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at White Cat 1998년 감독 에밀 쿠스투리차 출연 자빗 메메도프 <EBS> 12월22일(토) 밤 10시
“영화에 스며 있는 카니발리즘은 유례가 없는 것.”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 대해 어느 해외 비평가는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원래 ‘카니발’은 위계질서와 계급관계를 뒤엎고 참가한 모든 이들이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축제를 일컫는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한마디로, 과잉의 영화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다. 어느 결혼식을 중심으로 이 결혼이 과연 성사될 것인가, 혹은 다른 사정으로 무산될 것인가라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집시밴드의 ‘쿵짝쿵짝’ 박자의 음악은 쉬지 않고 울려퍼지고, 크고 작은 소동이 결혼식장을 휘감으며 성스런 행사에 참가한 일동은 절반 정도 실성한 기미까지 보인다. 심지어 현장에선 죽음마저 무력화되는데 숨을 거뒀던 노인이 고양이의 기력에 의지해 다시 부활한다. 상상력과 환상, 그 거대한 힘을 담고 있는 견지에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카니발의 정신을 영화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마초와 다단이라는 남자들 이야기다. 건달 다단은 그의 여동생을 시집보내려고 작정하고 있다. 마초가 돈을 갚지 못하자 다단은 여동생과 마초의 아들을 억지로 결혼시키려고 한다. 마초의 아들 자레를 좋아하던 이다는 순간, 슬픔에 잠기고 결혼식 직전 자레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식구들은 죽음을 숨긴 채 결혼식을 강행하려고 들고 신부는 도망칠 궁리를 한다.
영화 <언더그라운드>(1995)에 대한 정치적 논쟁 이후,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 더이상 감독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못박은 거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화감독이나 예술가들이 그렇듯 감독은 다시금 은퇴를 번복했고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복귀작업이 되었다. 영화엔 감독이 선호하는 몇 가지 ‘이벤트’가 끼어든다. 면사포 쓴 신부가 등장하는 결혼식, 나이든 이의 쓸쓸한 죽음, 그리고 정신없이 나팔을 불어젖히는 악단의 연주에 이르기까지. 전작 <언더그라운드>가 역사와 유고 내전에 관한 거대 서사를 유장하게 풀어낸 영화라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오로지 순수하게 이벤트만을 나열하는 느낌도 든다. 영화를 통해 쾌락의 극점에 도달하려는 듯 말이다. 유독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엔 미국 대중문화의 흔적이 틈틈이 배어 있다. 나이먹은 집시들은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군”이라며 대사를 흉내내고 어느 젊은 여성은 월터 힐 감독이 만든 컬트작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를 보면서 땀흘려 춤을 모방한다.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이 그들 대중문화에 친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집시들의 무국적 성향, 혹은 그들의 뿌리없는 정신적 방황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일관되게 들뜬 파티 참여자의 리듬으로 휘몰아쳐가며 헤피엔딩으로 향한다. 심지어 인물들이 소동극 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이래야 우리가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지!”라며 재치있게 읊조리는 대목도 있다. 삶의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하면서 불사(不死)의 쾌락까지 탐하는, 게다가 낭만적 유토피아에 관한 상상마저 담고 있는 귀여운 소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