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짜릿하고 끈적한 액션의 쾌감
2010-08-10
글 : 강병진
<아저씨>가 선사하는 걸출한 엔터테인먼트

원빈과 김새론이 공연한 영화 <아저씨>는 의외로 뜨겁다. 고독한 남자와 그에게 찾아온 소녀와의 멜로드라마가 강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저씨>는 액션영화 본연의 시청각적 쾌감을 폭발시킨다. 기자시사 뒤 쏟아지는 호평에 <아저씨>에 담긴 장르적인 특징과 재미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그리고 데뷔작인 <열혈남아>를 거쳐 <아저씨>를 통해 상업영화 시스템에 안착한 이정범 감독과 액션스타로서의 남성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배우 원빈을 만났다. 영화 <아저씨>의 온도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넌 누구냐”는 질문에 피로 물든 사나이가 정체를 밝힌다. “옆집 아저씨.” 영화 <아저씨>는 이 아저씨의 고독한 혈투를 집요하게 묘사하는 영화다. <열혈남아>를 연출했던 이정범 감독은 외로운 남자와 소녀의 만남을 통해 전작에 깃든 유사가족에 대한 이상적인 믿음을 전하는 한편, 분노에 못 이긴 남자를 멋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를 연기한 원빈은 CF 속 미소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타일리시한 액션스타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아저씨>는 <사생결단> 이후로 한국의 범죄영화가 드러내 온 생생한 범죄묘사의 힘을 가진 액션영화다. 마케팅 차원에서 강조된 불운한 가정의 소녀와 외로운 남자의 교감은 중요치 않다. 영화의 방점은 아저씨의 몸이 부딪히며 일으키는 쾌감에 찍혀 있다.

아저씨 태식(원빈)은 어두컴컴한 전당포 사무실에 갇힌 전직 특수요원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전당포 귀신 혹은 성추행 전과자로 불리는 그에게 옆집 아이 소미(김새론)는 자신의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를테면 “이제 다 컸는데 이는 왜 뽑아야 하냐”는 정도의 이야기. <아저씨>의 초반부는 태식과 소미의 밀고 당기기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굴지만, 태식은 자신의 빗장을 능숙하게 열고 닫는 아이가 싫지 않다. 소미는 태식이 제공한 소시지 반찬과 잠자리에 고마워하며 그의 손톱에 귀여운 그림을 그려놓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애틋한 우정이 쌓일 때 즈음, 소미는 마약거래에 개입한 엄마와 함께 납치당한다. 소미를 찾으려 나선 태식은 마약조직과 대면하지만, 음모에 휘말려 누명을 쓰게 되고, 내장이 적출된 채 살해된 소미 엄마의 시체를 발견한다. 어느새 소미는 태식을 끓는점으로 이끌고 있다. 아이를 위해 달리던 그는 아내와 아이를 잃었던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고, 특수요원 시절의 잔혹한 본능을 찾아간다. 아저씨는 지금 무척 화가 난 상태다.

부서지는 남자 영화 계보의 변종

누군가의 목숨 때문에 제 목숨을 거는 남자의 피 묻은 얼굴은 이미 신화적이다. <아저씨>는 스스로 부서지는 남자의 모습에서 격정적인 드라마를 찾는 수많은 영화와 같은 계보에 놓여 있다. 불운한 가정의 아이가 외로운 남자와 만나는 <레옹>과 아이를 찾으려는 남자의 거친 질주를 그린 <테이큰>과 <맨 온 파이어>는 구체적인 설정까지 맞닿아 있는 영화들이다. 전직 특수요원이란 태식의 캐릭터도 관습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감독은 “사람들간의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지만, <아저씨>의 목표는 익숙한 설정을 통해 트렌디한 액션과 신파적인 감성을 조합하는 것인 듯 보인다. 위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그들에게 꼭 지켜내야 할 존재였던 아이가 태식에게는 그를 전당포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태식과 소미의 만남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뒤다. 이질적인 상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서로에게 손을 뻗게 되는 과정의 서사가 있을 법하지만 <아저씨>는 이를 생략한 채, 태식의 질주로 곧장 나아간다. 아저씨가 아이를 구하려는 이유는 본인도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동시에 관객 또한 쉽게 잊어버릴 질문이다.

