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인셉션>은 꿈과 기억의 교착 상태를 ‘시간’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2단계, 3단계, 4단계로 꿈이 깊어질수록 관객은 ‘시간의 차이’를 통해 그들을 인지한다. 단계가 거듭됨에 따라 10초-3분-60분-10시간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증가하기도 하지만, 꿈속 단계들의 연쇄는 그들간의 시간차(영화에서 정보가 제시되는 내러티브 시간의 차이)에 의해 인과의 고리를 형성한다. 서사 구축에 있어 시간과 인과율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1단계의 ‘결과’가 도출되기 위해 필요한 2단계의 ‘원인’, 2단계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3단계의 원인 등, 안은 바깥의 원인이 되어야 하며, 바깥은 안의 결과로 빚어져야 한다. 그러나 내러티브 시간상으로 보면 2단계는 1단계 뒤에 , 3단계는 2단계의 뒤에 제시된다. 즉, 내러티브 시간의 순서와 재구성된 사건의 순서는 마주 보는 거울에 맺힌 상(像)처럼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코브 일당의 꿈의 설계는 이 원리에 따라 디자인되고 있으며, 이는 놀란의 내러티브 디자인에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저들의 꿈 디자인은 곧 내러티브 디자인의 은유라 해도 틀리지 않으니, 이 모두를 관장하는 코브는 곧 감독 놀란의 초자아인 것이다. 단계별로 설계되는 꿈의 디자인이란 현재-과거-대과거의 순열에 의해 조합되는 이야기의 인과적 연쇄고리를 만들어내는 내러티브 디자인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역행의 플롯은 고전적 내레이션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인과의 사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메멘토> <인셉션> 같은 역행의 내레이션에서 사실상의 주제는 인과율의 플로팅(plotting)이다. 순행이든 역행이든 서사에서 인과의 사슬은 중요하지만, 둘의 차이는 우선권을 ‘목적’에 두느냐 ‘수단’에 두느냐에 의해 갈린다. 순행형 플롯에서 최고의 가치는 주인공이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있는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이차적인 중요성만을 갖는다. 수단이 소홀히 다뤄진다고 할 순 없지만, 수단은 영웅적 주인공의 목표달성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개 침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의 클라이맥스에서 시작하는 놀란의 역행 플롯은 인과관계의 미스터리 위에 구축된다. 서사의 엔진을 가열하는 것은 결과로서 주어진 첫 번째 사건에 대한 원인의 탐사이고, 이로부터 빚어진 두 번째 결과에 기초한 원인의 탐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꼬리를 무는 뒤집힌 인과의 고리들.
이를 테면 <인셉션>은 해변에 버려진 코브의 림보(그곳에 갇혔던 사람들의 기억만 존재하는 꿈의 밑바닥)로 열리는데, 이 영화의 플롯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했을 때,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 지점에서 코브는 초라하게 늙어버린 사이토와 대면하며 이때부터 시간(혹은 꿈)은 뒤를 향한다. 이후 전개는 이 최초의 장면으로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되짚는 여행이 된다. 기억할 것은 기구한 그 사연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쪼개진 상태로 경험된다는 사실이다. <메멘토>에서 단기 기억손실증에 기대어 기억의 국면들을 잘린 조각으로 쪼갰던 것처럼, <인셉션>에서 놀란은 꿈의 단계로 서사의 국면들을 잘린 채 체험하게 한다. 관객이 체험하는 것은 듬성듬성 건너뛰는, 다시 말해 “중간부터 시작하는” 불연속적인 사건들이다. 그러므로 사이토의 의뢰를 받아 피셔의 꿈속에 침입해 벌이는 일들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노쇠한 코브와 사이토가 대면하는 첫 장면에서 관객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꿈속에 잠입해 그의 생각을 훔치거나 조작한다는 설정은 플롯의 효과를 위한 것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에 거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대한 탐사’와 관련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는 역으로 진행되지만, 꿈의 각 단계로만 보면 순행의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전체로 봤을 때는 뒤로 흐르고, 부분으로 봤을 때는 앞으로 흐르는 서사. 그러므로 놀란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관객은 영화의 구조에 대해 처음부터 궁금증을 느끼지만, 꿈의 안쪽으로 진입해갈수록 새로운 질문이 그들의 주의를 끈다. 꿈의 국면들마다 새로운 질문이 던져지고 그에 대한 답을 조금씩 알려주면서 서사를 전진시키는 방식인 것이다. 예컨대, 영화의 도입부에서 관객은 ‘해변으로 떠내려온 저 사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한다. 뒤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코브와 늙어버린 사이토의 관계는 무엇인가? -> 코브는 왜 사이토의 생각을 추출하려 하는가? -> 맬은 누구인가? -> 미션에 동원된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 피셔의 생각에 어떻게 인셉션할 것인가? -> 코브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 -> 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 작전은 어떻게 성공 혹은 실패할 것인가? -> 코브는 현실로 돌아왔는가? 뒤로 가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국면마다 제기되는 갱신된 질문을 통해 캐릭터의 목표와 동기를 추론할 수 있다.
