구로사와와의 의견 충돌로 도중하차하자 나카다이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천한 범죄자에서 졸지에 최고 권력의 영주 다케다 신겐으로 변신하면서 보여주는 변화는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신겐의 카게무샤가 되는 게 불안하다고 느낄 때 ‘과연 이래도?’라며 가만히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신겐을 흉내낼 때, 카게무샤라는 게 만천하에 밝혀져 돌팔매질을 당하며 성에서 쫓겨날 때 묘한 전율이 일었다. <란> 또한 구로사와와 그에게는 어떤 집대성과도 같은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번안인 <란>에서 나카다이는 천리 밖도 내다볼 것 같은 강렬한 눈빛으로 몰락해가는 영주의 무상함을 완성했다.

불타는 성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는 나카다이의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노가미 데루요는 ‘구로사와의 남자들’이라 할 수 있는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다카시, 나카다이 다쓰야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후네 도시로와 시무라 다카시는 늘 편안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영화에 투영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나카다이 다쓰야는 감독의 의도를 그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영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구로사와 감독이 나이가 들어 <카게무샤>와 <란>을 만들 때 완성된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나카다이와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구로사와가 영화를 만들면서 종종 배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듯한 인상을 받은 건 그가 유일하다.”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그러하듯 세상에서 ‘리어왕’을 연기할 수 있는 남자는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다. 그는 당대의 대가들 사이를 오가며 온몸으로 전후 일본사회의 빛과 어둠을 표현했다. 수없이 명멸했던 일본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나카다이 다쓰야야말로 진정한 전설로 기억될 것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