태식은 아이가 처한 범죄현장을 목격하면서 더욱 끓어넘친다. 영화는 마약밀매의 실제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장기밀매범죄의 섬뜩한 풍경을 전시한다. <아저씨>는 발로 뛴 취재에서 비롯된 묘사의 생생함에 기대는 영화다. 아이들은 어떻게 마약거래와 장기밀매의 범죄에 내던져지는가,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버려지는가를 촘촘히 담아낸 부분은 영화에 삽입된 일종의 르포나 다름없다. 리얼한 대사와 풍경은 범죄영화로서 <아저씨>의 매력을 더하는 한편, 영화의 현실성과 유머로 기능한다. 또한 무엇보다 태식이 결정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부분인 동시에, 그의 분노에 관객이 공감할 대목이다. 아이들을 이용해 부를 취한 악당은 “그 어린것들이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걸 생각해본 적 있냐?”는 태식의 질문에 “그러는 넌 걔네들 몸값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 적 있냐?”고 되묻는다. 이때부터 태식의 목표는 사실상 소미가 아닌 범죄와의 전쟁이다.

원빈이기에 가능한 스타일리시 액션

<아저씨>의 본질적인 쾌감은 이제 그가 범죄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아저씨의 몸이 부서질수록, 그의 적들이 더욱 처참하게 죽어갈수록 그 쾌감은 배가되는 건 당연하다. 잔인한 악당을 처단하는 <아저씨>의 액션은 그에 걸맞게 잔혹하다. 특수요원이라는 태식의 전직은 그의 액션에 장르적인 재미를 덧칠하기에 효과적인 설정이다. 태식의 액션은 이미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에서 보았듯 아시아의 전통무술을 혼합한 빠르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채워져 있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킬 빌>의 청엽정 액션을 연상시키는 홍콩과 일본 액션영화의 칼부림을 가져온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일 대 다수의 액션은 태식의 분노가 정점에 달하는 순간이자, <아저씨>가 전시하는 회심의 액션 시퀀스다. 배를 찌르고, 목을 가르고, 손목을 끊는 칼의 움직임, 그에 쓰러지는 적들의 훼손된 신체, 살점을 긋는 칼의 소리는 스크린 밖 관객에게까지 물리적인 충격을 안긴다. 만약 감독의 첫 구상대로 진짜 아저씨다운 배우가 태식을 연기했다면, 영화의 잔혹함은 더 크게 강조됐을 것이고, 아저씨의 격정은 더욱 끓어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를 연기한 원빈의 날렵한 몸과 그가 걸친 멋스러운 슈트, 정의의 편임을 드러내는 그의 얼굴은 하드고어에 가까운 영화의 액션에 스타일과 판타지적인 매력을 덧입히고 있다. <아저씨> 같은 잔혹 액션극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일반적인 수사는 <아저씨>에 해당되지 않는다. 원빈의 아저씨는 무조건 공감하고 응원해야 하며, 끝까지 보듬어야 할 남자다. 덕분에 영화가 드러내는 잔혹한 풍경은 오락적인 쾌감으로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없다.

할리우드의 액션영웅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트렌디와 밀접한 액션, 한국의 범죄영화들이 보여온 날것의 매력, 신파적인 감성, 그리고 페티시적인 집착으로 전시된 스타. 여러 검증된 기호들을 조합했다는 점에서 <아저씨>가 상업적으로 기획된 매끄러운 기성품에 가깝다는 의견은 타당하다. 간혹 오글거리는 대사가 헛웃음을 나오게 만들고, 소녀와 아저씨의 멜로드라마가 기능적인 설정에 그친다는 건 무시하기 힘든 흠이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주인공의 피로감을 드러내거나, 내면의 분노에 관심을 돌리거나, 오마주 혹은 키치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액션의 쾌감에 몰입한 한국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멋으로 따지면 따라올 자가 없다. <아저씨>는 올해 나온 한국영화들 틈에서 손꼽혀야 마땅할 엔터테인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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