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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 레드패스] 베를린에서 온 ‘젊은 영화’ 스페셜리스트
2010-07-21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장 마리안느 레드패스

영화제 속의 영화제. 평균 관객 40만명에 젊은 관객만 5만명인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제너레이션 섹션은 이 부문을 관할하는 집행위원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그 규모와 위상을 자랑한다. 매년 영화제 기간마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타깃으로 한 영화를 상영하며, 그렇기에 전세계 청소년영화제의 롤 모델이 되는 이 섹션을 이끄는 수장은 어떤 사람일까.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집행위원장 마리안느 레드패스가 제12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커다란 숄을 두르고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는 ‘철의 여인’보다 그림 형제 동화책을 도란도란 읽어줄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인상이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베를린영화제 기간 동안 우리 영화제의 제너레이션 섹션을 보러온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스탭들을 자주 만났었다. 이번에 그분들이 초대해줘서 오게 됐다. 그런데 한국 스탭들이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심사위원도 아니고 위원‘장’을 맡으니 절대로 안 올 수가 없잖나. (웃음)

-단편경쟁부문 심사를 맡았다고 들었다. 영화는 다 봤나.
=다 봤다. 양질의 작품이 많아 놀랐다. 한국영화와 외화의 비율도 적절해서 좋았고, 어떤 작품들은 ‘왜 우리 영화제에 저 작품을 안 데려왔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출품된 한국 단편영화를 평한다면.
=가족에 대한 이슈가 많았는데,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국가 영화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만들었더라. 아이들과 부모의 유대가 (다른 나라 영화 속 그들의 유대보다) 더 깊게 느껴졌다. 아, 그리고 이건 네덜란드 심사위원이 해준 얘기인데, 그 사람이 심사기간 도중 내게 와서는 “아니, 섹스에 대한 영화를 왜 이렇게 많이 만들죠?”라고 물어봤다. 컴퓨터로 포르노영화를 보는 장면들이 영화에 나왔던 모양인데, 사회적으로 한국이 성적인 문제에 다소 폐쇄적이다 보니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성이 언급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이른바 청소년영화로 부를 수 있는 독일영화의 현재가 궁금하다.
=독일은 이민자 문제가 이슈인데, 영화에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는 듯하다. 독일에 오래전에 정착한 제3세대, 제4세대 이민가족 이야기나 터키, 레바논의 이민자들 이야기 등 중동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아시아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섹션에 출품됐던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도 생각난다. 인상깊게 봤다(<여행자>는 2010년 베를린영화제에서 Deutsches Kinderhilfswerk상을 수상했다.-편집자).

-모든 청소년영화제의 고민이겠지만, 어떤 영화를 청소년영화로 볼 것인가에 대해 평소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늘 고민하는 문제다. 가끔 우리 섹션에 초청된 어떤 감독들의 경우 자신의 영화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당황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이만을 위해 만든 영화를 고집하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감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14살 이상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14플러스 부문(제너레이션 섹션의 일부)에서는- 첫 경험이라든지- 일부 관객이 보았을 때 다소 세거나 대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위의 작품도 상영한다. 이 때문에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작품은 아이들 보여주기가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올 당면과제를 다루는 게 더 중요하다.

-제너레이션 섹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탤런트 캠퍼스다. 젊은 영화학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대학생부터 30살 직전의 청년까지 참여할 수 있다. 매해 전세계 지원자 중 350명을 선정해 7일 동안 유명 감독, 배우, 작곡가, 촬영감독 등에게 수업을 받게 한다. 이렇게 모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나중에 우리 영화제에 다시 출품하곤 하더라. 또 우리에겐 ‘영 저널리스트’란 프로그램도 있다. 청소년들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그 사이트에 영화제에 대한 글도 쓰고 비평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제너레이션 섹션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몇편의 영화는 DVD로 제작되는데, 영 저널리스트들이 여기에 들어가는 팸플릿 글을 직접 쓴다. 이처럼 유기적으로 각 프로그램을 연결하며 젊은 영화학도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1993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영화제 일을 시작하기 전, 연극 선생님과 멀티미디어 공연예술가 등 다분야에서 활동했던 걸로 안다. 어쩌다 영화제로 오게 되었나.
=영화제 일을 하기 전, 나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호주, 동남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국에 도착했을 때 여행 경비가 떨어졌다. 이때 가고 싶었던 곳이 베를린과 마드리드였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베를린으로 가게 된 건데 결국 가장 오래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운명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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