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아름다운 자극.’ 이는 싱어송라이터 김윤아가 인터뷰 중 본인을 감화하는 예술의 공통점을 요약한 문장이지만, 그의 신보 《관능소설》에 대한 20자평으로도 손색없는 정리다. 김윤아가 자우림의 보컬이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서 8년 만에 컴백했다. 김윤아의 5집 《관능소설》은 그가 오랫동안 자신의 약점이라 생각했던 사랑 노래로 충만한 앨범이다. 김윤아는 창작을 위해 수많은 멜로영화를 스스로에게 끝없이 쏟아부으며 대상 없는 연애에 젖어갔고, 덕분에 작정한 사랑 노래 모음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김윤아는 ‘관능’의 사전 뜻풀이 중 첫 번째 정의를 꼭 짚고 넘어간다.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 그러므로 《관능소설》은 김윤아가 여성이자 예술가이며 시민으로서 생의 한가운데를 부단히 살며 날갯짓하는 여행기이기도 하다. 김윤아를 만나 《관능소설》과 앨범에 함께 담긴 에세이집 <관념산문>의 작업기를 물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한 음악과 영화에 관한 담소도 나누었다. 인터뷰 곳곳엔 《관능소설》에 영향을 준 영화에 대한 김윤아의 코멘터리가 피처링돼 있다.
- 2001년 발매한 솔로 1집 'Shadow of Your Smile'의 부클릿에 160페이지의 에세이를 실은 적 있다. 당시 소속사였던 난장뮤직에서 ‘김윤아가 솔로 앨범을 내고 자우림을 떠날 것이다’라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원동력으로 에세이를 함께 제안했다고. 근래 자우림의 크리스마스 앨범 'MERRY SPOOKY X-MAS'엔 직접 잔혹동화를 써 첨부했다. 이번 '관능소설'에도 <관념산문>이란 제목의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 음악에 관한 부가 설명을 하고 싶었다. 곡을 만들었을 때 나의 심상을 적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했다. 곡별 코멘터리는 어찌 보면 촌스러운 방법이다. 창작자가 창작물을 던져놓고 거기에 토를 달거나 밑줄을 쳐가며 ‘A는 B의 은유다’라고 설명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리고 앨범 제목인 《관능소설》이 함유한 뜨겁고 에로틱한 느낌이 있지 않나. 이에 대비되는 차가운 느낌의 글이 들어가면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지 디자인을 보면 <관념산문>과 《관능소설》을 나타내는 무늬가 다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느낌이랄까. (웃음)
- 산문의 제목을 <관념산문>으로 지은 까닭은 무엇인가. 《관능소설》과 음운, 시각적 유사성을 맞춘 제목으로 보이긴 하다.
= 생각을 따라간 글이니까. <관념산문> 속 <검고 깊은 바닷속의 마법사>에 노인이 노래를 하는 단락이 있지 않나. 그 단락은 다음 솔로 6집의 테마로 사용할 예정이다. 다음 앨범에서는 인생을 테마로 이야기하고 싶다.
- 《관능소설》의 재킷을 포함해 가사에 꽃을 활용한 은유가 많은데.
= 꽃은 결국 식물의 생식기 아닌가. 관능의 사전적 정의와 통하는, 기능이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꽃이 어김없이 필요했다. 또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정념을 시사할 수 있는 소재다. 덧없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꽃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 꽃만큼 바람도 가사에 자주 등장한다. 바람과 꽃이 동시에 등장하는 노래 몇 있고.
= 사실 바람 말고 공기에 관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잘 없다. 평생 나의 숙제다. 바람 대신 다른 말을 쓰면 너무… 이(異)세계 전투 신에 나올 법한 단어들이 나온다. 오타쿠 같아진다. (웃음)
<헤어질 결심>
“이 작품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헤어질 결심>엔 퍼즐이 완벽한 각본과 말러의 음악을 포함해 계산된 아름다움이 있다. 무엇보다 컬트가 있고, 피와 사랑이 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수영장에서 호신(박용우)의 시신을 발견하는 신이다. 피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웃음) 탕웨이 배우가 중국어로 말하는 모든 대사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