뇌의 작동에 따른 인터랙티브 내러티브
다시 하나의 질문이 가능하다. 인과율과 시간이 뒤집힌 서사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또는 뒤로 가는 이야기의 효과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의 결론이자 놀란의 스토리텔링이 겨냥하는 정신작용을 활성화하는 ‘뇌의 영화’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미행> <메멘토> <프레스티지> <인셉션>으로 이어지는 놀란의 내러티브 구조 실험은 영화 관람 과정에서 관객의 뇌의 기능을 촉진한다. <인셉션>은 꿈의 단계들을 통합하는 뇌의 작동을 통해 스토리를 구성하도록 강하게 요구한다. 단지 혼란스러운 정보들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디제시스 안에서 중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선택한 정보를 전체 스토리에 견주고 지속적으로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정보의 시청각적 흐름 속에서 이러한 간추림과 연결, 시간, 공간, 인물, 사건의 상태와 결부시켜 스토리를 구성하는 과정은 필연코 이것을 요구한다.
내레이션 미학에 경도된 작가들이 역행의 플롯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도저한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사건의 빌미로부터 결과로 매끄럽게 이행하는 대다수의 순행형 플롯 영화들은 예상치를 보여주거나, 반전을 깔고 있더라도 그 효과가 일시적인 데 반해, 놀란이 디자인한 역행의 플롯은 매 순간이 미스터리이고 반전이다. 조금씩 벗겨지는 미스터리의 속살은 팽팽한 구성적 긴장을 통해 관객의 뇌와 대결을 벌인다. <인셉션>을 비롯한 놀란의 구조적 내레이션이 지향하는 바와 상통하는 이 방식은 연대기적이고 인과적인 연쇄로 모든 액션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인셉션>과 같은 구성적 스토리를 지각하는 관객은 가설과 추정을 통해 특정한 패턴을 형성하는데, 이 패턴에 따라 흩어진 서사 요소들의 관계를 통합하게 된다. 하지만 <인셉션>은 최종적으로 통합된 스토리의 매듭을 다시 한번 풀어헤치는 결말을 제공함으로써 다시 한번 혼란을 야기한다. 꿈과 영화의 은유적 유비관계가 아니라 내러티브를 인지하는 뇌의 작용을 꿈의 설계 과정에 빗댄 메타 시네마적 텍스트로 읽을 때 <인셉션>의 진가는 드러난다. 놀란의 텍스트는 뇌의 작동을 추동하며, 기억의 작동을 저해하는 방해물을 깔아둠으로써 쉽사리 비밀의 문을 열지 않는다. 뒤를 향해 움직이는 이야기를 돌려 세워 정방향으로 구성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관객에게 지나간 사건을 기억해냄과 동시에 현재 보여지는 사건의 흐름을 좇아 일관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난감한 주문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영화와 관객 사이의 인터랙티브한 소통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셉션>의 근원적인 성취는 바로 여기, 송신자와 수신자의 엄격한 위계 안에 구축된 이제까지의 스토리텔링 규칙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그 둘이 분방하게 왕래하는 인터랙티브한 내레이션 체계를 세웠다는 점이다. 꿈의 안과 바깥이 상호영향을 미치는 <인셉션>의 설정처럼, 놀란 영화의 진정한 완성은 관객과의 소통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것은 마치 설계자와 표적이 하나의 반응으로 연결되는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그 반응의 결과를 속단하기 힘든 역동적인 자극-반응의 역학을 겨냥하고 있다. 자극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반응 또는 반응에 따라 수정되는 자극은 <인셉션>의 중요한 극적 설정이며, 놀란의 인터랙티브 내러티브의 핵심조건이다.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상을 말하자면 해결이 미진한 이야기가 끝난 뒤의 체기(滯氣)또는 갑갑증이 아니라 어떤 정화의 느낌이었다. 뇌의 작동을 활성화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스토리텔링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내러티브 체험을 통해 매끄러운 스토리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관객에게 제안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체험’이다. <인셉션>은 영화와의 대결이 아니라 뇌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꿈과 기억, 인간의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을 다룬 이 영화는 결코 미래를 보여주지 않으며(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SF영화라는 아이러니!), 좀더 확실한 실체를 그리기 위해 당신은 계속 뒤로 돌아가야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당신은 복잡한 구조에 대한 자신의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만드는 영화의 구조를 단순한 밑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쉽게 이 강력한 내러티브의 인지 메커니즘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와 자극에 대응하는 관객의 반응을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도식을 넘어 자극과 반응이 긴밀한 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쌓아가는 역동의 내러티브,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것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